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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삼베적삼 / 김정순

삼베적삼 / 김정순

 

 

 

 

옷장을 정리하다가 서랍장 깊숙한 곳에 정성스레 포장해 놓은 물건이 눈에 띄었다. 무엇일까? 포장을 뜯어보니 노란 삼베적삼이다. 어머니를 졸라 만들어놓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적삼이다.

십 년 전 어머니가 심하게 편찮으셨던 적이 있었다. 마지막인가 하고 마음 졸였으나 자리에서 일어나 건강을 되찾으셨다. 연세가 높아 머지않은 날에 나의 곁을 떠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야 죽림원에 들어선 대나무보다 많겠지만 그래도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으로 하나쯤은 간직해 두고 싶었다. 훗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을 때 가끔 꺼내보며 어머니의 정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입을 욕심으로 마련한 옷이 아니라 간직하려는 마음으로 마련한 적삼이었으니 잊고 지내다가 오늘에야 눈에 띄게 된 것이다.

삼베적삼을 펴놓고 찬찬히 살펴보니 어느 곳 하나 거슬림 없이 완벽에 가깝다. 손끝 맵짠 어느 여인의 솜씨로 씨줄과 날줄로 곱게 엮어 짜낸 열세삼베에 노란 치자로 은은하게 색을 냈다. 거기에다 어머니의 정성과 솜씨가 더해져 마름질과 박음질을 해놓았다. 하얗고 곧은 동정하며, 반달을 따다 올려놓은 듯 선이 고운 깃, 활짝 펴진 새의 날개 같은 소매의 선, 얌전히 앉아 깃을 받치고 있는 섶, 물 흐르듯 유연하면서 단아한 도련, 헝겊을 정성스레 박음질해서 작은 꽃봉오리 같이 앙증맞은 매듭단추, 그리고 고운 삼베를 또박또박 박음질해 놓은 한 땀 한 땀마다 어머니의 정성이 그대로 배어있다. 잊었던 귀한 것을 다시 만난 반가움에 나는 한동안 적삼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하얗고 곧은 동정은 어머니의 절개인 듯 눈앞이 흐려온다. 어머니는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에 혼자되어, 아흔이 다 되도록 곧은 절개를 지키고 살아오신 분이다. 동짓달 긴긴 밤을 울어대는 문풍지에 베개를 적시며 잠 못 이룬 밤이 얼마나 많았을까. 꽃향기 그윽한 밤 춘정에 못 이겨 울어 새던 밤은 또 얼마였을까. 달 밝은 가을밤 두견새 울음에 잠 못 들어 허벅지를 꼬집던 밤은 또 얼마이던가. 병아리 같은 아이 셋을 눕혀놓고 돌아설 수 없었던 끈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오셨던 어머니셨다. 청상의 여인이 절개를 지키며 수절을 한다는 것은 버선발로 얼음 위를 걸어가는 고통이었으리라. 그래서 절개를 지키며 수절하는 것을 여인의 덕목으로 추앙받던 시대도 있었다.

살포시 내려놓은 반달 같은 깃에는 혼신을 다한 어머니의 정성과 솜씨가 깃들어 있다. 깃은 적삼의 생명이며, 입는 자의 심성이 숨어 있는 곳이다. 바느질이 잘된 적삼이라면 첫째 깃이 곱게 앉아야 한다. 어머니는 긴 세월 동안 바느질을 해 오시며 자주 말씀하셨다. 깃만 예쁘게 앉히면 바느질은 쉽다고 하셨다. 깃머리를 예쁘게 공글리는 것이 바느질에서는 가장 까다로운 일이다. 또한 심성이 고운 이의 깃은 바느질이 쉽지만, 성품이 깐깐한 이의 깃은 예쁘게 박음질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밉게 된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딸의 삼베적삼 깃을 예쁘게 박음질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태우셨던 것 같다.

새의 날개처럼 활짝 펼쳐진 소매는 어머니의 축수하는 모습이다. 이른 새벽, 정한 수 한 사발을 장독위에 올려놓고 하늘을 향하던 두 팔의 소매는 날아오르는 새의 날개를 닮았다. 누구를 위한 축수이고 무엇을 향한 축수인지 몰랐었지만, 그것은 어린 자식과 함께 무사히 살아 갈수 있게 하여주십사 하는 기원이 아니었나 싶다. 간절함이 담긴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까. 어머니는 무사히 자식을 길러내며 한 생의 끝자리까지 오셨다.

섶은 어머니가 잠그지 못하시던 대문이다. 닫혀 있으나 잠겨 있지 않는 섶은 유년의 고향집 대문을 닮았다.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아버지의 죽음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시려는 마음에 어머니는 대문을 잠그지 못하셨다. 방문은 잠그면서 대문을 잠그지 못하셨던 것은 어머니의 지극한 기다림이었다. 오지 못할 사람이 올 것만 같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가슴 저린 그리움인지 그때는 몰랐다.

유연한 도련은 단아한 어머니의 몸가짐이고 옷맵시다. 도련선이 단아하고 부드러워야 적삼의 품위를 더하는 것이다. 뒷도련은 동그스름하게 등을 감싸고 안는다. 앞도련은 겨드랑이 밑에서 뒷도련과 만나 섶을 향하며 앞가슴을 감싸 안는다. 도련 밑으로 살짝 엿보이는 젖무덤은 보는 이를 설레게 한다. 하지만 단정하게 입은 어머니의 적삼 도련 밑으로 한 번도 젖무덤을 본 적이 없다.

매듭단추는 어머니의 삶이고 고뇌의 응어리다. 차가운 봄눈에 피지 못하는 꽃봉오리의 애련함은 어머니의 삶이었다. 스물여덟 봉오리가 꽃잎을 열지 못한 채 접어야 했던 서러움이야 오죽했을까. 외로움으로 잠 못 드는 밤에 시름을 잊으려고 매듭을 맺으셨을 것이다. 삶이란 것이 끝없는 미로 찾기인 것처럼, 곱게 박은 헝겊 끈에 고를 만들고, 고를 따라 미로 찾기를 하다보면 앙증맞은 작은 봉오리가 태어난다. 꼭꼭 잠그시던 어머니의 방문고리처럼, 매듭단추는 적삼의 깃과 섶 사이에 다부지게 붙어 옷깃을 잠그고 있다. 매듭단추를 열고 살며시 젖히면 어머니의 가르침과 지난 세월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올 것만 같다.

“쑥도 삼밭에서 자라면 곧게 자라니라.”

본받아도 좋을 사람들과 인연 만들기를 가르치던 어머니. 꼿꼿한 삼대만큼이나 올곧게 사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도, 그렇게 살아야하는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다. 삼베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여정같이 고달픈 삶속에서도 삼대같이 살아오신 어머니, 이제는 낡아 풀기 없는 삼베 적삼처럼 힘없이 처진 어머니의 어깨가 내게는 아픔이고 눈물이다. 풀물을 먹여 다리면 금방 빳빳해지는 삼베적삼처럼 어머니의 어깨에 풀물을 들일 수만 있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뚝! 물방울 하나가 적삼 위로 떨어졌다. 밤새도록 재봉틀에 앉아 바느질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달빛에 젖어 처연하게 앉아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삼베적삼 위로 겹쳐와 파도로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