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락(苦樂) / 김시헌(金時憲)
옆방의 부부싸움은 대개 열두 시쯤 되어야 시작된다. 앙칼진 여자의 항변이 나오고 돌을 치는 것 같은 강한 남자의 고함이 높아 가면 마침내 물건 부수는 소리로 발전한다. 그 때가 되면 벌써 나는 잠을 깬다. 나는 깬 채로 한동안 싸움 소리를 듣기만 한다. 찬장을 부수는 소리, 문을 때리는 소리,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 사람 치는 소리 등이 뒤범벅이 돼서 위험감이 느껴져야 비로소 나는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를 흔든다. 아내는 멋도 모르고 눈이 동그래진다. 싸움을 말리라고 눈짓을 하면 그제야 옷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밖으로 뛰어 나간다.
남의 부부싸움에 너무 민감하게 개입하는 것이 싫어서 아내를 보내 놓고 한동안 관찰만 한다. 개싸움이나 닭싸움처럼 붙잡고 밀고 때리는 모양이다. 투닥투닥 사람 치는 소리가 더욱 심하게 들려오고 그것에 가세해서 아내의 싸움 말리는 소리가 사이를 뚫고 섞인다. “나 죽는다!” 하는 부인의 외마디 비명이 터져나올 때쯤 되면 마침내 나도 출동을 해야 한다.
남편은 체구가 작다. 부인보다 키가 작고 기운도 부인을 따르지 못한다. 한데도 남편이 공격편이 되기 때문에 비명은 언제든지 부인 쪽에서 먼저 울린다.
건너가 보면 두 부부는 뱀트림이 되고 있다. 팔다리가 서로 꼬이고 엉켜서 한덩어리다. 나의 아내는 달라붙어서 그 뱀트림을 풀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나는 무슨 큰 사업이나 벌이는 기분으로 작업에 착수한다. 남의 부인에게 먼저 손을 댈 수는 없고, 남편 쪽의 다리나 팔을 잡고 힘 있게 당겨본다. 그러나 엉킨 다리 팔은 꼼짝을 않는다. 할 수 없이 감겨 들어간 남편의 손가락을 나꾸어서 뒤로 젖힌다. 아픈 모양이다. 아야야! 소리를 치면서 손을 푼다. 그 기회를 이용해서 한데 엉킨 부인을 끌어 잡아당긴다. 부인의 체구가 커서 쉽게 당겨지지 않지만 자신이 풀려나오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협력이 돼서 몸은 확 풀린다.
부인을 방밖으로 떠밀어내면 남편은 닭 쫓는 사람모양 확 뒤따른다. 그러면 나는 남편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는다. 체구가 작기 때문에 내 품안에서 그는 벗어나가지 못한다. 나의 아내가 부인을 데리고 대문 밖으로 도망을 가 버리면 그것으로 싸움은 대단원이 된다.
“저년이 화냥년입니다. 저런 년은 죽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놓쳐버린 남편은 나를 붙들고 호소를 한다. 나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곧 안다. 남편에게는 직업이 없다.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니까 부인을 남의 식당에 보내 놓고 있다. 하루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시간은 대개 열한 시나 열두 시다. 그들의 싸움이 밤 열두 시쯤 되어야 터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남편은 부인을 식당에 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보내놓고 보면 속이 상한다. 다른 남자와 꼭 무슨 일이 생겼을 것 같은 불쾌감이 생긴다. 그 불쾌감이 쌓이면 한바탕씩 터져야 한다.
그럭저럭 싸움이 종국에 가고 구경꾼도 돌아가게 되면, 부인도 언제 돌아오는지 남몰래 와서 잠에 든다.
이튿날 아침이 되면 집안은 아주 고요하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 싶도록 원상으로 돌아가 있다. 부인은 일찍부터 식당에 출근해서 없고 남편은 늦잠을 잔다. 지난밤의 피로를 푸는 모양이다. 그러나 마당가에는 전날 밤의 전적이 보인다. 유리그릇 깨진 파편이며 문살이 꺾어진 문짝이며 아무렇게나 던져진 실내 장식품들이 정돈이 안 된 채로 굴러다닌다. 태풍일과라고 할까? 강한 바람이 와서 휘저어 놓은 직후와도 같다.
일요일 같은 날은 나도 늦잠을 잔다. 자고 있으면 마당에서 뚱땅거리는 망치 소리가 난다. 남편이 일어나서 문을 수리하는 소리다. 나는 문밖을 나가서 마당을 거닌다. 남편은 일하던 손을 멈추고 나에게 “미안합니다.”하고 인사를 보낸다.
실직으로 놀고 있는 남편은 종일토록 할 일이 없다. 생각한다는 것이 식당에 나가 있는 아내의 동태뿐이다.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네는 남편의 옆을 지나면서 “오늘은 심심하지 않겠습니다.”하고 한마디 비꼬아 준다. 그러면 남편은 빙그레 게면쩍은 웃음을 짓는다. 자기 손으로 부수어 놓고 자기 손으로 수리를 하고 있는 그의 작업을 구경하고 있으면 자꾸 우스워진다.
이튿날 저녁은 대개 부인이 좀 일찍 돌아온다. 무슨 구실을 대서 조퇴라도 하는 모양이다. 아이들의 웃는 소리, 음식을 나누어 먹는 소리, 남편의 큰 말소리 등으로 가정은 한때 행복의 꽃이 핀다. 누구의 가정도 따르기 어려운 평화와 행복이 한때를 즐겁게 만든다.
처음 그 집에 이사를 갔을 때는 위험해서 살 수가 없었다. 살인 사건이 날 것 같은 위급한 상태를 보았기 때문이다.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부부싸움은 계속이 된다. 평화와 싸움, 싸움과 평화의 반복이 그 집 생활의 전부같이 보인다. 그런데도 희한하게도 생활은 다름없이 계속이 된다. 아기를 낳고, 새 그릇을 사들이고, 손님을 맞이하며, 갈 곳도 간다. 아마 싸움이 없으면 권태로와서 살 수가 없는 듯이 보인다.
사람은 고락의 반복 속에서 인생을 치른다. 苦가 닥쳤을 때는 도저히 못 살 것 같은 절망을 느끼는데도 樂이 오면 그런대로 살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옆집의 부부싸움은 그러한 인생의 축도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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