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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능금나무 / 안량제

능금나무 / 안량제


 

 

머리뼈를 뚫고 종양을 들어내는 수술을 했다. 결과는 양호하다니 우선 기분이 좋다. 병실 안이 하도 답답해서 바람이라도 쐴까 하고 문을 나선다. 복도는 이동 침상이며, 휠체어 등 의료장구들이 가득하다 보기만 해도 어지럽다.

링거줄을 달고 머리에는 보자기 같은 모자까지 눌러쓰고 공원으로 향한다. 공원이라지만 좁은 공간에 의자 몇 개가 시멘트 바닥에 놓여 있는 것이 전부다. 그래도 활엽수 몇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야트막한 고갯길의 언덕에서 떨어지는 인공폭포의 물이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으니, 기분전환이 될 만한 곳이기에 그쪽으로 길을 잡아 나선다.

비탈진 샛길을 따라 링거대를 밀고 더 높고 한적한 곳으로 올라 산책을 한다. 거대한 서양식 석조 건물인 교회 주위를 한 바퀴 돈다. 육중한 돌집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위엄도 있어 보인다. 옆에는 선교사 주택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의자도 있어서 쉼터로는 좋은 자리다. 신앙에는 문외한이지만 교회 앞이라 그런지 숙연히 명상에 젖어든다.

조용히 쉬면서 바라보는 조경수는 수형이 뛰어나다. 보고 다시 봐도 아름답고 귀하게 보인다. 그중에는 특이한 능금나무가 하나 있다. 지지대 몇 개가 받치고 있는 것을 보면 혼자서는 버티기가 힘든 모양이다. 나무나 사람이나 나이가 많아지면 쇠잔해져서 남의 도움 없이 혼자 살기는 어려운가 싶다. 그래서 사람의 도움을 받고 지지대에도 의지하는가 보다.

이 능금나무는 병원을 설립한 선교사가 미국에서 가져온 최초의 능금나무라 한다. 대구 경북의 사과는 이 능금나무에서 출발하여 지금의 사과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 원조의 사명을 잃지 않고 뿌리를 지키려고,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도 끈질긴 생명을 지키는 것을 우리들도 본받을 만하다.

젊고 어린나무들은 꼿꼿이 서 있건만, 유독 능금나무만이 받침나무에 의지해서 보호를 받고 있다. 늙고 병드니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별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그런 중에 큰 병까지 앓은 것 같다. 몸집에 비해 엄청난 흉터를 안고 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까. 말을 못하고 꿈틀댈 수도 없으니 참고 견딘 세월이 얼마인가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썩어들어 가는 속살을 들어내고 엉뚱한 물질로 봉합을 하고도 늠름하게 능금을 달고,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모습이 장하고 부럽기도 하다. 저토록 자기 몸 일부를 드러낸 고통을 안고도 꿋꿋이 살아가는 생명력에 찬사를 보낸다. 저렇게 버틴 저 생명력이, 이 병원의 근원이 되고, 상징이 될 말한 표상으로 여겨진다. 온갖 풍상을 맞으면서 백 살을 살아온 연륜만큼 쇠잔한 흔적도 역력하다. 그래도 대를 잇는 2세도 탄생시켜, 그 옆에서 훌륭히 자라고 있다.

대를 이어가면서까지 살아온 비결은 무엇일까? 자신의 강인한 생명력과 알맞은 토양이 바탕이 됐을 것이고, 주변의 도움도 컷을 것이다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라 해도 주변의 돌봄 없이 자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병원은 저 나무를 보전하기 위해 의사가 환자를 돌보듯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나무 하나에도 저렇게 정성을 들이고 오래도록 살리려고 애쓴 흔적을 보면, 환자를 돌보는 이 병원 의료진의 정성을 그대로 보는 것 같다. 저 나무를 아끼듯 환자를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정성에 여기 환자들은 반드시 쾌유할 것이다.

능금나무는 조상의 나라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내리고, 가지를 키워서 열매를 달고 오래오래 살 것을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한 사람의 생각 따라 풍토가 다른 이역의 땅에 강제 이주를 하고 생소한 토양에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든 나날들을 보냈을까!

끈질긴 생명력과 꿋꿋한 생존의 의지가 대단히 장하다. 속살을 드러낸 빈 자리에 자기 살 대신 엉뚱한 돌가루 반죽을 덧씌운 고통도 이겨내며 참고 살아간다. 저 능금나무의 생존 의지와 용기 있는 인내 정신을 우리 환자들은 귀감으로 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