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도 생리통을 앓는다 / 김윤재
햇볕이 좋아 생리대를 빨았다. 몇 년 사용하지 않아 누렇게 변한 생리대를 세제를 넣어 삶자 뽀얀 속살을 드러낸다. 빨래줄에 널린 소창생리대는 빨간 벽돌집과 어우러져 한편의 시가 되어 펄럭인다. 음력 19일쯤 어김없이 몸속에 들였던 생리대 사이사이로 지나간 청춘이 아른거린다. 비릿한 냄새에 얼굴을 붉힌다. 뭔지 모를 묵직함이 심장을 툭 치고 지나간다. 서리도록 그리운 것들이지만 지금은 내게 없는 풍경이다.
그가 사라지자 생겨나는 징후가 많다. 푸석한 피부, 침침한 눈, 성욕감퇴, 체력약화, 주름살 등, 이런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시치미를 떼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팽창해진 유두가 옷깃에 스치면 아찔한 경련이 일던 은밀함도 사라지고, 생식기에 힘을 줘도 변화가 일지 않는다. 옷 밖으로 드러나는 봉긋함이 부끄러워 옷을 부풀려 입던 소녀는 아직도 눈시울에 걸려 있는데 어느 새 엉덩이를 내밀어도 부풀지 않는 가난한 여자는 이제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운 단어 ‘여자’라는 이름에서 멀어 진다는 일이 안타깝다.
내가 생리를 시작할 나이가 되자 어머니는 소창 한 필을 준비하셨다. 햇살 좋은 날 적당한 크기로 잘라 시침질한 후 깨끗이 빨아 뒤란 가득 널어놓았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뭔지 모를 흥분이 집안 가득 맴돌았다. 아버지는 조치원읍에 나가 돼지고기를 끊어 오셨고, 일곱 살 위 오빠는 막내 동생의 성장이 기특한지 볼일도 없는데 나를 불러대곤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책상위에 ‘에티켓’ 책 한권이 놓여있었다. 소녀에서 여자로 살아가야 할 동생에게 오빠가 주는 선물이었다. 그때 나는 삼신할머니의 손길이 엉덩이에 남아 꽃을 보면 꽃이 되고 비가 오면 비가 되어 골목을 헤매는 철부지 생명체였다. 장차 여자로 사는 일에는 원초적인 외로움과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서너 달 후 생리가 여린 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친구들의 경험을 통해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겁이 났다. 울상이 된 내게 어머니는 와이셔츠상자 하나를 주셨다. 그 안엔 뒤란에서 펄럭이던 소창 생리대 이십여 개가 반듯하게 접혀 있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내 방으로 건너오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 눈물이 무엇을 의미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첫딸을 출산하며 똑 같은 느낌의 눈물을 흘렸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누가 일러주지 않았지만 나는 본능으로 알아 차렸다.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게 은밀히 몸속에 밀어 넣어야 하고, 그것에 붉은 물이 차면 새것으로 갈아야 한다는 것을.
그 시절 내가 살았던 기와집 뒤란에는 장독대가 있고, 개나리와 감나무와 장미꽃이 가득한 이브의 정원이었다. 그곳에선 여성들만의 은밀한 일들이 이루어졌다. 생리대의 뒤처리도 그곳에서 했다. 세숫대야 미지근한 물에 생리대를 담가 놓으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붉은 물이 흘러 나왔다. 말갛던 물이 점점 붉어지면 가슴이 콩닥거렸다. 나는 그 물을 아무렇게나 버리지 못했다. 의식을 치르듯 조심스레 버리면 붉은 길을 내며 어디론지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땐 흉터가 아물며 올라오는 간지러운 아픔 같은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심장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붉은 빛깔은 소녀가 세상에 내민 성기였고 부끄러움이었다.
내가 소녀티를 벗고 연애를 시작했을 때 어머니의 관심은 딸자식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 있었다. 생리를 하는지 안 하는 지로 나의 행실을 가늠하셨다. 생리일이 다가오면 나보다 먼저 생리를 기다렸다. 내 서랍을 열어본 흔적으로 어머니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관심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주술적인 힘이 있었다. 달마다 거르지 않고 생리가 찾아오면 깔끔하게 접힌 생리대를 몸 안으로 밀어 넣으며 승리감에 도취되곤 했으니, 그가 몸속에 있을 때 나의 모든 신경세포는 예민했고 감각은 살아 꿈틀거렸다. 열일곱 살 우주를 진동케 했던 키스는 그가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음을 이제는 고백한다. 창자가 끊어 질것 같던 그 통증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나는 온몸에 털이 숭숭 난 중성인간으로 살지 않았을까.
나와 함께 서툰 세상을 터벅터벅 걸어와 준 그가 참으로 고맙다. 40여 년 나를 여자로 살게 해준 그가 떠나자 아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12월 칼칼한 바람을 맞으며 막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춥고, 몸속에선 마른기침소리가 난다. 처음엔 호르몬작용에 의해 푸석해진 피부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 헌데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소리의 실체는 빈 자궁 깊은 곳에서 나고 있다. 여자의 힘은 자궁에서 온다는 어른들 말씀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다. 늘 그러니 식구들도 시큰둥해 혼자 끙끙거리다 잠이 든다. 슬프다. 이제 나는 여성에서 인간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있다. 잘 견디면 견디는 만큼 성숙해 질 것이다. 마음 조절할 능력을 갖게 될 것이고 세상을 넌지시 바라보는 여유도 생길 것이다. 이것은 숙제다. 숙제는 세월이 어느 정도 해결해 줄 것이다. 헌데 햇살 좋은 날 알 수 없는 묵직함이 심장을 건드리면 소창생리대다 차고 싶어 안달이 난다. 한 필로 평생을 사용했지만 아직도 짱짱하다. 내 마음도 짱짱하다. 아침이슬을 보면 가슴이 뛰고 누군가 가슴을 툭 치면 나도 모르게 팔로 가슴부터 가린다. 다른 용품은 시장에서 구입해도 실크팬티를 입고 향 좋은 세정제를 고집한다. 늙어가는 내게 내가 주는 상이다.
저녁나절 거실에 앉아 햇볕에 바짝 마른 생리대를 곱게 접었다. 심줄 도드라져 깡마른 손이 하얀 생리대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청춘과 욕망이 함께 말라버린 생리대에서 바람소리가 들렸다. 좀 전까지 시리던 몸이 뜨거워졌다.
잘 접은 생리대를 서럽 깊숙이 밀어 넣고 양병산에 올랐다. 긴 장마를 견뎌낸 까닭인가. 저 너머 동네에서 건들대는 노을이 낭자한 핏빛이다. 세숫대야 가득담긴 석류 빛 붉은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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