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알타미라 / 손훈영
고즈넉한 거실 창으로 지나가던 가을이 기웃대고 있다. 야트막한 의자 두 개와 긴 나무 테이블이 전부인 단출한 거실이다. 나뭇결이 어룽진 테이블위에 은빛 노트북이 놓여있다.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정도로 미니멀한 거실 풍경이다. 거실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 너무 소중해 문득 코끝이 찡해진다.
아름다운 집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겉보기에는 별 문제없이 반듯한 가족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실상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했다. 이유 없이 어깃장을 놓는 동생과 사사건건 맞지 않은 부모. 그들이 일으키는 불협화음 때문에 일상화된 불안의 냉기가 집안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마음 졸이는 집이 싫어 내내 밖을 맴돌았다. 그것이 집이 주는 불안과 음산함을 벗어 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집이 있었지만 집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 형성된 갈 곳 없는 고아 의식은 집에 대한 집착을 낳았다.
결혼을 하고 나의 집이 생겼다. 결혼 초의 세든 집들은 엄밀히 말해 집이 아니라 거처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을 입히기에 온 열정을 쏟았다. 도배를 하고 구조를 바꾸었다. 커튼을 새로 달고 색깔 맞춰 그릇들을 장만했다. 기성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일일이 가구들을 맞추었다. 줄자를 들고 가구 배치를 바꿀 때면 없던 힘마저 솟아났다.
불안하고 음울한 친정의 존재감은 여전히 나를 억압했지만 그것을 견디는 방법이 달라졌다. 내 집은 아늑한 동굴이었다. 일종의 안식처였다. 세상 끝 날이 온다 해도 내 집은 안전해야 했다. 집을 방호벽으로 삼고 집의 엄호를 받으며 삶의 황폐함을 잊으려했다.
언제부턴가 마당이 욕심났다. 마당 있는 집으로 옮기고 싶어 안달이 났다. 골짜기로 들어가 옛날 방식대로 살고 싶었다. 꽃밭과 텃밭을 가꾸며 살다 하늘과 땅의 호위를 받으며 순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청보랏빛 수국이 내세의 표지처럼 숙연히 피어있고 풋풋하고 여린 상추 잎들이 아기 손바닥처럼 돋아나는 마당을 그렸다. 그런 마당만 있다면 이 갑갑한 생의 목줄을 풀어 놓고 한 줌의 여유자적이나마 누려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툭하면 시골집을 보러 다녔다. 현실적으로 큰 무리수를 두어야 하는 일이었다. 내 가족 중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오로지 나만 바라는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그 점이 더욱 더 이주 욕망을 부추켰다. 시골집으로의 이주를 실행 할 수 없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 양 고통스러웠다.
마당이 있어야 집이라는 생각은 살고 있는 멀쩡한 아파트를 하염없이 평가절하 시켰다. 시골집을 향한 열망은 내 모든 우울의 주원인으로 자리 잡으며 나날이 그 덩치를 키워나갔다. 텃밭 가꾸기를 상상할 때의 희열과 네모진 콘크리트 아파트를 떠날 수 없다는 좌절 사이에서 내 조증과 울증은 진동을 거듭했다.
시골집에서 사용할 살림살이들을 미리 준비해 두는 일로써 울증을 다스려 나갔다.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나만의 우울증 처방약이었다. 차바퀴가 닳도록 골동 가게들을 돌아다녔다. 시골을 사들였다. 옛날을 사들였다. 마당을 장식할 돌확과 나물 말릴 대바구니를 샀다. 된장 고추장 단지와 옹기 물 항아리를 샀다. 신발 벗을 댓돌까지 샀다. 옛 물건들은 한번 놓치면 다시 사기 힘들기 때문에 눈에 들어오는 대로 사 두었다. 숱하게 많은 돈을 쏟아 부었다.
그러는 사이 암이 찾아오고 마침내 곤혹스러웠던 친정의 부담과 힘겨움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이미 쓰러진 자를 누가 쓰러뜨릴 수 있으랴. 죽도록 애를 썼건만 잘 조율되지 않던 친정 문제가 순식간에 내 영역 밖에서 정리되어 있었다. 나 하나 바라보고 그토록 무기력하기만 하던 친정식구들이 조금씩이나마 스스로를 챙겨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에게 손을 뗄 수 있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성립되었다. 혹시나 암 재발은 그들에게도 재앙이었기에 모든 것에 우선해 나를 배려해주었다. 그 지각변동은 나에게도 친정 식구들에게도 남은 인생을 제대로 추슬러 나갈 수 있게 하는 최상의 충격요법이었다.
떠날 날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던 이 도시와는 그 동안 그 어떤 정서적 교감도 갖지 못했었다. 한 번씩 집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던 이 도시가 요즘 들어 놀랍게도 부쩍 편안해졌다. 결국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내 집념은 부모형제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강력한 바람의 다름 아니었다. 불안이 봉합되고 결핍이 메꾸어짐과 동시에 떠나야겠다는 편집증적 생각으로부터 놓여났다.
이제 더 이상 시골 가서 살고 싶은 생각에 초조하지도 애가 타지도 않다. 모든 것이 자연스레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생겼다. 반드시 시골로 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곳이든 그곳이든 사는 곳은 별 문제가 아닌 마음이기까지 하다. 어디서건 삶을 살아내는 마음자세가 중요할 뿐이다 싶다.
내 집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재발견이라고나 해야 할까. 애틋해지기까지 한다. 집 전체를 한 번 둘러본다. 풍부한 햇살이 온 집안을 밝고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다. 쓰윽 벽을 한번 쓰다듬어 본다. 볼록하니 흰색 장미가 무늬져 있는 벽지가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검정톤의 오크 무늬 싱크대가 깔끔하다. 흰색 수납장 문을 괜히 열어본다. 가지런히 포개진 그릇들이 울컥 정답다.
여기가 나의 알타미라다. 먼 옛날 원시부족들이 동굴에 벽화를 그려 넣었듯 나의 알타미라에 세월의 흔적을 새겨 넣으며 살아가기로 한다. 언젠가, 그곳에서의 삶은 이제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지금, 여기서의 삶을 힘껏 밀고 나가기로 한다. 정성을 담아 살아내노라면 이 집은 내 삶의 흔적이 아로새겨진 어떤 특별한 장소로 탈바꿈해 있을 것이다. 방 안의 그림 하나 구석 벽의 균열 한 줄까지도 고유의 흔적을 담고 말없이 나를 엄호해 줄 것이다.
나의 마지막 기억이 이 집이었으면 좋겠다. 이 집에 새겨진 추억과 축적된 기억에 의지해 자는 듯 죽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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