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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여름이 가고 있다 / 김새록

여름이 가고 있다 / 김새록

 

 

 

어둠에 묻힌 바다는 잘 보이지 않고 짭짤한 바다냄새와 파도소리가 있는 철지난 바다를 찾았다. 멀리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파도를 타고 들리는 듯하다. 한적한 바다는 고향의 논두렁 냄새를 닮았다. 명절에 고향을 찾아 자식들이 한바탕 소란을 떨고 떠나버린 고향마당이 하필이면 밤바다에서 떠오를까. 빈 둥지가 되어 고향집에 계시는 부모님 모습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여름은 썰물이 되어 휩쓸려 가버렸나 보다. 뜨거운 냄비처럼 연일 끓어 넘치던 열기도 자취를 감춰 버렸다. 콩나물시루처럼 와글거리던 사람들의 떠들썩함도 볼 수가 없다. 장마가 끝나고 벌겋게 쬐는 햇볕은 여름의 맛을 톡톡히 보여준 뒤 되레 시원함이다. 창날처럼 내리꽂히던 땡볕이 생의 활기처럼 내 가슴에 콕콕 박히기도 했다. 그 불볕 화살을 맞으면서 끓는 듯한 모래밭을 맨발로 거닐어보며 낭만을 즐길 수도 있었다. 낭만적인 개성파는 여름의 불빛을 좋아할 것이다. 지글지글 달아오르는 햇볕아래 알몸으로 눕고 싶은 유혹이 일렁거리는 바다, 그럴 때 나는 고갱의 그림을 연상하면서 내 모습을 살핀다. 세월을 어찌 비껴갈 수 있겠는가. 비키니를 입고 싶지만 비키니가 아닌 원피스차림의 수영복을 입고 바닷가에 서 있었다.

젊은 혈기마냥 지칠 줄 모르고 용광로의 불꽃인양 활활 타오르기만 할 것 같던 여름이 시나브로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환절기는 몸과 마음이 혼란스런 과도기일까. 여름과 더불어 내 생기도 수그러지는지 삶의 윤기가 사라지는 느낌도 든다. 그걸 회복할 생각으로 그이와 함께 찾은 어스름이 깔린 해수욕장이다.

백사장 한 쪽엔 못다 핀 꽃처럼 애환이 어려있는 듯 어느 무명가수가 간단한 음향장치를 해놓고 기타를 치며 애끓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리움을 삼켜버린 듯 애잔함이 녹아있는 무명가수의 노래는 깊숙이 저장되어 있는 추억의 열매를 입맛 다시게 한다.

무명가수가 부른 조용필의 ‘단발머리’ 에 구경꾼들은 손뼉을 치며 노래에 흥을 돋운다. 노래는 분위기에 따라 위력을 보여주는 걸까. 학창시절 친구들이 떠오른다. 까만 눈썹에 기타를 칠 줄 알았던 경자, 광숙이, 순덕이……. 손뼉을 치면서 깔깔거리며 곁에 있는 것만 같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음악다방에 찾아가 DJ에게 신청곡을 청하여 들었듯이 무명가수에게 총각시절 남편이 좋아했던 노래를 신청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 그대오길 기다려요. / 내속을 태우는구나.’ 절도 있고 패기 왕성한 하얀 제복의 생도였던 그이의 가슴도 누군가 애태웠을지도 모른다.

여름이 지고 있는 백사장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세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연배들이 모인 곳이다. 정서가 맞아 떨어지는 추억의 자리이기도 하겠다.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사람들의 얼굴이 애틋하게 보인다. 미소를 띤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실을 잊어버린 듯 환한 웃음으로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표정은 각자 다르나 마음은 남이 아닌 모두가 하나 되어 물결처럼 수런수런 몸을 좌우로 흔든다.

잔주름진 얼굴들, 한여름 밤의 열기처럼 열정적으로 살았을 것이며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최고의 기쁨도 맛보았을 것이다. 팽팽했을 얼굴에 늘어나는 실오라기 같은 주름은 이웃을 사랑으로 대할 줄 아는 연륜의 계급장과 같다.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사람도 없는 똑같은 사람들이라며 짭조름한 밤바다를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낯선 사람들이지만 서로 마주치는 눈길에 미소를 보낸다. 음악이 있고 추억이 있는 자리가 하나로 만든다. 어둠으로 밀려있던 사물이 새삼 제 본래의 빛깔을 드러내는 걸까. 주위가 갑자기 환하게 밝다는 느낌조차 든다.

초록에 열광한 듯 젊은 혈기에 몰입되었던 지난날의 그림자도 보인다.

피아노 레슨을 하면서 허영심에 들뜬 공주처럼 손을 열심히 가꾼 덕에 손이 곱고 부드럽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그때마다 속으로 교만을 떨면서 우연히 손이 거친 사람을 대하면 위아래로 훑어보며 문화생활과는 먼 사람처럼 여기며 거드름을 피웠던 것에 얼굴이 붉어진다.

이제는 그 반대로 안일무사주의인 내손이 부끄럽다. 궂은 일도 마다않고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는 거친 손이 아름답고 그 손길에 따스한 마음이 오롯이 간다.

 

그러고 보면 한때 좋았던 시절의 청춘만 그리워할 것이 아니다. 나무들을 보면서 배운다. 여름날 시퍼런 나뭇잎에서 청춘을 느낄 수 있어 좋았지만 자기의 몫을 다하고 본연의 색깔로 돌아가는 가을 나무는 중년의 원숙미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몫을 다해내지 못했다할지라도 그 부족함에 자신을 돌아보고 오던 길 돌아가려는 준비로 겸허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가을 나무는 완숙과 겸허의 미덕을 지니었다. 나무는 말없는 가운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눈꽃으로 겨울의 온기를 느끼게 하는 겨울나무의 은근한 인고를 놓칠 수 없다.

피고 맺고 지는 삶의 과정일진대 무성한 이파리마냥 고개만 뻣뻣이 쳐들고 비울 줄도 모른 채 제 잘난 맛에 살았던 젊은 한때, 나는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 꼴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도 늘 비우고 겸손한 것도 아니다. 열기가 팔팔 끓어오르는 여름이 그저 한 풀 꺾인 뒷모습처럼 좀 더 낭창낭청해지고 고개 숙이는 법도 익혀가면서 겸허한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할 뿐이다.

폭염같은 청춘이 지나간 늦여름, 밤의 백사장에 발자국을 찍는다. 발자국은 또 다른 발자국에 찍히며 사라질 것이다. 내 발자국 흔적을 파도가 쓸러가고 있다. 여름이 그렇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