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는 천사다 / 김새록
긴 머리카락이 귀를 덮고 있다. 눈·코·입은 ‘나 여기 있노라.’며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있건만, 잘록한 두 귀는 검은 머리카락 속에 잠복중이다. 소리를 전달하고 달팽이관을 통해 몸의 평형을 유지하는 소중한 역할을 하는 귀는 관심받기는커녕 먹다 만 찬밥 신세다. 볼 양쪽에서 문지기처럼 버티고 있는 생김새를 보나 크기를 보나 기능면을 보나 눈·코·입보다 뒤질 게 없다. 하지만 귀는 머리카락 뒤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외향적인 눈·코·입과 달리 귀는 정관적靜觀的이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과 닮았다.
귀를 여성들은 왕따 시키기 일쑤다. 주름살, 눈썹, 눈, 코, 입술, 피부……. 심지어 신체 일부까지 가꾸고 뜯어고치느라 성형외과에서 많은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귀는 숨겨 놓은 자식 취급이다. 눈썹 눈·코·입술처럼 귀를 성형하는 사람은 드물지 싶다.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외양뿐만 아니다. 온갖 잡음으로 피로에 지친 귀에는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인간에게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두 개인 이유를 유대인은, 말하는 것의 두 배로 들으라는 뜻으로 풀이한다는 글귀가 무색하다.
이목구비라는 한울타리 안에 모여 있는 친구들이다. 눈은 행동이 민첩해서일까, 귀와 다르게 세상의 눈치를 사로잡는다. 눈꺼풀 수술을 하기도 하고, 마스카라를 올리고 아이라인을 그리는 등 관심을 듬뿍 받는다. 코는 우뚝 솟은 기세로 얼굴 중앙에서 폼을 잡고 있다. 행여나 콧대가 낮아서 기죽을세라 콧대를 더 세워주고 콧구멍을 안으로 밀어 넣는 등 의술의 힘도 마다하지 않는다. 입이라고 가만히 있겠는가. 루주로 핑크색, 커피색, 붉은색 등 여러 색깔로 번갈아 가면서 곱게 입술을 그려주고 애정을 쏟아 붓는다. 그래도 성이 안 찬 사람은 아랫입술이 짧고 두터우면 섹시해 보인다며 시술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반영구적인 화장도 한다. 입술에 색을 넣고, 입꼬리를 치켜 올리는 등 앵두타령을 한다. 눈썹, 눈, 코 입술은 사랑스러운 애첩이라면 귀는 뒷방 늙은이 신세다.
화장을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가려진 귀가 안쓰럽다. 머리카락을 제치고 귀를 내놓아 본다. 모처럼 귀가 세상 밖으로 내다보는 느낌이 든다. 보아주는 이 없는 머리카락 뒤에서 외로움이 병이 되었을까. 이명 현상을 일으키며 하소연한다. 일종의 떨림판과 같은 역할로 소리를 듣는 고막을 닫아버릴지 모른다는 겁을 준다. 아뿔싸! 그때야 관심을 보이며 병원을 떠올린다. 귀를 폼나게 성형하러 간 것이 아니고 치료목적으로 이비인후과를 찾는다. 그마저 관심을 가져줘 다행이라고 여긴 귀는 다시 역할에 충실하다. 개성시대의 독특한 유혹에도 현혹되지 않고 본연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귀가 돋보인다.
돋보이는 아름다움도 때가 되면 세월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나보다. 고령이신 친정아버지는 전화를 받아들면 동문서답이다.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수화기에 대고 ‘아버지, 아버지’ 불러대도 딸의 목소리를 전혀 못 알아듣고 ‘누구세요, 누구세요?’ 하시면서 ‘어허~전화해 놓고 소리가 없다.’며 뚝 끊어버린다. 기가 찰 노릇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아버지 귀가 어찌나 밝던지 귀신같다고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맑고 고운 소리가 아닌 날카롭고 둔탁한 소리에 멍이 들었을까. 보청기를 사용해 보고 이비인후과를 찾아가 보아도 별 효과가 없다. 문명의 편리함 속에 경쟁이라도 하듯 쏜살처럼 사라져가는 정다운 음성이 그립다 못해 아예 잠금장치를 걸고 있나보다. 좋아하는 노래 <성주풀이>도 불러주고 “사랑합니다.”라며 귀를 즐겁게 해드릴 건데 아버지 귀는 이미 저만치 멀리 있다.
쇳소리 같은 파다한 잡음이 넘치는 세상이다. 내 귀라고 언제까지나 청력이 좋을 리 만무하거늘, 기계음에 익숙하여 맑고 투명한 소리에 무뎌질까봐 은근히 두려워진다. 들리는 것이 아닌, 들리지 않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대하겠노라며 새삼 마음을 다진다.
그런 생각만은 아니지만 세수를 할 때도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귀를 씻는다. 구석구석 씻고 깨끗이 닦아주면서 때로는 살며시 부드러운 음성으로 “귀야! 입이 앞서 말하기보다 귀기울여 듣겠노라.”라고 말을 건넨다.
귀를 덮고 지내다보니 듣기보다 말이 우선이었지 싶다. 그래도 ‘나를 몰라준다며’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 눈처럼 좋다고 눈웃음치면서 간드러지게 웃지도 않고 분하다고 째려보지도 않는다. 상큼한 향기가 난다고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지도 않는다. 기분 좋다고 헤벌쭉 웃지도 않고 속상하다고 비수 같은 말을 퍼붓지도 않는다. 있는듯 없는 듯 무던하고 생색을 모르는 귀다.
어디 무던하기만 할까. 건강척도에 가장 민감한 기관이 귀라고 한다. 귀에는 온몸의 경혈과 연결된 약 200개의 반사점이 모여 있다고 하니 귀가 몸의 중심이겠다. 몸의 각 부분이 귀와 연결되어 있어 귀를 만지는 동작만으로도 오감을 지각하는 능력이 커지고 또 균형 감각이 향상된다. 이름난 장수촌의 장수비결 가운데 하나가 매일 밤마다 귀를 비비고 빨갛게 되도록 자극한 뒤 잠자리에 드는 것이라고 한다.
건강척도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봄의 전령들이 톡톡 터지는 미세한 소리, 가뭄 끝에 모처럼 후드득 쏟아지는 소낙비 소리, 뜨르륵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 푸드득 덤불 속에서 느닷없이 힘껏 날아오르는 장끼소리, 처마 밑 고드름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를 전해주는 귀는, 귀는 소리의 전령사며 천사다.
긴 머리카락을 젖히고 환하게 나와 있는 귀가 자판기 치는 소리를 쫑긋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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