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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그해 여름의 끝 / 최원현

그해 여름의 끝 / 최원현

 

 

 

 

여름 끝 무렵, 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나 했더니 급기야 며칠을 내리 비가 내렸다. 큰 비였다. 하늘이 구멍났나싶을 만큼 폭포처럼 쏟아질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비가 멎자 눈이 부시게 해가 솟았다. 바람처럼 소문이 돌았다. 강물에 집이 떠내려 오기도 하고 그 지붕 위에 돼지가 타고 있다고도 했다. 장롱 같은 가재도구들에 호박 등 열매채소들이 시합이라도 하듯 둥둥 떠내려 오고 있다고 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루터가 있는 강가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건 내 생각만은 아니었다. 내 또래들, 우리보다 큰 형들, 나보다 작은 꼬맹이들이 벌써 강가로 치닫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그렇게 하자고 의논을 한 것도 아닌데 다같이 약속이나 한 듯 신설포 나루를 향해 달려갔다.

비가 갠 하늘이 참으로 맑았다. 큰 비에 깨끗이 씻겨나서일까. 가을하늘도 이만큼 맑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햇볕은 더욱 따가워 할머니와 팽팽하게 옷감을 잡아당겨 붙잡고 다림질을 할 때 쉬익 내 앞으로 다가들곤 하던 그 벌건 숯불 다리미의 열기보다 더 뜨거웠다.

어린 날의 추억은 때로 슬프게 살아나기도 한다. 그 날 나는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그 후 며칠을 잠도 자지 못했고 잠이 들면 가위에 눌리곤 했다.

어떤 사람은 바지랑대 같은 긴 장대 끝에 낫을 매달아 나왔다. 곡괭이 자루를 길게 연결시켜 나온 사람도 있고 그냥 달랑 긴 막대기나 낫만 들고 강가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이따금 환호성이 터지곤 했다. 떠내려 온 가재도구며 닭, 심지어 돼지도 건져 내었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한 아주머니가 작은 반닫이 장 같은 게 떠내려 오자 남에게 빼앗길세라 계속 자기 거라고 외쳐대며 그걸 건지려고 앞으로 나가다 그만 발이 미끄러져 강물에 휩쓸리고 만 것이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른들은 장대며 갈고리들을 들고 강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뛰어 내려가며 빠진 사람을 찾았지만 강물은 아는 체도 하지 않고 기세 좋게 흘러만 갔다. 다른 물건들은 물속에 잠겼다가도 이내 다시 떠오르곤 하는데 사람은 한 번 들어가자 흔적조차 없다. 나도 어른들을 따라 강 아래로 내려갔다. 갑자기 눈물이 나고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그 때까지 떠내려 오는 것들을 바라보며 저것은 무엇이다 맞추기도 하며 즐기고 있던 내게 강물이 돌연 무서운 얼굴을 한 마귀할멈으로 보였다. 흉측한 얼굴에 한 손엔 그 아주머니를 붙잡고 또 하나 말라깽이 같은 긴 팔을 내뻗어 나도 잡으려 하는 것 같았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햇볕은 더욱 뜨겁게 내려 쏟아지고 흙탕물이 된 강물은 점점 불어나 더욱 무서운 기세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날 오후 내내 사람들은 물에 빠진 아주머니를 찾기 위해 강을 오르내리며 갖은 애를 다 썼다.

오후 아주 늦어서야 물에 휩쓸린 곳으로부터 오리나 더 내려간 강가, 물에 잠긴 갈대밭에 하얀 천이 걸린 것을 발견케 되었고 어렵사리 사람도 건져 올렸다. 사람은 신설포 나루터 마당에 눕혀지고 멍석이 덮어졌다. ‘아이들은 저리 가라’고 호통을 치는 어른들 틈에서 나는 콩콩 튀는 가슴에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멍석 속의 시신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지서로 사람을 보내 사람이 죽었다고 신고를 했다고 한다. 그 사이 가족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이내 통곡의 마당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가 아주머니가 쓰셨다는 낫 묶인 장대를 옆에다 갖다 놓았다. 어떤 이는 몇 해 전 이런 물난리 때도 몇 가지 물건을 옹골지게 건져 올려 신이 나 하더니 결국 이렇게 간다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나는 하마터면 숨이 막힐 번했다. 사람을 덮은 멍석이 꿈틀꿈틀 하는 것 같더니 멍석 밖으로 뱀장어가 기어 나온 것이다.

한 어른이 멍석을 걷었다. 뱀장어뿐이 아니었다. 입 뿐 아니라 다른 구멍으로도 뭔가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달라붙은 옷 속에서 배가 꿈틀대고 있었다. 물에 빠진 그 몇 시간 동안에 강에 것들이 사람 몸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내 온 몸도 이상해지며 마구 헛구역질이 나왔다. 무서움이 전신을 떨게 했다. 지서에선 아직도 경찰이 오지 않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몇 번이나 흔들렸다. ‘요놈!’ 하고 강물이 마귀할멈이 되어 뒷덜미를 잡아채는 것 같아 오금을 절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멍석을 걷자 드러나던 죽은 자의 얼굴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죽음, 어린 내가 처음으로 직접 본 죽음의 모습이었다.

유년시절의 기억은 아리아리 아파도 그 기억을 생각하면 무한한 평안을 느낀다. 볼품없는 초가의 시골 고향집이 주던 안온함, 어린 기억들은 할머니 품에 안겨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오싹 편안한 이상한 맛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아프고 슬프고 안타까운 기억조차도 그리움이 된다. 내게 어린 날 그 해 여름의 끝 기억 역시 잠재의식 깊이에 스며있어 심신이 허약해 진 때엔 꿈으로도 살아나곤 한다. 어른이었던 그 때의 사람들은 거의 다 가고 없으리라.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겁도 없이 죽음 앞에서도 당돌했던 것이 사실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어떤 궁금증이 그렇게 하게 했던 게 아녔을까. 내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람은 죽으면 어떤 모습이 되는가. 여름도 아닌 가을장마 속에서 아련하게 그 때가 생각 나 빛바랜 풍경화 앞에 선 기분이게 한다. 그렇고 보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그림자라도 좇고 싶었던 어린 마음은 반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한 것 같다. 그러나 그 해 여름의 끝, 처음 본 죽음의 얼굴은 기억에도 없는 어머니를 형상화 해 내는 내 그리움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자연 앞에 너무도 하찮은 존재인 인간, 신은 그래서 기억을 흐리게 하고 그리움이란 걸 선물로 주셨나보다. 새삼 그때가 생각나는 건 너무 욕심들을 내는 것 같다는 생각여서일까. 그 강물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지금도 흐르고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