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낯설게 하기 / 허경자

낯설게 하기 / 허경자

 

 

 

낯이 익은 사람은 대하기가 편하다. 굳이 차려입지 않아도 차 한 잔 정도는 가볍게 나눌 수 있고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좋다. 만난 지 오래되었거나 자주 만나는 사이에 낯익은 관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편하게 대하다 보면 오히려 소홀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론 섭섭하다는 정서적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고 때론 고여 있는 물처럼 지루한 관계로 정체되기도 한다. 낯익은 상대일수록 그에 따른 기대치가 높게 발산되기 때문이 아니던가.

 

뒤늦게 문학을 공부하다 보니 재미있는 말이 나온다.

낯설게 하기

세상을 살다 보면 분명 낯선 것보다는 낯익은 것이 좋을 법한데 고의적으로 낯설게 하다니 새롭고도 흥미로웠다.

 

낯설게 하기란 러시아 형식주의 비평의 대가인 쉬클로프스키가 사용한 비평의 방법이다. 그는 이미 습관화되었거나 자동화되어 버린 사물을 낯설게 만들어 가는 것이 예술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걷는 행위가 우리 생활에서는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일상적 행동이지만 걸음걸이를 낯설게 만들면 곧 춤이라는 예술로 승화된다는 것이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 언어에 운율 등의 형식적인 기법을 적용시켜 비일상적으로 낯설게 나타낸 것이 바로 시라는 문학 장르이며 그 시어와 일상어에 내포해 있는 차이를 분석하는 것이 문학 연구라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는 새로움과 익숙함이 공존할 수 없는 인간의 삶에 어쩌면 더 효과적일지 모른다. 세월 따라 진부해진 자신은 자성하지 않고 상대의 일상적 처신만을 탓하고 있는 세태가 아니던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욕망은 인간의 속성이다. 옷장 안에 즐비하게 늘어선 옷가지들을 보라. 쉴 새 없이 사들여도 여전히 샘솟는 새것에 대한 미련이라니.

 

인간관계에서도 다르지는 않다. 이성이라는 절제의 수완 덕택에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가볍게 처신되지 않는 것뿐이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인간관계란 장 속에 보관할 수도 밖에 내다 버릴 수도 없는 일이니.

 

낯익은 이에게 조금은 낯설게 다가서 보자.

 

감정대로 쏟아낸 무절제한 말의 상찬을 뒤엎고 정돈된 언어로 소통을 하자. 반복되는 일상으로 무기력에 지쳐 있다면 도전적인 의지로 비상(飛上)을 꿈꾸자. 늘 보던 익숙함에 상대를 가벼이 대하는 우매함보다는 낯익은 지수만큼 최선의 영접을 선사하는 현명함을 키워 나가자.

 

익숙하지만 진부하지 않고 낯설지만 생소하지 않은 것이 곧 낯설게 하기의 관계 미학이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