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묵시록 / 강호형
친구 S는 나를 K시로 데리고 갔다.
친구를 따라 나설 때만 해도 이제 모든 문제가 시나브로 풀려가려니 했다. 그러나 조리를 돌리듯 낯선 거리를 한 바퀴 답사시킨 S는 “잘해보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는 손 한 번 흔들어 보이는 법 없이 총총히 돌아가 버렸다.
낯선 항구도시의 첫 밤은 몹시도 을씨년스럽고 뒤숭숭했다. 삼류 여인숙의 촉수 낮은 형광등 불빛이 처연했다. 지구의 끝까지 밀려나 이제 더는 한 발자국도 물러설 땅이 없다는 자각이, 부-ㅇ 부-ㅇ 창문을 울리는, 이무기의 울음과도 같은 뱃고동소리로 하여 더울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신방에서 홀로 눈물짓고 있을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울지 않으려고 그 밤을 새웠다.
가만히만 있어도 중간은 간다고 한다. 의협심이 강한 친구가 장에 가자는 바람에 시래기타래를 메고 따라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군사혁명 직후의 어느 정치가가, 지역구의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거룩한 뜻을 세워 고등공민학교를 운영하다가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자 문을 닫아버린 일이 있었다. 마침 그 학교의 교사로 있던 친구 L이 비분강개하여 인수할 것을 권유하는 바람에 애국애족, 애향의 신념으로만 무장한 그 정치가도 손을 들어버린 학교를 떠맡게 되었던 것이다.
총각 신체나 면해보려고 근근득신 모아 두었던 장가 밑천까지 털어 넣어가며 몇 회의 졸업생을 내는 동안 날로 쌓여만 가는 부채를 감당할 길이 없었다.
어느 초등학교 햇병아리 교사였던 나의 약혼녀(지금의 아내)는 햇병아리답게 순진한 데가 있었다. ‘사랑’ 하나면 가시밭길 천 리가 무슨 문제냐? 라는 맹랑한 나의 감언이설을 믿고 살뜰하게 모았던 혼수자금까지 ‘범의 아가리’에 털어넣고 말았으니…….
뜨거운 맛은 데어 본 사람이 안다. 빚쟁이들의 성화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학교 문을 닫아버릴 수도 없는 것이, 전임 교주였던 정치가의 코웃음쯤이야 배짱으로라도 비켜버린다지만, 무구한 아이들은 다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나아갈 길이 없다고 물러설 자리까지 없으란 법은 없으련만, 나에게는 물러설 자리도 없었다.
“내가 없으면 남도 없다. 내가 없고 남도 없는데 빚이 어디 있으며 체면이 어디 있겠느냐……” 갑자기 염세철학자가 된 노총각을 구제한 것은 나의 어린 신부였다. “돈이 없으면 어떠냐, 방 한 칸에 이불 한 채, 취사도구야 못 마련하겠느냐. ‘사랑’을 두고도 빚이 무서워 결혼을 못하겠느냐……”
감언이설도 진심을 만나면 ‘진실’로 승화하는 것일까? 혼수자금을 사취(?)하던 나의 감언이설이 미구에 의젓한 진실이 되어 돌아오지 않는가?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동시에 두문불출의 은거가 시작되었다. 모든 부채는 나 개인에게 지워진 것이니 나만 피하면 동료들이 학교만은 끌어갈 것이었다.
가시방석은 지옥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신부 아내가 출근하고 난 빈 방을 지키며 어서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조만간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채권자들을 생각하면 대낮부터 통금령을 내리지 않는 정부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얼음 위에 댓잎자리 보아
임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이 밤 더디 새오시라.
이 밤 더디 새오시라.
석 달을 견디지 못하고 친구를 찾아갔다. 피하는 것이 ‘장땡’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동대문 시장에서 복지(服地)상을 하는 친구 S는 전후 사정을 묻더니 대뜸 보따리 장사라도 할 각오가 섰느냐고 물었다. 사흘을 굶은 놈이 밥투정을 할 뱃심이 어디 있겠느냐……
S는 경제학도답게 치밀한 데가 있었다. 가까운 도시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으니 멀기는 하더라도 K시를 무대로 뛰라는 지시와 함께 나를 인도한 것이었다. 가면서 덧붙이기를, K시도 경쟁이 만만치 않을 터이니 집에는 한 달에 두 번만 가도록 하라고 타이르는 것이 아닌가.
K시에서 행상이 시작되었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K시와 동대문시장을, 한 달에 두 번만 쉬고 매일 왕복해야 하는 일이었다. 너무 고단하여 입에서 단내가 났다. 그렇게 뛰어 다니다가도 문득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면 가슴이 아팠다. 못 견디게 담담할 때는 잠시 부둣가로 나가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올망졸망 투정하는 어린아이처럼 막아서는 작은 섬들을 너그러이 어루만지며 넘실거리는 바다! 거기 주황빛 낙조가 드리우면 바다는 거대한 파충류가 되어 말갈기 같은 비늘을 번쩍이며 꿈틀거렸다.
“오늘밤 자는 해를 함지에 머무르고 내일 아침 돋는 해를 부상에 매었으며……”
구리쟁반 같은 불덩이가 스멀스멀 지평선으로 잠겨들 때 나는 인당수의 재물로 팔려가는 ‘신청이’가 되어 그 바다에 뛰어 들고 싶은 충동과 싸우기도 했다.
환상적인 일물의 장관과는 달리 부둣가에는 언제나 고단한 삶이 있었다. 부산하게 오가며 떠들고, 웃고 때로는 아귀다툼을 하는 아이의 망치 소리가 비릿한 갯내음과 함께 나약한 나의 감상(感傷)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좌판 앞을 서성거리며 건성으로 값을 묻기도 하고 목로집에 가서 어부들과 어깨를 비비며 막걸리를 한 사발 마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폭풍이 몰아쳤다. 하루 밤낮을 울부짖으며 포효하던 바다에 평온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부두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제방이 무너지고 지붕이 날아가고 목선들도 산산이 부서져 나뒹굴고 있었다.
누군가 삶을 고해라고 했다. 갯벌에 누운 시체를 부둥켜안고 몸부림치는 여인을 보고 돌아온 그날 나는 여관방에 엎드려 아내에게 긴 편지를 썼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지금 / 서강홍 (0) | 2015.06.18 |
---|---|
[좋은수필]UFO / 정경자 (0) | 2015.06.17 |
[좋은수필]굴림에 대하여 / 김덕남 (0) | 2015.06.14 |
[좋은수필]과속(過速) / 이동렬 (0) | 2015.06.13 |
[좋은수필]매화, 육백 년을 살다 (0) | 2015.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