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외우며 / 고봉진
초등학교 시절에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이 지방 저 지방으로 전근이 잦아 낯선 고장의 새 학교로 전학을 자주 다녔다.
2학년에 올라가지 얼마 되지 않아 입학 후 세 번째로 또 전학을 갔다. 새 학교에 전학 수속을 마치고 반을 배정받은 뒤, 다음 날 아침에 등교를 하여 교실로 들어갔다. 먼저 와 있던 아이들은 물론 새로 도착하는 아이들도 모두 제자리에서 책 보따리를 놓고 앉자마자 눈을 감고 선생님이 올 때까지 무엇인가 4 . 4조의 운율이 붙은 소리를 크게 합창했다. 그 전 학교보다 학과 진도가 빨라 벌써 구구단을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생소한 광경에 무척 당황했다. 곧 산수 수업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외우던 것이 무엇을 뜻하고, 무엇을 위한 것인가는 알게 되었지만, 그 뒤로도 구구단을 단체로 암송하는 경우에도 무턱대고 우물쭈물 잘 모르는 소리를 따라 할 수도 없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며칠 동안 그렇게 버티는데 담임선생님이 눈치를 채고 왜 너는 외우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엉뚱하게 별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 그런다고 대답을 했다. 굳이 구구단을 외우지 않더라도, 같은 수를 몇 번씩 더해 주는 덧셈으로도 계산이 된다는 설명까지 했다.
선생님은 빙그레 웃더니 칠판 한구석에 단위가 서너 자리나 되는 긴 두 수의 곱하기 문제를 써 놓고, 나에게 앞으로 나와서 풀어 보라고 했다. 칠판 앞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보라는 듯이 천천히 구구단으로 소리 내어 계산해서 답을 써 놓고는, 시간이 모자라면 집에 가서라도 맞는 답인지 아닌지 네 방식으로 계산을 해서 확인을 하라고 했다.
구구단의 위력에 감복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때 마침 집에 머물던 삼촌에게 구구단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일본에서 공부를 한 삼촌은 우리말로 가락을 붙여 외우는 것은 서툴렀지만 1단에서 9단까지를 써 주었다. 나는 그날로 반 아이들 가락 흉내를 내서 그것을 다 외웠다. 그 이후 누구나 그러하듯이 어떤 경우에도 잊는 법 없이 그것을 활용하고 있다.
그 몇 해 뒤의 일이다. 겨울방학 동안 설을 전후한 시기에 아이들이 우리 집에 모여서 자주 시조 카드놀이를 했다. 한 아이가 각 시조의 초, 중장이 적힌 카드를 차례로 읽으면, 아이들은 방바닥에 놓여 있는 카드 중에서 그 시종의 종장이 적힌 것을 서로 먼저 찾아서 집어 오는 놀이였다. 그 놀이를 하다 보니 3 . 4조를 기본으로 한 정형시라 그랬던지 그 시조들을 쉽게 외우게 되었고, 특히 자수가 3 . 5 . 4 . 3으로 구성된 종장들은 지금도 입에서 술술 나올 정도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자 국어 선생님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에게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우리말 씨뿐만 아니라 외국어 시까지 다 외우도록 하라는 권고를 했다. 그 선생님을 특별히 따르던 나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 교과서에 실린 것들뿐이 아니라 꽤 여러 편의 시를 외웠다.
우리 시로는 청록파를 중심으로 한 그 언저리의 시 그리고 영시는 워즈워스, 제2외국어로 배웠던 독일어 시는 릴케 것과 헤세 것을 주로 외웠다. 시들을 정형시가 아니더라도 다 내재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큰 소리로 읊다 보면 노래처럼 느껴지며 잘 외워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래 기억되는 것은 곡이 붙은 가사인 것 같다. 가끔 기분이 좋은 아침에는 세수를 하면서 입으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런데 그 노래가 대부분 어릴 때 듣고 부르던 유치한 노래일 경우가 잦다. 언제 적 것인데 아직도 이렇게 남아 있는지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 또 신기한 것은 그런 노래보다는 뒤에 익힌 것이지만 이태리 가곡이라서 그 의미도 정확하게 모르는 길고 복잡한 가사를 온전히 기억하고 부를 수 있는 점이다.
말이란 어떤 가락에 맞추어 외워야 머릿속에 쉽게 그리고 오래 남는다는 증거들이다.
사람이 문자를 발명하지 못했을 때는 어떤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운율이 있는 말로 이야기를 만들어, 입에서 입으로 여러 세대의 사람 머릿속에 릴레이식으로 저장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가장 오래 된 고전들은 거의 운문이다. <우파니샤드>, <시경>이 그렇고, <일리아드>, <오디세이>가 그렇다. 그것들은 문자가 발명되기 전부터 구전되어 오던 것이 모체가 되었거나 그 이후의 것도 암기에 적합한 형식인 운문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서사시는 책으로보다는 주로 음유 시인의 구전으로 그 생명이 유지되어 왔고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의 판소리도 주로 문맹이 많던 시절의 구비 문학이었다.
요즘도 나는 자주 시를 외우고 있다. 젊을 때 외운 시들을 가끔 암송하면 즐거워진다. 그래서 좀 더 다양한 페퍼토리를 갖고 싶은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 외운 시들이 노래 남지 못한다는 슬픈 사실을 뼈저리게 맛보고 있다. 왜 젊을 때 좀 더 많은 시를 외우지 않았을까 후회를 하지만, 다 지난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시를 발견하면 며칠을 걸려 외우고, 또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자주 되풀이해서 읽는다.
이런 취미는 오랜 옛날 문자가 없던 석기시대에 살던 사람들과 같은 정서가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들이라고 음운이 있는 말을 암송하는 데 따르는 여러 가지 즐거움을 의식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컴퓨터의 보급으로 맞춤법을 잘 몰라도 바른 글을 쓰고, 한자(漢字)를 일일이 기억하지 못해도 적절한 한자 단어를 골라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CD나 DVD 한 장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저장되는지 사람의 기억력이 나설 자리가 없다. 이런 세상을 살면서도 나는 아직 고집스럽게 짧은 시 몇 줄을 외우는 즐거움을 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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