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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올레 풍경 / 홍은자

올레 풍경 / 홍은자


 

 

올레걷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레꾼들은 남의 집 올레를 지나가며 무슨 생각을 할까. 어릴 적 우리 집 올레는 유난히 길었다. 두 번은 구부러져야 한길을 만날 정도였고, 총 올레길이가 백오십 미터는 되었던 것 같다.

올레가 왜 길어야 되는지 이유 같은 건 궁금하지도 않았다. 왜적이 침입하면 길가 집들은 피해를 쉽게 입을 수 있기에 올레를 만들게 되었다는 유례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일종의 침입자를 의식한 안전장치인 셈이다. 한길 가에 집을 짓는다 해도 마당으로 들어가는 올레는 근거리로 내지 않고 몇 굽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점차 풍속처럼 되어 버렸다.

제주에는 안거리, 밖거리 등 별동채의 초가여서 띠로 집줄 놓기 하는 작업은 일 년에 한 번은 꼭 해야 하는 연례행사였다. 적어도 오십 미터는 되어야 초가지붕을 묶을 수 있었기에 우리 집 올레는 줄을 꼬는 공간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줄을 꼬는 도구인 호렝이를 돌리며 뒷걸음으로 목적지까지 가는 올레길이가 정말이지 길게만 느껴졌다. 한치의 실수도 없이 적당한 속도로 완주해야만 하는데,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고통을 참아내지 않으면 중도에 줄이 끊어지고 만다.

중도에 하던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아버지의 불호령은 금방이라도 돌멩이가 날아올 듯 무서웠다. 손으로 거친 띠를 다루어야하니 띠를 대주는 사람의 손에는 피가 날 정도다. 한두 줄도 아니고 백 개 이상 줄을 놓다보면 신경이 대단히 날카로워진다.

두 줄로 합쳐 꼴 때는 네 명이 호흡이 맞아야한다. 한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뒤치기를 돌리고 한 사람은 양손에 한 줄씩 잡고 호렝이돌리는 사람에게까지 적당한 속도로 줄 어울림을 하며 다가온다. 두 줄로 다 꼬아지는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나는 끊어질 순간을 대비해서 도망칠 기세로 돌리곤 했다. 줄 꼬기가 다 끝나면 정낭을 걸치고 마당과 올레의 경계를 만들어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다.

더운 여름 올레에 난 잡초를 제거 하는 일은 정말이지 짜증나는 일이었다. 올레 없이 한길 붙은 친구네집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한길 가에 사는 친구가 놀자고 찾아오면 올레잡초가 원망스러웠다. 간간히 긴 올레에서 달리기 연습도 곧잘 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나는 운동회 때는 제법 뛰는 편에 속했다.

엄마가 더운 여름날 쌍둥이 동생을 병원에서 낳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올레를 걸어 들어오는 시간이 한참이었다. 쌍둥이는 할머니 품에 안겨 벌써 들어왔는데 엄마는 들어오지 않았다. 올레로 나가보니 모퉁이에서 더 이상 걸어오지 못하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올레가 짧았으면 벌써 집 안으로 들어와 누울 수 있었는데 올레가 긴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올레와 마당의 구분은 ·을 기준으로 하였다. ‘·은 잠근다는 의미가 있고 ·주목정낭이 걸쳐진다. 성역과 속계를 구분 짓고 오탁한 기운이 신성구역에 함부로 무단 침입하면 안 된다는 표시였다. 만약 함부로 드나들 경우엔 ·주목신이 노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했다.

·주목에는 ·주목직이가 신격으로 좌정한다. ‘·주목직이가 무서워 함부로 정낭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으니 그야말로 법적 제도보다 효험이 강한 장치였다. 마당 안으로 들어서려면 정낭밖에서 인기척을 하고 잠시 기다리게 된다. 집주인이 옵데강!” 하는 인사가 있어야 마당으로 들어 설 수가 있으니 탁발 나온 스님도, 옆집에서 떡을 가져 온 삼춘(이웃어른)정낭밖에서 눈치를 살펴야 한다.

운치 있게 걸쳐져 있던 출입문으로서의 정낭은 경운기가 들어오게 되면서 걷어치워졌고 마당과 올레의 경계는 외관상으로는 없어져 버렸다. ‘·주목직이에 대한 의식도 희미해져버렸다.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으로 올레를 의식하며 지나던 것도 옛일이 되었고, 이제는 하나의 관광코스로 제주 올레가 시끌벅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