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 아워 / 우광미
“싸그르르”
서로를 품은 자갈을 바다는 쓸어갔다 내려놓는다. 모난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하며 내는 화합의 소리인가. 맞지 않는 서로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부딪치며 내는 불협화음인가. 어느 것이건 공존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바닷물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어둠의 정적은 들리지 않던 소리마저도 귀 기울이게 한다. 잠시 정전이라도 되면 별들의 실체가 보이고 절망의 어둠마저도 우리를 가장 낮은 곳에서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여명이 밝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최상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숨을 죽인다. 그것은 차라리 기도였다.
저기 여인이 바다를 향해 태초의 신화처럼 누워 있다. 변화무쌍하게 나타나는 자연의 신비함 앞에 기다림이란 의식을 치르고 있다. 아주 짧은 순간도 기다리는 자에게는 그 기다림의 부피만큼 길게만 느껴진다. 어둠 속에서 여명이 밝아오면 색 온도가 놓아진다. 검은 색의 배경이 짙푸른 색조를 띠기 시작한다. ‘매직 아워’다.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도 변화에 의해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순간은 극히 짧음으로 장비를 미리 세팅한 후 신속히 촬영해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몰입이란 수반되는 고통도 자신의 즐거움으로 전환될 수 있나보다. 꼭두새벽부터 원하는 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다 결정적 순간에 셔터를 눌러야 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잔상이 필름에 남겨진다. 예전 같으면 이것을 암실로 가져가 현상과 인화를 거친다. 그 과정동안 또 다른 세상을 기다리는 설렘이 있었다. 필름을 현상하게 되면 우리가 보는 반대로 음영이 나타난다. 그것을 인화지에 프린트하면 우리가 보는 시점의 사진이 된다.
이제 전자 카메라 시대로 넘어오고 편리한 손폰에 사진을 찍어 바로 확인한다. 특별한 애호가를 제외하고는 그런 아날로그식 기다림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간의 효율성을 우리 삶에 대입할 뿐이다. 컴퓨터로 형상화 작업을 바로 한다. 날밤을 센 것같이 무거웠진 눈으로 결과물을 본다. 만족할 만한 사진이었으나 재차 점검을 하는 과정에서 얼룩이 보인다. 사진 속 모델의 다리 부분에 얇게 있어 금방 눈에 띄지 않았다. 촬영 전에 장비를 점검하였고 주변에 장애물은 없었다. 모니터와 렌즈를 닦아보기도 한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잠시 생각은 모델에게로 간다. 자신을 삼켜버릴 듯한 파도 앞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끊임없는 파도에 자갈은 모난 자신을 부대끼며 의미를 찾고, 마침내 서로를 품고 갈 때 격랑(激浪)한 인생의 파도도 공존의 법칙 안에서 모두 빠져나간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닐까. 한참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깨닫는다. 온 정신을 몰입하고 있는 동안 가로등 불빛이 내 그림자를 피사체 위에 만들어 낸 것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가 서서히 밝아온다. 여명으로 가시적 거리에서도 감지하지 못한 내 그림자를 본다. 내가 보고자 하면 보이는 것을 우선으로 믿으려 했다.
삶이란 참으로 많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정확히 본 것도 완벽하게 정당화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내가 철저히 믿었던 사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체를 보는 눈을 잃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빨리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 이유일 게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때로는 타인에게 내 그림자 같은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고도 잘못된 일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했을 것이다. 지켜봄으로 믿음이 생기는 원칙보다 때로는 믿음으로써 보이는 것도 있다는 것을 돌아본다.
카메라는 사물을 관찰하고 대상의 숙성을 이해하려 한다. 나의 시점이 되었다 상대의 시점이 되기도 한다. 세상을 다양한 차원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수많은 순간들을 담아 저장 칩 속에 보내고 정작 자신은 비어 있다. 이제 사진은 진화된 기술로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을 더욱 부각시키기도 하고 은폐하기도 한다. 지나친 수정은 거부감을 들게 할 수도 있고, 너무 지신만의 세계에 빠진 경우는 주변과 어우러질 수 없다. 진실의 표현과 휴머니즘, 그것이 가진 본질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오는 매순간들을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기다린다면 그 과정이 ‘매직 아워’였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내 곁에 있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려진 많은 축복을 볼 줄 아는 심안의 세상을 열어야겠다. 그 순간 우리는 셔터을 누르면 된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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