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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묶다 / 우종률

묶다 / 우종률

 

 

배추를 묶고 있다. 단지 정형화를 위한 작업일 뿐인데 녀석들은 눈을 흘긴다. 거푸집에 시멘트를 붓듯 모양을 만들려고 할 뿐이다. 세상에 무수한 흐트러짐, 그들은 제대로 대접 한 번 받지 못하고 사라져 간다. 모양새를 갖춰야 하는 현실, 그들만의 리그 앞에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다.

넥타이 매기를 거부한다. 남들보다 목이 굵은 탓도 있지만 얽매이기 싫어서다.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서야 비로소 소통이 된다. 혹여 만찬이라도 있어 꼭 필요할 때는 지레 걱정이다. 언제 쯤 풀 수 있을까. 그날의 모임은 반벙어리가 된다.

배추를 묶어주면 내실이 꽉 찬다. 될 성싶은 것만 골라 묶는다. 이미 제 멋대로 뻗어나간 녀석은 노란 속엣것조차 없다. 이런 녀석은 김치를 담가도 뿔뿔이 흩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딱딱이배추는 전을 부쳐 먹거나 참기름과 깨소금, 고추장을 한 숟갈 넣어 겉절이를 만들어 비벼 먹으면 훌륭한 먹을거리다.

남들 이목, 체면과 형식 때문에 자신을 묶어야만 되는 현실 앞에 잠시 머뭇거린다. 배추 묶는 손을 멈추고 슬며시 목을 만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