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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두 벌의 옷 / 윤주홍

두 벌의 옷 / 윤주홍

 

 

 

 

노모의 위급하다는 소식에 수의(壽衣)를 살피던 아내가 급히 전화를 받는다. 손자를 막 출산했다는 기별이다. “무엇!아내는 수의를 놓고 손수 융으로 지어놓은 배냇저고리를 꺼낸다. 인생의 시작과 끝을 대신하는 옷 두 벌이 동시에 교차한다.

옷은 부끄러움을 가리는 무화과 잎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춘하추동 번갈아 얇고 두꺼운 옷으로 한서(寒暑)를 가리어 바꿔 입던 옷이다. 그러면서 교복과 군복을 입은 아들처럼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복장으로까지 변천한다. 옷은 타고난 자기 생김보다 품격을 돋보이도록 가꾸기 위한 변신의 장식으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옷에 대한 본래의 뜻은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예술이라는 호주머니 속에 깊숙이 넣어둔 채 오히려 멋을 붙여 디자인이라는 레이스를 달고, 지금은 입으려고 벗는지 벗으려고 입는지 배꼽을 내놓고 춤을 추어대는 옷을 패션이라 한다.

가끔 공개되는 인기인의 화려한, 그 수많은 옷을 생각하면서 나는 몇 벌을 더 가지고 있나? 변신의 장신구로 삼고, 실제의 본인보다 처해 있는 생활 현실에 아부하려는 기쁨조의 의상들이 몇 개 걸려 있나 생각해 본다.

그 수많은 옷 중에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두 벌의 옷이 있다. 그 하나는 세상에 태어난 아기에게 입히는 배냇저고리요, 또 하나는 우리가 죽어서 입고 가는 수의가 그것이다. 배냇저고리도 수의도 모두 본인 마음대로 입을 수도 벗을 수도 없다. 아기 옷은 부모가, 수의는 자식이 마련해 입히는 옷이다. 이 두 벌의 옷은 모두 내 뜻과는 상관없이 남에 의해 입혀지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 인생의 생사 길에서 입는 단 한 벌씩의 옷들, 수의 와 배냇저고리를 매만지면서 겨우 두 벌의 옷을 입고 가는 인생 길.” 하던 아내의 넋두리가 오래도록 귓전에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