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마을 / 조순배
인왕산 이래 홍제동 마을버스 7번 종점에서 내린다.
다닥다닥 머리를 맞대고 붙어있는 지붕에 슬레이트 조각이 군데군데 누더기처럼 얹혀져있다.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간다.
마을에 들어서자 해바라기가 그려진 담장 밑에 희고 노란 꽃들이 함지박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대문도 없는 집 안으로 들어서는 담벼락에 그려진 진돗개 한 마리가 금방이라도 뛰어 나올 것 같다. 입을 벌리기도 하고 혀를 내밀기도 한 귀여운 강아지 그림 옆에 ‘전 스타예요. 모델료를 지불하세요’ 하는 애교스런 글도 쓰여 있다.
지형 따라 구불구불 나 있는 자연스런 골목길과 울타리 안의 작은 공간에는 몇 포기의 고추와 상추, 쑥갓이 자리고, 골목골목 오르는 계단에는 이름 모를 풀꽃들이 자란다. 폐자재 틈에서 피어나는 망초꽃과 애기똥풀, 찌그러진 그릇에 피어있는 고운 꽃들은 갈라진 담장의 벽화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치 반세기 전에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동네! 판자나 비닐조각으로 이곳저곳 땜질해 놓은 지붕 못지않게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빨래,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 전선들이 아슬아슬한데, 골목으로 오르는 가파르고 이끼 낀 돌계단에는 누군가 하트모양의 붉은 꽃잎을 그려놓았다.
이 마을은 6‧25전쟁이후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인디언마을이라 불리다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개미처럼 부지런히 산다하여 1983년부터 개미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
길고양이들이 활보하는 자유로운 골목길과 낡은 의자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작은 화분들, 골목으로 쑥 고개 내민 양철굴뚝 그 밑에 쌓여있는 연탄재 옆에는 LPG통이 덩그렇게 서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골목골목 담장마다 가지각색의 꽃들과 여러 종류의 그림들이 헐어져가는 벽에서 화사하게 피어나 나비와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이 마을에 벽화가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서대문구와 모기업의 후원으로 5개 대학 학생들이 그린 그림으로 “환영, 가족, 자연 친화, 영화 같은 인생, 시작” 다섯 가지의 주제를 담아 그렸다고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 다섯 가지 중 과연 어느 것을 심중에 담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동안 관심 밖이던 개미마을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담장에 그린 벽화 때문이라고 하며, 또 영화 “7번 방의 선물”에 나오는 귀여운 예순이의 바보아빠 용구가 살던 촬영지 “개미마을과 동네슈퍼”가 궁금하여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골목을 돌아 나와 ‘동네슈퍼’라는 간판 옆 <라면 맛있게 끓여드립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유리문을 밀고 들어간다.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는 탁자 하나에 의자 서너 개가 놓여있다. 맛있게 끓인다는 라면을 주문한다. 얼마 후 구겨진 신문지 한 장을 깔더니 계란 넣은 라면냄비를 탁자위에 김치접시와 함께 올려놓는다. 라면을 먹는 동안 주인아주머니는 자연스럽게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 하신다.
갓 시집 온 새색시 적에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 지금까지 40년을 살고 있다고 한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마을, 동네 초입에 하나밖에 없는 공동수도를 물 지개로 저 날라 먹었고, 비포장도로인 길바닥은 비만 오면 질벅거려 다닐 수가 없었다. 단칸방에 대여섯 식구가 살면서 호롱불로 어둠을 밝히며 살았다며, 지금은 전기 수도 다 들어오고 마을버스가 동네 앞까지 들어오니 얼마나 좋으냐고 하시며, 해맑게 웃다가, ‘집은 볼품없지만 인왕산 바로 밑이니 전원주택 아닌가’ 하신다.
행복이란 마음먹기 나름이 아닐까. 비록 열악한 환경에서 산다고 해도 자신이 만족하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개미마을 아래 높이 솟은 아파트와 마음버스 창밖으로 보았던 화려한 거리를 생각한다. 몇 십 미터 사이에서 어둠과 밝음의 경계가 그어진다. 마을버스가 곡예 하듯 오르내리는 골목길을 내려오며 내 마음을 ‘동네슈퍼’ 주인 마음위에 올려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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