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 / 이영희
나쁜 남자를 세 사람 알고 있다. 예수와 부처, 그리고 공자, 이 세 사람은 내가 제대로 문자를 해독할 줄 알게 된 이후부터 진정한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그들은 나에게 단순하고 평범한 진리를 이야기해주며 가르치지만 실천하기엔 여전히 어렵다. 거짓말하지 마라, 이웃을 사랑하라,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며 외치는 세 남자.
나는 거짓말을 안 했다고 계속 거짓을 고한다. 이웃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살살 아팠으며 늘 남의 떡이 훨씬 커보였다.
거기다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십자가 아래서, 법당 안 불상 앞에서 사랑과 자기를 염원하며 머리 조아리며 무릎 꿇지만 삶은 여전히 ‘회(悔)’만 있고 ‘개(改)’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가족 진지들, 이웃들과 화목하게 지내겠노라 다짐하고 돌아선지 채 몇 분도 안 되었건만 대웅전 앞마당에서 예배당 언덕길에서 다시 입을 삐죽거림이 시작되고 신도들 끼리끼리만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며 그지없이 친절하다.
그런데 나쁜 저 세 남자는 나쁜 놈들과는 달리 어떤 애틋한 그리움과 함께 은밀한 매력이 있다. 자꾸 빠져들게 만든다. 그들을 거부할 만한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 외면하지 못한다. 연민이 생긴다. 세 남자는 나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 그들도 자신들이 했던 말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않은 것인가. 그러기에 무엇 무엇은 하지 말라고 그토록 신신당부의 말을 했겠지. 왜 그들도 나처럼 괴로워하며 무능력했을까. 예수는 믿었던 제자에게 배신을 당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부르며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다. 그토록 훌륭했다는 공자는 어느 한때, 어떤 나라에서도 입국을 허락하지 않아 주린 배를 움켜쥐며 오랜 세월을 방랑했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서 홀로 깨달음을 얻었다. 뒤에 남은 사람들의 깨달음은 언제가 될지 요원하다.
나는 살아오며 절박한 상황에서 세 남자 중에 두 사람의 이름을 동시에 간절히 부르며 두 손 모아 기도를 해 본 적 있다. 하지만 내가 집을 얻을 때 모자라는 돈을 보태준 분은 하나님이 아닌 친정아버지였다. 이혼을 생각했을 때 사랑과 용서, 그 너머에 있는 인간의 도리를 일깨우며 아내와 어미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주신 분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닌 친정어머니였다. 나에게 건조한 나날에서 벗어나 이렇게 글을 쓰게 하며 윤기 도는 인생을 살도록 배려 한 사람은 공자가 아닌 남편이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구원을 받는 게 빠르다는 말이 맞다. 어떤 종교든 열심히 믿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일이 쉽게 이루어진 것처럼, 저 높이 계시는 분의 계시가 있어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또는 저렇게 되도록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과론적으로 자신이 믿는 바로 그 분의 뜻이었다고 한다. 편리한 대로 갖다 붙이는 데는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선수들이다.
예수가 열두 제자들을 데리고 다녔던 그 시대상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라 찾기 운동본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이스라엘 민족도 아니며 유대인도 아닌데 왜 이토록 많은 광신도들이 들끓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비행기를 타고 밤하늘에서 우리나라를 내려다보면 십자가가 가장 많이 세워진 땅이라는 말을 들었다. 십자가의 표적이 무서워지는 요즘이다. 지금 이 시대를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란 어디일까. 강대국인 미국이 쇠고기와 무기, 코카콜라와 햄버거 같이 무엇이든 팔아먹겠다고 점찍은 나가들이 약속한 땅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점점 허약해지고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려 눈을 부릅뜨는 세상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예수와 석가모니 그리고 공자, 이 세 남자를 따라 나선다. 가롯 유다처럼 돈 몇 푼에 양심을 팔지 않으려고. 어질게 따뜻한 눈빛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그리고 섣불리 신앙에 대해 아는 척 나대지 않기 위해서다. 그들이 아직은 세상을 완전하게 구원하지도 평정하지도 못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싫증나지 않는 남자들이다. 나의 결점과 약점을 세 남자는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 카리스마가 있다. 다른 이들에게 한눈팔다가도 결국은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보이지 않는 욕심이 많은 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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