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삼대(三代) / 마해송
할머니의 시집은 불씨를 떨어뜨렸다가는 쫓겨나게 된다는 시집살이였다. 불씨래야 산에서 긁어온 갈퀴나무로 땐 불이니, 불돌을 꼭 눌러두어야 하지, 화(火)젓가락으로 헤쳤다가는 당장에도 재가 되어버리는 잿불이었다.
종일 담뱃대를 놓지 않는 시아버지는 꼬다리를 화로에 꾹 박고 뻑뻑 빨아서 불을 붙인 다음에는, 또 불손으로 차곡차곡 눌러두어 꺼뜨리는 일이 없는 시아버지였다. 사랑방에도 부엌에도 잿불화로의 불씨가 끊어져서는 집안이 망한다는 것이었다. 신랑보다도 대감님보다도 고이 모시기가 머리가 빠질 지경이었다.
하루아침 그 불씨가 꺼져서 할머니는 간담이 서늘했다. 호호 불어도, 후후 불어도 불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큰일 났다. 살그머니 뒷집으로 가서 불씨를 얻어왔다. 그것을 시아버지는 사랑방에서 빤히 보고 있었다. 본가로 가라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옷을 갈아입고 하직인사를 하러 들어가서 의젓이 말을 했다.
“아버님께서 가라 하시니 가겠습니다만, 억울한 사정이 있습니다…”
“억울한 사정? 그게 무슨 소리냐?”
“사실은 뒷집에서 불씨를 얻어 온 것이 아니오라, 엊저녁에 빌려준 것을 오늘 아침에 받아온 것입니다.”
시아버지는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얼굴이 풀렸다.
“허허, 그랬더냐? 하마터면 내가 실수를 할 뻔했구나!”
속으로는 무릎을 쳤다는 것이다. 그만한 국량(局量)과 주제가 있는 며느리라면 불씨쯤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박대기는 면했다.
어머니가 시집와서 시어머니에게 들은 첫 마디가
“불조심해라.”
이었다.
살림이 넉넉해져서 나무는 사다가 때었다. 산에서 솔가지를 베어서 두 아름이나 될 만큼씩 새끼로 묶어 착착 재워두었다가 바짝 마른 다음에 달구지에 싣고 나무장에 팔러 나온 것을 시아버지는 사왔다. 부엌에 세 뭇, 그리고는 헛간에 쌓아둔다. 그럴 때 마다 말했다.
“불조심해라.”
새끼로 엮은 방석에 앉아서 불을 때다가 깜박 하는 사이에 치마에 불이 붙었다. 벌떡 일어나니 당장 얼굴에까지 불기다.
“불이야!”
“저것 봐! 저를 어째! 물! 물!”
“물은 안 돼! 뒹굴어라 뒹굴어!”
마당에 뒹굴어서 불은 껐으나 화독으로 누워 있어야 했다. 헛소리가,
“불! 불!”
이었다.
달포가 되어 일어났을 때는 정강이와 턱에 흠집이 있었다. 전등이라는 게 생겨서 한 개로 온 집안이 낮같이 밝아지고 그 딸은 일찌감치 외국 유학을 갔다. 거기서 결혼을 하고 아들 딸을 낳고 보니 내 나라 내 고장이 그립다고 돌아왔다.
전열(電熱)과 가스가 있는 집을 사서 외국살림 못지않게 살림을 차려놓으니 해방이 되자 가스는 안 나오고 전열선은 끓어놓았다. 평생 만져보지 못한 장작개비에 불을 붙이고 아궁이속을 들여다보았다.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끌어들이는 귀신이 있는 것만 같아서 무섭기만 했다. 앞머리카락 타는 노랑내에 기겁을 하는 동안에 내워서 찡그리는 얼굴이 그대로 주름살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고 서러워서 또 주름이 늘었다.
깡통 예술 석유 등잔을 사야하고 양초도 사야했다. 석유풍로와 19공탄도 만져야 했다. 손톱 발톱에 매니큐어는커녕 손톱 발톱 사이의 검댕을 끄집어낼 시간의 여유조차 없었다. 6.25에 남편을 납치당하고 1.4후퇴에 여인 한창인 오십 고개를 칠십 노파같이 되어 아들 딸의 부축을 받아가며 남하하다가 무너진 집 담벼락 밑 거적자리에서 운명할 때에 아들 딸에게 이렇게 유언했다.
“불조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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