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눈 / 강명자
몇 년 전부터 발가락에 티눈이 생겼다. 그것도 세 군데나. 조금 아프기도 하고 불편했지만, 그런대로 참고 견디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제는 티눈이 커져서 조금 손을 봐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끼발가락 사이에 생긴 티눈을 손톱으로 중간을 모아서 눈썹가위로 잘라냈다. 이왕 손댄 김에 티눈 뿌리를 뽑고 싶었지만 그렇게 쉽게 제거할 수 없다는 걸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병원 가서 치료했지만 다시 생겨났다. 좀 과하게 잘라냈다고 생각이 들어서 포비돈(요드용액)을 발라서 소독하려고 찾았으나 몇 해 전에 사둔 탓으로 바닥까지 말라서 쓸 수 없었다. 조금은 찜찜했지만 그냥 참고 지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잠이 깼을 때 조금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참고 견디기로 했다. 아침산책을 갔는데 따끔따끔했지만 그러다 말거니 했다. 그 후에도 조금씩 아팠지만 참으면 나아지겠지 하면서 또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탁구 치는 날, 탁구장에 가는 길에도 발가락이 조금씩 따끔거렸지만 또 참으면 되겠지 했다.
신나게 두 시간 동안 펄쩍펄쩍 뛰면서 쉬지도 않고 정신없이 쳤다. 집에 돌아올 때는 제법 아픈 느낌이 왔다. 탁구 칠 때는 재미에 빠져 아픈 줄도 몰랐다. 흘린 땀을 씻기 위해 샤워를 하는데 그때부터 새끼발가락이 조금씩 아픈 것을 넘어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가슴속 깊이 불안하게 생각했던 그 티눈이 결국 현실이 되어 벌겋게 부어올랐고 발을 내디딜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겁이 덜컥 났다. 자세히 보니 곪은 것 같았다.
“여보, 내 발가락이 곪은 것 같아. 약 좀 사다주세요.”
남편은 내 발가락을 보더니, 비련하게 그렇게 되도록 참았느냐고 하면서 얼른 약을 사왔다. 갑자기 다리를 절면서 아픈 환자가 되었다.
그날 밤, 몇 번을 깨었다. 상처도 아프고 짧은 상식에 가위에 파상풍균이 있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스쳐갔다.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교실에서 모자를 걸기 위해 박아놓은 못에 실수로 어리를 부딪쳤다. 그 학생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병명은 그 못에 파상풍균이 있어서 결국 사망한 것이다.
나도 그 생각이 나서 불안했다. 아픈 것은 참겠는데, 내가 참고 견디면 지나가는 병이 아닐까 봐 걱정과 불안으로 잠이 깨었다. 다시 잠이 든 탓에 늦잠을 잤다.
이튿날 일어나니 남편이 밥상을 차려놓고,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날 신혼 때가 생각났다.
“명 씨, 우리 결혼해 살면, 내가 커피 향기로 당신을 깨울 거야.”
그러나 지금은 음악소리로 나를 깨운다. 절뚝절뚝 절면서 식탁에 나와 앉았다. 식사 후 남편은 설거지를 마치고 후식으로 과일과 커피를 준비해 주었다. 아주 오랜만에 그와 마주 앉은 기분이었다. 거실에서는 감미로운 음악이 흘렀다.
지금 우리는 둘만 살고 있다.
세 자녀 모두 결혼시키고 우리 부부만 산 세월도 9년이 되었다. 그런데, 왜 지금처럼 감미로운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을까?
인간은 무엇인가 모자라고 걱정이 되었을 때 작은 일에도 감사를 느끼는 존재인가 보다. 발가락이 아프고 더 무서운 파상풍균으로 불안하니까 평소에 몰랐던 작은 행복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같다.
어제 저녁 다리도 아프고, 남편은 밤 운동을 나가고 나는 같이 갈 수가 없어서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 검색을 마치고 나오는데, 그 옆에 있는 책 모서리에 아픈 새끼발가락이 부딪혔다. 눈에서 별이 반짝할 만큼 아팠다.
그때, 난 깨달았다. 늘 그렇게 부딪히면서 살아왔지만 상처가 없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상처가 있을 때는 그 통증이 아주 크다는 걸. 같은 상황이라도 같은 말 한마디라도 그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아픔의 크기도 다르리라.
고 김수환 추기경님은 항상 상처를 가진 힘없는 이들의 편에 서 계셨기에 선종 후에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남편과 사십여 년을 살면서 서로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면서 살아왔다. 이제 더 이상 상처 주고 상처 받디 않으면서 서로 웃으며 바라보고 살아야할 내일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지금 이 순간 나도 모르는 그간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행복감에 젖어드는구나. 남편도 이제껏 차려준 커피 맛만 보다가 직접 만든 커피와 내게 정성껏 갖다 준 커피가 기분이 좋은지 내 속뜻도 모르고 흐뭇하게 웃는다.
티눈은 아팠지만 오랜 삶에 상처를 치유해 주었고 내일을 감사할 줄 알게 해주어서 고마웠다고 인사해 주고 싶었다.
‘티눈이여 고마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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