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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헛전화 / 김한성

헛전화 / 김한성

 

 

친구가 만나자고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서로 얼굴이라도 보며 살아야지 않겠느냐는 말은 참 옳은 말이다. 이제 퇴직도 했으니 친구도 자연도 만나며, 지금까지 직장 핑계를 대면서 미루었던 일들을 하자고 한다. 무슨 군말이 필요하겠는가 안동을 향했다.

점심시간이다. 정겨운 이야기로 가슴을 채웠으니, 이젠 배를 채워야지 하는 친구의 말이 너무 정겹다. 이야기에 정신 팔려 몰랐는데 밥 이야기가 나오니 갑자기 배가 고프다. 안동에는 대표적인 음식이 몇 가지 있다. 안동 간고등어, 식혜, 그리고 헛제삿밥, 친구는 헛제삿밥을 먹자고 한다.

옛날, 안동 땅에 참 괜찮은 양반이 있었다. 자기는 날마다 맛있는 반찬에 밥을 먹는데 가난한 이웃 사람들과 특히 어린아이들이 굶주리고 있으니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이유 없이 먹을 것을 주면 그들의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고민한 결과 헛제삿밥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방금 제사를 지냈다고 하면서 푸짐하게 먹게 했다.

밥상이 나왔다. 사람마다 한 상씩 따로 차려 주었다. 상에는 쌀밥에 고사리, 숙주, 도라지, 무나물, 콩나물, 시금치 등의 나물과 쇠고기, 상어 선적 외에 배추전, 다시마전, 호박전, 동태전, 두부전 그리고 간고등어와 탕국이 나왔다. 특히 식사가 끝나고 안동 식혜까지 맛볼 수 있었다. 무와 고춧가루, 생강즙을 넣어 엿기름물로 발효시킨 안동 식혜는 끓이지 않았기 때문에 유산균이 살아 있어 먹은 음식의 소화를 돕고 입 안의 느끼한 기분을 가뿐하게 가셔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 주었다. 뜻있는 양반의 아름다운 마음이 헛제삿밥에 담겨 전해진다고 믿으니 친구의 정과 함께 어우러져서 멋진 비빔밥이 되었다.

헛제삿밥을 먹으면서 어머니를 떠올렸다. 출장 중이나 여행 중에 가끔 전화를 걸면 왜 전화했느냐고 짜져 물으셨다. 별일은 없지만, 목소리라고 듣고 싶어서 했다고 하면 깜짝 놀라시면서 전화 요금 올라가니 빨리 끊으라고 펄쩍 뛰시던 어머니를, 앞으로는 절대로 헛전화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던 그 음성이 생생히 들려온다.

부지런한 어머니는 아끼고 아끼며 가난하게 사시다가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새해를 맞은 1월 5일 하관을 하는 중에 순식간에 세상을 덮는 함박눈을 맞으면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었다.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려다 또 헛전화를 건다고 나무라실 것 같아 그만두었던 일이 생각나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내는 어머니께서 전화를 기다리시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절약이 습관이 되어 헛전화 타령을 하셨지만, 그 헛전화를 받고는 마음속으로 정말로 기뻐하셨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았다. 그날 교통이 두절되도록 많은 눈이 내렸다. 그렇게 어머니는 눈 속에 묻히듯 가셨다.

식사가 끝나자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묻는다. 축구에서 만약 프리 킥이나 페널티 킥을 할 때, 헛발질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고. 축구 경기 장면을 떠올렸지만 그런 장면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스포츠니까 다시 차게 해 줄 것 같다고 했더니, 공에 발이 안 닿으면 다시 차게 하고 헛발질이지만 공에 닿으면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는단다.

인터넷에서 본 동영상이 생각난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축구공을 힘껏 찬다는 것이 헛발질해서 몸이 한 바퀴 돌면서 나가떨어지는 장면이다. 욕심이 앞서서일까, 멋진 골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무리한 슛을 하려 했을까? 사진을 올린 사람은 ‘원숭이도 가끔은 떨어진다’ 고 제목을 붙였다. 권투 경기를 보다가도 너무 강펀치를 먹이려다 빗나가서 때리려던 선수가 휘청거리는 장면을 볼 때가 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상대 선수에게 기습을 당해 경기를 방칠 때는 정말 안타깝다.

어린 시절 우리는 운동화가 없었다. 고무신을 신고 새끼로 묶었는데도 헛발질을 하면 공은 온데간데없고 신발만 하늘로 치솟는 일이 잦았다. 고무신 따라 웃음도 하늘로 날아올랐다.

누구나 살면서 헛발질을 할 때가 있다. 대부분은 실수로 그러지만, 우리는 눈을 뜨면 하루에도 수많은 헛발질을 보면서 마음이 서글퍼진다. 실수로 하는 헛발질이 아닌 괜한 헛발질을 볼 때가 잦기 때문이다. 협의 과정을 통해 아름다운 결정을 해야 할 국회가 폭력이한 헛발질로 난장판이 되는 일도 있다. 법을 지켜야 할 법조인들이 탈세란 헛발질을 하거나 범법자를 잡아야 할 경찰이 그들과 한 통속이 되어 헛발질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진실해야 할 과학 연구에 조작이란 헛발질이 행해지고 논문 표절, 봐주기 수사, 집단 이기주의, 뇌물 주고받기, 위장 전입, 징집 기피, 학교 폭력 등 우리는 눈만 뜨면 안타까운 헛발질을 본다.

오늘도 신문을 보며, 방송을 들으며 또 괜한 헛발질을 하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헛전화라도 걸어 따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