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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지금 / 서강홍

지금 / 서강홍

 

 

 

 

관광지에서 사진사들이 즉석 사진을 찍어 판매한다. 어느 단체의 여행길에서 한 사람이 자기 사진을 보더니 얼굴을 돌린다. 너무 늙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일행이 덩달아 즉석 사진 찍기를 주저하는데 유독 한 친구가 나서더니 자기는 기꺼이 찍겠다고 한다. 이유인즉 지금의 그 모습이 남은 생애에서 가장 젊은 모습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잠시 후 모든 일행이 약속이나 한 듯 따라서 즉석 사진을 찍었다.

저렇게 많은 연세 되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까?’ 내 나이 이십대에 사십대 선배들을 향하여 가져 봤던 생각이다. 지금은 그 사십대를 부러워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사십대가 이해할 수 없는 애착을 지니고 살아간다.

예전에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친구들을 가끔 만난다. 지난 일을 떠올리며 그때가 가장 재미있었노라 말한다. 다른 사람들도 다 자기가 근무했던 시점을 기준으로 그때가 가장 좋았노라고 할 것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가져 본 생각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점 가릴 것 없이 딱 찍어 생각하는 그 순간의 장면에서 절정감을 느끼게 된다. 때론 유치원 발표회 때인 것도 같고 때론 고등학교 제복을 입혀 본 순간인 것도 같고 학사모 쓰고 졸업장 타던 순간인 것도 같고 혼인식장에서 행복감의 극치를 느낀 것 같기도 하다. 열 살짜리 우리 손녀, 그가 자라 온 날들을 생각하면 어느 때고 짜릿하지 않는 순간이 없다.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등으로 구별되는 삶의 장면들을 음미해 봐도 그렇다. 어느 시기 할 것 없이 그 나름의 애틋함을 지닌다. 희망에 부풀었던 소년기요, 열정에 몸부림쳤던 청년기요, 성취감으로 흐뭇했던 장년기요, 해방감을 만끽하는 노년기다. 최선의 행복감으로 이어지지 않는 연령대가 없으니 삶의 여정이 곧 하느님의 무한한 선물이다.

3세에게서 가져보는 애틋함은 2세를 능가한다.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하고 생각했던 노년, 그 노년의 행복감을 겪어 보지 않은 이가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보이 스카우트 기본 훈련의 마지막 날에 잠행이라는 과정이 있다. 어렵사리 하이킹 코스를 마치고 베이스캠프 가까이 오면 두 눈을 가린 상태에서의 잠행이 시작된다. 어둠 속에서 적진을 기습하듯 조교의 지시에 따라 정숙 보행으로 전진하는데 대열을 지어 오리걸음도 걷고 때로는 포복도 해야 한다. 포탄 터지는 소리가 나면 엎드렸다가 다시금 전진하곤 하는데 전진할 방향을 알려주는 밧줄이나 앞 사람의 허리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한다.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에 다다라 눈을 떠보면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맴돌았음을 알게 된다. 요란하던 포탄 소리는 풍선 터뜨린 소리였다. 영원하다는 하느님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들 생애도 잠행처럼 제자리를 맴도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삶에서 어느 시점이 가장 중요한가고 묻는 제자의 질문에 성철스님께서는 지금이라고 대답하셨다. 지금(只今), 다만 지()와 이제 금()자로 무한한 시간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자 하는, 의미를 두고자 하는 그 시각이다. 영어에서의 의미는 The present time(day), monent, Now, this time 등으로 순간, 필요한 때의 의미로 해석된다.

음악 연주 장면에서 과거와 미래는 의미가 없다. 지금만이 유효하다. 지휘자의 신호에 의하여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지휘봉을 놓는 순간까지가 작품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들 삶도 음악과 같이 보이지 않는 질서에 따라 온갖 소리를 내면서 흘러가는 일회성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그 시간을 최선의 노력으로 채워야 한다.

황금 보다 귀한 소금이요, 소금보다 귀한 것은 지금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이 가장 소중하다 함은 곧 삶의 모든 장면이 소중하다 함이다. 내일 잘 하면, 정해진 날에 잘 하면, 시합 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내일 잘 먹기 위해 오늘 굶음은 의미가 없다. 오늘의 소중함은 내일로 이어진다. 지금 잘 해야, 연습 때 잘해야 내일도, 시합 날에도 잘 하게 된다.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과업은 가족의 미음에 드는 것이다. 남의 마음에 잘 들기는 어렵지 않다. 다른 사람에겐 간혹, 조금씩, 잠깐만 잘 해도 만족을 줄 수 있지만 가족에게 만족을 주는 사람이 되려면 항상 잘 해야 한다.

법정 스님께서는 과정이 곧 목적이라고 하셨다. 항상 충실함이 곧 수행이요, 이를 실천하는 이도 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