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빗금 / 류창희

빗금 / 류창희

 

 

 

나는 날마다 달력에 빗금을 친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간 것이다. 어느 날은 한꺼번에 몰아서 일주일 단위로 칠 때도 있다. 이런 날은 죽죽 친다. 가볍게 지나간 날들이다.

지나간 날에 대한 안도감보다도 다가올 날에 대한 준비였다. 처음엔 과제물 마감 날짜의 확인이었다. 그러다 아예 습관이 되어 버렸다. 하나의 일이 지나가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빗금이 없어지는 날은 아마 나의 삶도 의욕이 없어지는 날일 것이다.

쉽게 살 수도 있으련만 스스로를 단속한다. 남한테는 한없이 너그러운 척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고집이 있다.

사는 방법도 세습인가. 문중이 선산 밑에 한 마을을 이루고 사는 집성촌(集姓村)에서 태어났다. 조상과 제사 받드는 것만 보고 자란 고명딸이다. 남자가 방안에서 두 번 절할 때 여자는 문 밖에서 네 번 절했다. 부녀자들의 일이란 나날이 행사 챙기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터라 절구질 하고 술 담그는 것을 일상처럼 보며 자랐다.

시댁은 더했으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다. 5분 거리 안에 시부모님을 중심으로 아들 셋이 다 모여 산다. 시도 때도 없이 한 지붕 아래 사는 것처럼 챙겨 주며 지낸다. 각자의 지붕 밑에서도 원격 조정을 당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긴장하며 온화한 미소까지 예의 치레를 다 갖춘다. 철 맞춰 모시 두루마기에 도포까지 갖추는 집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나도 도포 입힐 아들만 둘을 두었으니.

연초에 탁상용 달력에 제삿날, 생신날, 조타들 생일까지 적어 놓으면 행사가 마치 개미들의 행진처럼 줄지어 있다. 더러는 마음 설레며 기다리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도의 숨을 쉬며 빗금을 칠 날들이다.

그렇다고 책임감 있게 가문을 이끌어가야 할 맏며느리는 아니다. 부모님을 모셔야 할 책임이나 거두어야 할 시누이, 시동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집안에 우환거리라고 여길 아무런 장애도 없다. 사람들과 만나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만큼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도 드물다.

그런데도 나는 근무하듯 산다. 날마다 하루 일을 점검하는 빗금을 치며, 어느 날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에게 맡겨진 임무가 끝나면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여자 마음은 다 같은 줄 알았다. 사람들은 반박을 했다. 자식 낳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내 집이지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여자들이 그렇게 마음 푹 놓고 살고 있다는 것을. 그날 어떤 이는 나보고 군대 생활 하느냐고 물었다.

만약 군대 생활이라면 나는 제대 말년 병장과 같을 것이다. 익숙해진 생활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참견이나 말리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려고 한다. 그런 데도 나는 제대 날짜를 기다리듯 하루를 겨우 넘긴다. 틈만 나면 쉬고 싶어 어찌하면 전화를 안 받아 볼까. 현관문을 안 열어 볼까. 한가한 하루를 꿈꾸며 근무 태만을 궁리하고 있다.

친구와 장식용품을 파는 매장에 갔다. 그녀는 양초, 비치 파라솔, 식탁보와 색깔 예쁜 컵을 몇 개 고르고 싶다고 했다. 천정 어머니를 모시고 낮에는 비치 파라솔 밑에서 밤에는 촛불을 켜놓고 차를 마시며 여름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딸만 둘인 친정에서 종갓집 장손에게 시집을 갔다. 위로 딸 둘을 낳고 막내딸을 더 낳아 딸 셋을 두었다. 문중 제사를 모실 때 남편이 혼자 바쁘게 절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안됐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녀는 늘 자기 자신에게 상을 준다고 했다. 생신날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올 때 스스로 “잘했어! 장하다!”면서 근사한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하고, 꽃을 사고, 연극을 보고, 외출복을 구입해서 자기 자신의 기분을 맞춘다고 했다.

그녀는 늘 명랑했다. 애면글면 자신을 볶아대지 않는다. 나보고도 “에이, 그냥 대충해. 이제 그럴 때도 되지 않았어? 힘들면 하지마” 쉽게 말한다. 그녀는 모시 두루마기를 풀 하느라 삼복더위에 잡아당기고 밟고 쪼그리고 앉아 손톱으로 꺾어가며 다리미질을 안 해도 종갓집 제사를 잘만 지낸다.

그녀의 남편은 한술 더 떠서 불면 날아갈세라 놓으면 꺼질세라 왕비마마 대하듯 애지중지 그녀를 모시고 다닌다. 가끔 문화강좌를 들으러 올 때도 차로 태워다 준다. 그녀는 나처럼 날짜에 빗금을 치지 않기 때문에 노후에 어디로 갈까 생각도 안 한다. 오로지 남편과의 해로만을 생각한다.

그녀는 맑고 간결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시를 쓴다. 나는 신변잡사 다 드러내는 잡문을 낑낑대며 쓴다. 그녀가 쓰면 그 속에는 고운 생각만이 드러나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빗금은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안도의 한숨만은 아닐 것이다. 새롭게 도전하는 또 다른 기다림일는지 모른다. 근무같이 여기는 일상에서 벗어나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 늘 그리워하는 마음의 안식처. 그곳은 어쩌면 문학의 텃밭일 게다. 날마다 치는 빗금을 빌려 사유(思惟)의 뜰에 호미를 들이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