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가 달려온다 / 엄현옥
그날도 안양천을 걸었다. 신도림역에 멈춘 열차는 긴 몸을 부리고 있었다. 보나마나 인천이나 천안으로 향하는 1호선 전철일 것이다. 녀석은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틈을 타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시 호흡을 고르는 중이었다. 지상의 역사(驛舍)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저곳에서 전철을 기다릴 때면 나지막이 보이는 산책로를 느리게 걷는 이들의 여유가 부러웠다. 그러나 이렇듯 산책로를 느리게 걸을 때면 저들의 분주함은 나와는 무관하게 느껴졌다.
도림교 밑을 지날 때, 마침 전철이 다리 위를 지나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의 육중한 몸체와 교각이 무너져 내릴 듯한 소음에 지축이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녀석의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겠지만 피하고 싶은 구간인지라 걸음이 빨라졌다. 빈곤과 암울함을 연상시키는 ‘다리 밑’에 대한 선입견과 천변의 고약한 물비린내도 한몫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택한 이유가 있었다. 그곳을 지나면 키를 넘은 억새 군락이 나를 향해 열병식을 했고, 개망초며 구절초가 만발한 언덕이 기다렸다.
구로를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한 전동차 소리가 나를 흔들었다. 비가 개인 뒤의 청명함 때문이었을까. 여느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폐부를 관통하는 기계음에 정체 모를 쾌감을 느꼈다. 내 가슴에 뚫린 직선도로에 무언가가 순식간에 통과한 듯한 카타르시스였다.
오래 전 미술관에서 보았던 그림이 떠올랐다.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가 그린, 가슴을 둥글게 도려낸 여인이 정면을 응시하는 작품이었다. 그 섬뜩한 화폭이 재연되는 착각에 빠졌다. 삶 자체가 고난과 투병, 갈등의 연속이었던 화가에게 삶이란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에 버금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삶의 중압감을 분산시키기 위해 가슴에 구멍 하나라도 내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으리라.
전동차가 저만치 소리도 지르지 않고 어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랴. 10량을 넘나드는 긴 몸과 수백 톤에 달하는 차체의 무게. 그것은 측정이라도 가능하다. 녀석은 하루에 수 백 만의 승객을 싣고 내달린다. 고성능 전자저울로도 계측할 수 없는 일상에 짓눌린 승객들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는 어떠한가. 제 각각 직립 보행이 가능한 만큼의 등짐을 짊어진 이들이 앉거나 서서 차내를 가득 메우고 있을진대. 저만한 소리로 달리는 것이 도리어 기특하지 않은가. 갑자기 전동차의 소음에 관용을 베풀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일까.
이제는 그 소리가 가깝다. 예전에는 산책길을 나설 때마다 소음을 피하여 이어폰을 끼곤 했으나 이제 소음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녀석은 건강하다. 무거우면 무겁다고 소리치는 이의 정신은 그렇지 않은 이보다 건강할지니…. 승강장 위에서 그것을 기다릴 때면 미진(微震)으로 주변을 흔들다가 커다란 해일로 돌변하여 달려들지라도 외면하지 않으리라. 가늠하기 어려운 중력을 숙명처럼 안고 돌진하는 전동차를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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