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사랑 / 서경희
어이할거나 또 사랑에 빠지고 말았네.
올해도 어김없이 나는 첫사랑을 배반하고 두 번째 사랑에 빠지고 말았구나. 어떻게 고백해야 할까? 내 이 변함없는 배반의 사랑을. 사랑이란 원래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는 것이니 나인들 어쩔 수가 없다.
여름이다. 해마다 똑같이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계절이 바뀌는 이 길목에 서서 나는 또다시 열에 들뜨고 있다. 남들은 더운 여름을 싫다하지만 나는 뜨거운 여름의 그늘에 앉아 사랑의 흥분에 빠진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이 여름의 너울은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결국 나를 유혹에 빠뜨리고 마는 쾌남아의 정열이다.
지난 봄, 나는 봄에게 맹세했다. 세상에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 모습이 내게로 오는가. 누가 뭐래도 나는 이 봄의 아름다움을 천하에 알리는 한 마리 호랑나비라고. 그 순정의 진실을 의심 없이 드날렸다. 화사하게 웃음짓는 봄처녀의 어여쁨은 내가 전에 다른 계절에게 가졌던 모든 애정을 송두리째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감격하고 소리쳤다. 오직 내 사랑 그대뿐. 결단코 이 사랑은 변치 않으리라. 봄날의 햇살은 그렇게 내 진실의 옷을 유감없이 빛나게 했다. 이제야 나잇값을 한다고 느긋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달 후인 지금, 나는 또 흔들리고 있다. 희미해져가는 옛 사랑의 맹세 앞에 새로 찾아온 이 초록의 애인은 또 다른 매력과 사랑의 감정을 불끈 솟아나게 한다. 푸른 물이 뚝뚝 듣는 초록의 군무를 보면 내 정수리에 찬물이 쏟아진다.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나는 통째로 그 초록 웅덩이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세상에 이 여름만한 계절이 없으니 진정 당신의 매력을 사랑하다고 홀랑 고백하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또 몇 달 후면 배반의 칼을 밸 것이다. 가을이라는 천하제일의 현숙한 아름다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애인에게 눈물 흘리며 사랑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을 만난 후 나는 나의 헛된 무게를 괴로워하노라. 이제 가진 것 모두를 내려놓고 홀연히 그대를 따라 가벼운 잎으로 흩날리겠노라.
그러다 또 몇 달 후, 겨울이라는 엄숙한 철학도에게 마음은 다시 뺏길 것이다. 고요히 갈아입은 두꺼운 옷 속으로 진중히 내일을 가다듬는 신실한 그 청년에게 태연히 사랑고백을 하고 말 것이다.
나는 늘 이랬다. 해마다 줏대 없이 네 번의 사랑을 번갈아했다. 50년을 그렇게 헤맸다. 이것을 보면 이것이 좋고 저것을 보면 저것이 좋아, 나도 모르는 내 심중이 어디에 있는지 그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떠밀리기만 했다.
그러나 나를 떠나면 그 대상은 오직 ‘자연’이라는 당신이니, 나를 패륜아로 만든 이 아름다운 범인을 누가 힐난하겠는가. 그래서 다시 다잡는다. 더 이상 나의 오락가락에 대해 번민하지 말 것을. 꼭 하나만을 사랑해야 된다는 사랑의 법칙은 이 세상 이디에도 없다. 그런 강박관념은 미개인이나 가져라. 사랑하고 싶으면 마음껏 사랑하라.
나의 사랑을 시험하듯 봄 ․ 여름 ․ 가을 ․ 겨울 ․ 네 명의 꽃미남은 변함없이 나에게 사랑의 헌화를 할 것이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우산 속에서 / 최 춘 (0) | 2013.07.06 |
---|---|
[좋은수필]지나친 방어는 도전 / 박 헬레나 (0) | 2013.07.05 |
[좋은수필]기억을 돌려주세요 / 임만빈 (0) | 2013.07.03 |
[좋은수필]어머니의 등 / 고정희 (0) | 2013.07.02 |
[좋은수필]아내 사용 설명서 / 김근혜 (0) | 2013.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