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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부부夫婦의 연緣 / 이응백

부부夫婦의 연緣 / 이응백

 

 

 

이 세상, 하고 많은 남녀男女 중에 일생을 함께 할 부부夫婦의 연緣은 부자父子와 형제兄弟의 연緣보다 더 거룩한 연緣이라 하겠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남녀가 인연을 찾아 부부夫婦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연緣이 제대로 맞으면 백년해로百年偕老를 하고, 그러지 못할 때에는 일찍 사별死別 또는 생이별生離別을 한다. 이별死別이야 수요壽夭의 장단이 다른 데서 오는 현상이겠지만, 생이별生離別은 일단 맺은 연緣의 인위적人爲的인 단절이므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애초부터 잘 알거나 생판 모르는 처지일지라도, 서로 의기투합意氣投合했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 끌어당기는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연은 마음이 이끌리는 끄나풀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우리가 약혼 시절에는 금방 헤어졌는데 다시 보고 싶어 전화를 걸고, 또 그리워 직접 만나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그리워하는 심정心情을 평생平生동안 늦추지 않고 끌고 갈 일이다. 이러한 매력에 금이 가는 것은 제3자와 비교를 하는 데서 온다. 부부의 연은 절대적이다. 절대로 남과 비교할 것이 아니다.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부부는 그런 대로의 사정이 있을 것이니, 이쪽은 곁눈질 말고 무조건 열심히 살면 될 것을 한눈을 파는 데서 병통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곧잘 팔자타령을 한다. 좋은 것도 내 팔자, 나쁜 것도 내 팔자. 이것을 초월하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 그런데 비교의 초점은 자기는 시렁 위에 올려놓고 그가 더 낫다고 비교하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다른 집 남편은 키가 크고 훤칠해 마음도 시원시원한데 왜 내 남편은 쨈바리고 마음이 옹졸한가. 왜 남의 부인은 코도 오뚝하고 입매도 잘 생겼는데, 내 아내는 코가 납작하고 입술도 뒤틀렸는가. 겉모양과 마음 씀새 하나하나를 비교한다. 여기서 문제는 애초에 선을 볼 때 그런 것을 꼼꼼히 따져 볼 일이지, 그때는 모든 것이 맘에 들어 부부의 연을 맺고, 함께 살면서 변질이 됐을 수도 있는 것을 스스로 반성은 하지 않고 결과만 가지고 다른 이와 비교하는 데서 빚어진 그릇된 심사心思다.

 

처음 맺어진 심정心情으로 돌아가 그 연장선상에 자신들을 놓을 것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많으므로 언제 그의 해침을 받을지도 모르는 조바심에서 혈색도 좋지 않고 심장이 콩 튀듯 안정감을 잃어 혈압도 높아지고 모든 일이 다급해져 포용성이 없게 된다. 너누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은 늘 마음이 편안하고 관용성寬容性이 있어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

 

사람은 열 번 변한다. 그러므로 교육과 인격 수양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은 자기 한 만큼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니 남의 탓할 일이 아니다. 부부도 마찬가지로, 많은 부부가 서로 닮는 것은 마음 씀이나 행동거지가 서로 닮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부부가 서로 딴 길을 걸어 사이가 벌어졌다면 동행同行의 연緣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라 하겠으나, 생판 모르는 사이도 인연을 맞추는 효과를 올릴 수 있는데, 그래도 마음이 맞아 같이 출발한 부부가 서로 다른 길을 걸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예전 부부들은 댓구멍으로도 본 일이 없이 중매로 맺어졌는데, 운명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살다 보면 백년해로하지 않았던가.

 

어떠한 경우든지 생이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정 싫어 생이별을 할 경우라도 상대방에게 가해加害를 한다든지 스스로 분신焚身하는 일을 저지르지 말 것이다. 연緣이 맞지 않아 정 못 살겠다면 깨끗이 헤어져 각기 새 길을 찾도록 할 것이지, 상대방의 아까운 생명을 앗든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육신肉身을 무슨 권한으로 자해自害한단 말인가. 더구나 자녀가 있을 때 그 자녀가 무슨 죄가 있어 부父 또는 모母를 잃어버리는 불행을 당해야 하는가.

 

더구나 빚에 몰리거나 크나큰 화를 저질러 그대로 낯을 들고 살 수 없으니, 자녀에게 이 불행不幸을 안겨줄 수는 없다는 외틀어진 자비심慈悲心에서 자녀와 동반자해同伴自害하는 것은 더 없는 큰 죄악이라겠다. 사람은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성실하고 부지런히 노력하면 다시 떳떳하게 사는 예가 얼마든지 있다. 하고 많은 생령生靈 가운데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이만 저만 축복받는 일이 아닌데, 그러한 생명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것은 조물주造物主에 대한 크나큰 모독이다. 더구나 자녀는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부모와는 다른 독자 생명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부모가 그 권리를 뺏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자녀까지 자기네의 진 죄罪에 끌어 집어넣는 것은 더 큰 죄罪를 저지르는 일이다. 고아孤兒가 된 그들 자녀가 열심히 생활해 부모의 저지른 죄 값을 갚고 사회를 위해 크나큰 일을 했다면 사회에 대해 얼마나 큰 공헌貢獻이 되겠는가.

 

부부는 잘 살아가려고 하다 보면 의견이 맞지 않아 충돌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독을 품어내선 안 된다. 서양에서 있던 일로 이런 예가 있다. 어느 부부가 일생 동안 한 번도 다투는 일을 보지 못해 신기하게 여긴 이웃 사람이 어느 때 그 남편에게 “당신네는 어떻게 平生 동안 싸우지 않고 그렇게 구순하게 지냅니까?” 하고 물었더란다. 그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부부는 혼인 초에 약속을 했지요. 만일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면 아내는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남편은 공원을 산책하기로 했지요.” 그러면서 “나는 저 공원을 수없이 산책했습니다.”

 

부부의 인연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므로 슬기롭게 이어 백년해로百年偕老를 지상至上 과제課題로 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