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 / 정경자
짙은 구름을 배경으로 정확하게 정육각형의 위치에 빛을 발하는 여섯 개의 점.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육각형이 무려 다섯 대나 내 머리 위 상공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 자연이 만들어낸 현상은 아니었다.
해외토픽이나 뉴스에서나 봄 직했던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
그날, 종일 내리던 비가 잠시 그친 어스름 초저녁 즈음이었다.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비를 잔뜩 머금었는지 구름은 짙은 먹색을 띠고 있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가게의 차양 막을 걷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며 하늘을 살펴보았다. 하늘을 자세히 관찰한 것은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구름 모양이 몽글몽글하니 참 둥글다는 생각으로 한참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두렵기도 하고 신기한 진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진기한 현상을 혼자보기도 아까웠지만 이 상황을 누군가에게 알려야만 했다. 그 같은 현상을 함께 증명해주거나 동조할 사람이 필요했다. 이웃사람들을 불러 보여주자니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UFO가 수 초 동안 머물지, 수 분간 머물지 알 수없는 일이므로 그 긴박한 상황에서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 사이에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나는 영락없이 실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공산이 컸다. 방에서 놀던 두 아이를 불러내어 저것이 미확인비행물체인 것 같다고 가르쳐 주었다.
“정말 신기하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것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순간순간에도 카메라를 가져올까 말까, 어느 기관에 전화를 걸어 신고를 해야 할까, 방송국에 제보전화를 해야 할까 망설였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마음은 급한데 도무지 무얼 해야 할 지 판단이 서질 않아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골목을 왔다 갔다 했다. 그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눈으로 세세히 기억하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어 머무는 시간을 재려고하는 순간 육각형의 점들이 일순 흔들리는가싶더니 편대 비행 대열로 시야에서 휙 사라져버렸다. 겨우 7,8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은 한잠이 들고 꽤나 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오후의 광경을 그대로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에이, 잘못 봤겠지’였다. 그날 이후 하늘을 자주 살피는 버릇이 생겼지만 희미하거나 미세한 점 하나조차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후 몇 달 동안은 근처에 사는 동생이나 지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UFO를 봤다는 이야기를 자랑삼아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 결 같이 잘못 봤다거나 말로는 수긍하면서도 얼굴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심지어 내게 ‘4차원’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이도 있었다. 벽을 보고 이야기한들 이보다 덜 답답할 것 같았다. 나는 분명 보았는데…….그 이야기에 왜 아무런 동조도 받지 못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십여 년 넘게 살면서 나는 타인에게 그렇게 믿음을 주지 못했거나 설득력이 형편없었던 걸까? 그때 스스로 내린 결론은 사람들의 반응은 결국 내가 쏟아낸 언어의 반증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후로 UFO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얼마 전, 글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국제 정세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우연히 UFO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역시나 멀뚱한 표정으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바로 그때 A작가가 그걸 본 게 언제쯤이냐고 되물었다.
“2003년 5월쯤이었어요.”
“그렇다면 사실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군요. 관련기관 통계에 의하면 2002년에서 2005년 사이에 UFO 출몰 신고 건수가 가장 많다더군요.”
그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 가장 어두운 구석에 전등 하나가 환하게 켜지는 것 같았다. 내 의견에 보여준 호의적인 태도보다도 그가 열린 사고로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나아가 사실에 근거한, 보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견을 좁히는 화법에 탄복했기 때문이다.
그 일로 인해 A작가를 다시 보게 된 것은 물론, 그를 내심 존경하게 되었다.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임에도 긍정적인 대화의 기술만큼은 내가 본받아야 할 점이었다.
그에 비해 화법이랄 것도 없는 나의 말투는 거의 부정적인 방식 즉, 설득이나 억지에 가까웠다. 귀에 착착 감기는 달콤한 말을 남발하는 사람에게는 곁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솔직함을 내세워 상대방이 마음 상할 수 있는 말도 함부로 내뱉었다. 급한 성격 탓에 남의 말허리를 자르고 내 의견부터 찔러 넣기 일쑤였고 때로는 사사건건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반대를 위한 반론을 제기하느라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로써 상대를 설득시키거나 굴복시킨 기억은 거의 없었다.
자기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알지 못 없는 낯선 이야기를 접했을 때, 또는 논쟁의 중심에 섰을 때 나는 귀를 활짝 열어놓고 머릿속으로는 UFO 다섯 대가 상공에 떠있는 상상을 한다. 한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나, UFO를 접하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어서 인간의 뜻대로 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뒤집어 보면 이제는 우주의 외계인도 지구인과 소통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UFO를 메신저로 보내지 않는가? 사실이 그러하다면 지구인끼리의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외계인과의 소통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아이가 자라 어엿한 고등학생과 복학생이 되었다. 며칠 전에 두 아이에게 어릴 때 본 UFO가 기억나느냐고 물었더니 두 녀석 다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렸다. 최후에 신빙성 있는 진술을 해줄 목격자조차도 이렇게 모르쇠가 될 줄이야, 앙큼한 배신자들. 너무 어렸던 녀석들을 탓해야 할 지, 아직도 길고 선명하게 남은 내 기억력을 탓해야 할 지.
'수필세상 > 좋은수필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두 벌의 옷 / 윤주홍 (0) | 2015.06.19 |
---|---|
[좋은수필]지금 / 서강홍 (0) | 2015.06.18 |
[좋은수필]바다의 묵시록 / 강호형 (0) | 2015.06.15 |
[좋은수필]굴림에 대하여 / 김덕남 (0) | 2015.06.14 |
[좋은수필]과속(過速) / 이동렬 (0) | 2015.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