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편작 / 전병덕
농사비가 내린다고 하는 곡우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남몰래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진다. 바로 산 때문이다. 저마다 옷을 갈아입는 곡우의 산릉은 하루가 다르게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마치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해진다. 저고리 앞섶을 밀어내고 툭툭 불거진 둥근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달짝지근하고 비릿한, 숨 막히는 희열이다. 일 년에 딱 한번 곡우의 산은 이처럼 마력을 드러내 보인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이야기다. 안방을 차지하고 있던 흑백 TV가 툭하면 말썽을 일으켰다. 전파장애 때문인지 잘 나오다가 지지직거리고 아예 처음부터 지지직거리기부터 했다. 그럴 때마다 TV 옆면을 손바닥으로 탁탁 쳐주면 용케 정상적으로 작동을 했다. 세월을 거치면서 성능에 이상이 생겼거나 수명이 다 되었다는 신호였을 것이다.
사람의 몸 또한 다르지 않다. 돌을 삼켜도 소화시킬 것 같던 청년기가 지나고 장년기에 들어서자 하나둘 몸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40대 초반의 나이였다. 속병이 찾아왔다. 특히 새벽녘 명치끝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새우처럼 등을 구부린 채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내시경검사를 하자 십이지장궤양으로 판명되었다. 청년기의 과도한 술과 담배의 영향이 클 것이다. 두어 달 가량 술을 끊고 약을 복용하자 고통이 사라졌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두어 달 가량 약을 복용하고 나머지 열 달은 또다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서너 해를 계속해서 연중행사처럼 반복되자 슬며시 오기가 발동하였다.
새벽 산행을 시작했다. 소화기계통의 장애에는 유산소운동이 효과적이라는 의사의 권고 때문이었다. 산행을 시작한 지 3개여 월이 지나자 통증이 몰라보게 사라졌다. 그렇게 1년쯤 지나자 십이지장궤양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몰론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현대 의학에 대한 주관적 비중이 새롭게 자리매김을 하는 순간이었다.
주위에 각종 암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식생활이 달라지고 환경이 오염되는 등 복합적인 환경 변화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특히 대장암의 경우 급격히 발명률이 높아졌다. 5대 중반 무렵, 60대 초반 직장 상사가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여기저기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직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그중에는 용종 제거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는 사람도 생겼다. 조기에 발견해서 다행이라며 기뻐하기까지 했다.
작장 동료가 내시경검사를 권했을 때 바로 거절했다.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뇌동하지 않는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쩌면 건강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가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평소 ‘신념이 강하면 귀신도 달려들지 못한다’라는 지론이었다. 또한 당시에 읽은 미국 국립암연구소 바넷 크래머 박사의 기고문도 일정 부분 작용을 했다. “용종은 일반적이든 악성이든 일정 기간 잠복기를 가지고 있다. 잠복기가 20년에서 30년 가까이 되는 용종도 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평생을 편안하게 지내다 갈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조기에 발견했다고 좋아하며 항암 치료로 인생을 허비한단 말인가.”라는 요지였다.
스스로 장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50대 중후반 찾아온 통풍에 대한 자가 치료 경험은 오기와 자만의 승리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바람에만 스쳐도 아프다는 통풍이다. 벌겋게 부어오른 엄지발가락을 등산화에 밀어넣고 어금니를 악물고 절뚝거리며 새벽 산길을 걸었다. 사투에 가까운 두어 시간의 인내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기까지 한 만용으로밖에 볼 수 없는 아이러니의 극치였다. 그렇게 사흘 동안 산길을 걷고 드디어 통풍에서 해방되었다.
편작(扁鵲)은 중국 전국시대의 명의였다. 죽은 사람마저 살려냈다고 하니 그 실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갈관지에 나오는 위나라 문후와의 대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삼형제인 편작은 문후에게 맏형의 의술이 제일 뛰어나고 중형이 다음이며 자신은 세 번째라고 대답한다. 편작은 의아해 하는 문후에게 맏형은 사람의 표정과 음색으로 병이 생기기도 전에 치료를 해주고 중형은 병이 미미한 발병 초기에 치료를 해주는데, 자신은 병이 깊어져 사람들이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할 때 비로소 치료를 해주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맏형은 집안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고 중형은 고향에서만 알려져 있으며, 자신이 천하에 알려진 까닭이라고 덧붙인다.
정년을 2년여 남겨 둔 시점의 늦여름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어깨에 찢어지는 듯한 격렬한 통증이 전해왔다. 뿐만이 아니다. 엉덩이부터 발끝까지 지르는 듯한 통증으로 두 발로 지탱하고 서 있는 자체가 몹시 부담스러웠다. CT와 MRI촬영 결과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라는 판명이 나왔다. 거기에 퇴행성이란 수식어가 덧붙여졌다. 의사가 수술 이외는 방법이 없다는 말을 건조한 목소리로 늘어놓았다. 규칙적인 운동도 세월 앞에서는 무용이었단 말인가.
직원 소개로 찾아간 의사는 신뢰감을 주었다. 디스크 환자는 마지막 단계에서 3% 정도만 수술이 필요한데, 무려 30%의 사람들이 수술을 한다며 남용 사례를 지적했다. 치료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목 디스크는 완치되었다. 그러나 허리 디스크는 넉 달째 별 차도가 없다. 서서히 지쳐갈 무렵 그해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다. 초음파검사를 하며 의사가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운동 좀 하시지요. 일주일에 대여섯 번은 하는데요. 무슨 운동을 합니까. 등산을 합니다. 등산으로는 체지방을 없앨 수 없어요.
런닝머신으로 빨리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하루에 1시간씩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대신 새벽 산행 횟수를 일주일에 세 번으로 줄였다. 한 달쯤 지나자 허리 통증이 거의 사라졌고 두 달쯤 지나자 뱃살이 홀쭉해졌다. 세 달이 지난 지금 허리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고 허리둘레가 1인치나 줄어들었으며 혈압도 140/90 이하로 내려왔다.
확신에 찬 신념은 운명도 바꿀 수 있다. 병이 생기기 전이나 미미할 때에 미리 조치를 하는 편작의 맏형과 중형은, 치세의 충신과 능신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병이 깊어진 뒤에 비로소 두각을 나타내는 편작은 난세의 영웅임에 분명하다. 그렇다. 곡우의 산릉처럼 드디어 나는 편작이 되었다. 다시 봄이 가더라도 새봄 곡우의 산릉을 고대하며 결코 주눅 들지 않는 의연하고 당당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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