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식당 / 김경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들 틈에서 아무리 고개를 들고 기웃거려도 오리무중이다. 가뭄에 콩 나듯 들러보는 거리가 그 사이 또 변해 있다. 도심에서 식당 하나 찾는 일조차 만만치 않음을 실감하며 바둑판처럼 붙어있는 식당들을 순회하는데 저 앞에 젊은이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무심코 올려다 본 이름에서 멈추어 있던 시공간이 짠하고 펼쳐지는 바람에 그 자리에 꼼짝없이 붙들리고 말았다. ‘새마을식당’이란다.
어렸을 적, 일요일 아침이면 우리 동네에 딱 하나 뿐인 스피커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하는 노랫소리로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를 신호로 빗자루를 들고 삼삼오오 모인 우리들은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비질을 해댔다. 앞집 언니, 뒷집 오빠, 아래 골목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마치 거창한 행사라도 치르는 양 분주한 일요일 아침을 열고는 했다.
흙길은 빗자루가 지나갈 때마다 뽀얀 속살을 드러냈고 우리들의 역사가 새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했다.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흥미로운 것들이 꿈틀거리며 지붕 위로, 신작로로, 강물 위로 번지던 때였다. 초등학생 때였으니 무려 사십 년 전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 셈이다.
식당 이름 하나가 단번에 저 먼 세월로 나를 데려가더니 급기야 자석에 끌리듯 문 앞에 다가섰다. 유리문에 적힌 메뉴에는 연탄이니, 석쇠니 하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 일색이었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왕왕 울려대는 새마을 노래와 새로 지어진 마을회관, 처음 들여놓은 탁구대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딸려 나오고 있었다.
내 또래나 더 연배의 사람들이 느낄 법한 감정을 하염없는 기다림에 젖어있는 저 젊은이들이 과연 공감하기는 할 것인가. 오래되고, 낡고, 늙은 이름을 마치 갓난아이에게 지어준 듯 이상야릇한 풍경이라고나 해야 할까. 멀고 먼 세대차이가 주는 오묘함 속에서도 고향을 만나고 안부를 전하고 막 새로 지어지던 양옥집을 마주한 듯 감회가 남달랐다. 줄의 맨 끝에 서 있던 나는 호기심을 뿌리치지 못하고 마침내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섰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로 약속 장소를 바꾸어버린 것이다.
식당 내부 분위기는 현대판 세련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촌스러운 듯 어두컴컴하고 어설픈데다 군데군데 늘어뜨린 붉은 휘장들이 그 옛날 정취만 물씬 풍기고 있었다. 괜히 탁주 한 사발 들이켜야 할 것 같고, 값싼 음식에도 감사할 마음이 마구 생기게 하는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손님을 압도하고 있었다.
새마을 된장찌개, 옛날 도시락, 연탄 불고기……. 작정하고 옛날로 돌아가 보자는 취지인지 온통 추억 속의 먹거리가 즐비했다. 뿐만 아니라 사극에서나 보았던 격자 모양의 우중충한 유리 출입문하며, 시꺼멓고 다 찌그러진 납작한 양은냄비, 칠이 벗겨진 나무 탁자 그리고 기억하기도 힘든 그 시절의 장식품까지 내 어린 날의 그림들이 또렷이 재현되고 있었다.
벽에는 경제개발의 꿈을 안고 모두가 힘을 보태던 시절의 흑백사진들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마구잡이로 걸려있었는데 너와 나, 우리 모두의 특별한 꿈이 살아 꿈틀대던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운 혼란에 빠져들었다.
우연히 발견한 식당에 감격해 마지않는데 정작 홀을 가득 채운 젊은이들은 와글와글 먹고 마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더라도 새마을이라는 어감에 홀릭된 것을 보면 감정의 공통분모를 가진 것이 분명했다. 저들의 부모 역시 나와 같은 세대에 한 시절을 공유했으니 아마도 부모로부터 조금은 시대상을 전해 듣지 않았을까 싶었던 것이다.
도대체 식당 주인은 어떻게 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을까. 내내 그 생각을 하며 양은 냄비에 뽀글뽀글 익어가는 소시지와 돼지고기가 듬성한 김치찌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연출은 다분히 성공적으로 보였다.
불경기의 여파가 끊임없고, 청년 일자리의 부재가 날마다 이슈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개발의 초석을 다지겠다고 온 국민이 발 벗고 나서던 때의 심정을 토로하고 싶어서 이런 식당을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만이 뇌리에 가득했다. 고봉으로 담아 나온 쌀밥에 자작하게 졸아든 김치찌개를 비며 먹는 동안 새마을 붐의 정점에 있었던 시간과 풍경 속으로 속절없이 빠져들기를 마다할 수는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배웅 인사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새마을의 의미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들 또래인 청년은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며 머쓱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기왕이면 직원들에게 식당의 탄생 배경을 일러주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을 남겨 둔 채 밖으로 나왔다.
그날 밤, 신기한 것을 목격이라도 한 양 가족들에게 희한한 식당에 대해 늘어놓았다. 새마을이라는 이름을 듣던 아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것이 유명한 남자 요리사의 작품이라고 일러주지 않는가. 큰 도시들마다 체인점이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는 말에 일말의 씁쓸함이 밀려왔다. 나름 신세대를 흉내하며 산다고 자부했건만 세월의 중심에서 비껴난 나이인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근간에 복고의 열풍이 몰려오고 있다. 먹거리와 풍경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것들이 과거로 회귀하는 듯하다. 통이 넓은 나팔바지에다 각이 선 핸드백이 등장하고 저런 식당마저 돌아오고 있다. 이참에 우리의 심성도, 사고도, 정취도 순수의 시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냉혹하고 불안한 현실, 잘 살고 못 사는 사람들의 격차가 더욱 심해지고 이기적 행태가 판을 치는 이 시점에서 ‘새마을’은 분명 한 템포 쉬어가게 하는 휴식 같은 이름이다. 그래서 더 정답고 눈물겨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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