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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가오리 / 강미나

가오리 / 강미나

 

 

 

좌판 언저리에 가지런히 한 줄로 누운 저것들. 그 옆 좁은 수조에는 등허리가 빛나는 활어들이 빙빙 돈다. 납작한 고기 한 마리 미동도 않고 바닥에 엎드려 뜰채를 기다린다. 오각 진 등에 황갈색 옷을 입고, 짧고 뾰족한 주둥이, 배지느러미는 연노랑이다. 꼬리에 가시 하나.

 

섣달 눈이 내린다. 함성처럼 내려온다. 미닫이문에 덧댄 우리판에 내 얼굴을 대고, 마당을 자꾸 내다본다. 방을 살그머니 나왔다. 청 끝은 얇은 미농지 깔아 놓은 듯 반질하다. 조심조심 축담을 내려서서 청 밑에 숨겨놓은 털신을 신었다. 마당에 깔린 솜이불에 뽀도독, 남새밭가 뒤란으로 뽀도독 겁 없이 상형문자를 만든다. 대문간으로 나가 한길을 한참 내다보고 싶다.

해거름이다. 수금하러 갔던 아버지가 눈과 살얼음 길을 걸어 집으로 들어섰다. “아이구, 날이 매찹네.” 흰 김을 뿜어내면서 아버지가 곱은 손 비벼 기다리던 내 볼을 만져준다. 등에 메고 온 상자를 마루에 내려놓는다. 그 소리에 이 방, 저 방에서 우르르 식구들이 나온다. 보따리 속에는 찹쌀떡과 곶감, 언니가 노래 불렀던 잡지책, 개떡종이에 싼 돼지고기들이 줄줄이 사탕이다. 어머니는 맨 아래에 핏물이 배인 푸대를 들어낸다. 눈을 감은 채 움직임이 없는 쟁반만 한 가오리. 밤늦도록 눈이 사각거리며 날렸다.

어머니는 새미 가에 가오리를 내려놓았다. 시간이 갉아간 황갈색 윗도리 남루해졌고, 연노랑 배는 하늘을 보고 누웠다. 일자로 걸린 뾰족 짧은 주둥이를 다물고 눈을 감추었다. 독 가시 하나 망가진 꼬리 채찍에 달렸다. 김 오르는 우물물에 벼락 맞는다. 어머니는 짚솔로 등 구석구석 오각지게 문지른다. 온 몸을 거칠게 보드랍게 마구 비벼대도 미동도 않는다. 껍질이 오돌도돌 고집이 세다. 칼이 노란 배를 갈랐다. 한 생애가 쏟아져 나왔다.

빨랫줄에 걸려 사나흘 북풍한설에 저 혼자 얼었다 녹았다, 가오리는 꾸덕꾸덕 속도 더께도 마른다. 탱탱하다. 속살이 비릿하다. 연골도 도드라지고 지느러미는 얇게 말라 곤두선 할아버지 수염 같다. 한데 솥에 대나무가지를 얼기설기 걸쳐놓고 배를 대고 눕힌다. 장작 서너 조각이 불땀을 내면 쉭쉭 수증기가 오른다. 가오리 표피는 도톰히 부풀어 빛이 난다. 실고추, 하얀 노랑 지단, 석이버섯 고명입고 단장을 한다. 아버지 술상에 안주로 오른다. “고놈 참 맛나다.” 오도독 오도독 연골 씹히는 가오리무침은 짭짤하고 고소하고 쿰쿰 애기오줌 맛이 났다. 가족들이 모이는 생일마다 명절이면 기원을 담아 볼이 두두룩하게 챙겨 먹이며 흡족해했다.

술도가에서 받아온 막걸리 한 동이가 마당가운데 놓이면 동네가 소란하다. 얼추 막걸리 한 툭바리가 돌면 직공들과 동네아저씨들의 노랫가락이 들리고,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목소리가 지붕을 들어올린다.

아따, 섣달 가오리는 액을 때우고, 정초 가오리는 재수를 불러오는 기라요.”

글치요. 가오리 애 한 점에 내 애 간장 다 녹는구먼.”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이 로터리를 돌아 빈터에 자리 잡는다.

해마다 아버지는 섣달과 정초가 되면 가오리를 사오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터는 온전히 어머니 몫이었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제 살이 헐고 찢겨져도, 긴 채찍꼬리에 독 가시를 품고 모래 바닥에 줄무늬를 따라 자리 잡은 가오리는 신성한 힘을 가진 영물이라고 믿었다. 작년 섣달 초하루에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장좌골바람은 매섭고 날도 추웠다. 심장이 아파 누워있던 어머니가 여든의 몸을 일으켜서 부탁이 있다며 운을 뗐다.

올 가오리랑은 니가 장만하면 좋겠는데순간 독가시가 불쑥 올랐다.

왜 쓸데없이 당신 몸 생각이나 하지. 그거 먹는다고, 아니 못 먹는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나는 샛된 소리를 냈다. 한참 아무 말 없더니 그래도하며 힘없이 돌아누웠다.

올 봄, 어머니는 여든 고개 당겨주던 긴 줄을 끊고 먼 길 가셨다. 해마다 거르지 않고 먹여주던 그 손도 따라갔다.

 

좌판 앞에 앉았다. 이국 땅 시장바닥에 칠레산 가오리가 낯설고 두려운 표정으로 누웠다. 껍질을 만져본다. 안 먹어도 괜찮다고, 못 먹어도 어쩔 수 없다고 미적거렸던 나는 가오리 한 마리를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해가 저만치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