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에서 / 정호경
요즘은 목욕탕마다 이발관이 있으니 구태여 시내 이발관으로 찾아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 장소에서 두 가지 일을 보기 위해 가까운 집 근처 목욕탕으로 간다. 그런데 아무리 목욕탕에 있는 이발관이라고 하지만, 얼굴을 서로 맞대고 있는 그 좁은 공간에서 모두들 발가벗고 앉아서 이발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니 얼굴이 간지럽다. 목욕탕 안에서 보는 알몸과 이발소 안에서 보는 알몸은 그 모양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노소를 말론하고 모두들 에덴동산에나 소풍 온 줄 알고 있는가. 아무 거리낌 없이 발가벗는 채 내 코앞을 활보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불쾌한 풍경을 보기가 언짢아서 이발을 마친 다음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순서에 따르고 있는데, 이런 절차는 계속 나 혼자만의 예절과 질서일 뿐이다.
“아저씨는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세요?”
바쁘게 가위질을 하고 있는 이발사에게 나는 이렇게 물었다.
“나도 처음에는 대하기가 좀 민망스러웠지만, 이젠 눈에 익어서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혹시 본인의 아버지나 나이 먹은 동생이 여기 이런 모습으로 앞에 앉아 있다면요?”
“글쎄요. 그렇기는 하지만, 모두들 목욕탕으로 들어갈 것을 전제로 한, 당연한 몸차림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이런 몰염치와 무질서 속에서 인간의 문화는 변하고 발전하는 것이겠지만 그런 가운데 바로 우리 코앞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일쯤은 바로 볼 줄 아는, 인간으로서의 눈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같은 건물 안의 목욕탕과 이발관과의 거리는 불과 몇 미터밖에는 안 되지만 그 놀이마당의 내용은 사뭇 다르기에 하는 말이다.
남녀가 몸을 가리게 된 것은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을 알게 된 데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이 비단 이곳만의 이야기에서 끝날 일인가. ‘’적나라(赤裸裸)라는 말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발가벗은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장소를 가릴 줄 모르는 몰염치한 알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식 없는 ‘진실성’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안다.
사람 사는 일이 이렇게 쉽고도 어렵다. 단 한 걸음의 차이에서 사람과 하등동물의 자리가 뒤바뀌어 얼굴을 못 드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보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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