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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새 길 / 김경

새 길 / 김경





기어이 길이 뚫리고야 말았다. 난무하던 갈등의 시간들을 뒤로 한 채, 떡하니 탄생한 검은 아스팔트 위로 여름 태양이 이글거린다. 위용을 자랑했던 산은 제 모양을 잃고 거대한 터널에게 밀려나 버렸다. 오랜 공사의 흔적이 사라지고 막 탄생한 풍경이 마치 낯선 손님처럼 어색하다.

산을 뚫고 직선거리로 터널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하기에 바빴다. 어떤 이는 도시의 서쪽과 동쪽을 잇는 멋진 아이디어라고도 했고 누군가는 자연을 거스르는 파괴라고도 했다. 찬반의 대립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해서 쉽사리 길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산 둘레를 돌아가는 외곽 순환도로가 만들어지자 이만한 편리함도 없다고 입을 모았던 때가 있었다. 편리함도 오래 길들여지면 무감각해지는 것인지 세월과 함께 그 길은 논란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차가 늘어나니 심한 정체를 가져왔고, 기름 값이 치솟기 시작하면서는 사람들의 마음도 조급해졌다. 더욱 가깝고 빠른 길이 필요했다.

한번 도마에 오른 길은 자꾸만 원성을 샀다. 한 때 각광을 받았던 도로를 외면한 채 산을 통과하는 터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날이 거세졌다. 그러자 단번에 반대파가 등장했다. ‘해야 된다해서는 안 된다의 치열한 양론이 신문이나 매스컴을 연일 뜨겁게 달구었다.

차라리 올레길이나 소리길 같은 명품길이 만들어진다면 이리 시끄럽지는 않았으리라. 원형을 거스르지 않는 가운데 아름다운 길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편리함만을 목적으로 거대 자연에 도전하는 일은 위험천만해 보였다. 사람들은 이 말에 기울었다가 저 말에 동참하는 등 갈팡질팡 했다.

기득권자들의 목소리는 서서히 돌진하는 탱크와도 같았다. 기어이 길이 뚫릴 모양이었다. 작아진 시민들도 덩달아 크게 외쳐댔다. 그러나 이미 결정이 난 계획은 온갖 시위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자연 생태계를 파괴한다느니 재앙을 불러 온다느니 하는 뜨거운 반박은 바위에 계란치기였다. 산은 내내 불안했다.

내 마음은 어느새 반대파를 향해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아름답고 순수한 자연을 해칠까 염려하는 그들의 메시지가 충분히 돋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옛날부터 거기 있어온 산과 더불어 살 권리가 있지 않는가. 어떤 것이 더 인간에게 이로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들이 겨우 공사를 막고 있었다. 조금 더디 가면 어떤가. 빨리, 바쁘게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급함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새 길 따위엔 관심조차 두기 싫었다.

슬그머니 기초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특정시간대의 정체를 내세운 명분은 반강제적으로 사업을 시행할 충분한 꺼리로 부상했다. 그때, 죽을힘을 다해 공사를 방해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터널 공사가 시작되는 산 입구의 나무 위에 작은 집을 짓고는 시위에 들어갔다. 언뜻 보면 한 사람의 무모한 행동인 듯 보였지만 그를 위해 먹을 것이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눈에 띄지 않는 단체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나무 위의 남자에게 집중되었다. 과연 그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며 산을 지키려는 갸륵함이 이 거대 사업을 무산시킬 수 있을까. 절대적 힘을 자랑하는 권력층이 한 번 결정한 사업은 결국은 그대로 진행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싸우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마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오래 나무 위에서 몸부림 쳤는지 모르겠다. 커다란 트럭과 포크 레인의 행렬은 날마다 조금씩 산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나무 꼭대기에서 절규를 해도 그것은 소리 없는 메아리가 될 뿐이었다. 아마도 지칠 대로 지친 그는 절망 가득한 마음으로 나무에서 내려왔을 것이었다.

눈엣가시 같은 그가 나무에서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 공사는 박차를 가했다. 일사천리로 터널이 뚫리기 시작하고 일대는 날마다 분주하고 어지러웠다. 해를 두 번 넘기도록 산을 흔들어대는 괴성에 산에 사는 온갖 초목은 불안에 떨었고 그곳이 터전이었던 짐승들은 어딘가로 떠나 버렸다.

날이 갈수록 길은 조금씩 모양을 갖추어 갔다. 고가도로가 위엄 있게 산을 향해 뻗었고 육교가 만들어졌다. 더욱 넓어지고 반짝거리는 새 도로에 사람들은 쉬이 흔들렸다. 개통이 가까워오자 수시로 오르내렸던 등산길은 더 이상 회자되지 않았다. 약수터도 잊었으며 산 속에서 만났던 살가운 인연들이 기억 밖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길고 긴 터널을 단 시간에 빠져나갈 날만 기다렸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그저 갓 태어날 문명의 현장을 흠모했다.

아무리 보아도 고친 그림처럼 생뚱맞다. 짙푸른 산을 바라보며 달리던 옛길은 고가도로에 가려지고,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던 서늘한 바람도 자취를 감추었다. 정신없이 달리는 자동차들만이 터널이라는 블랙홀에 휙 휙 빨려 들어가서는 곧 낯선 동네에 뱉어지고는 한다. 잘 뻗은 길 위를 신나게 달리는 사람들에게 지난 일은 이미 잊어버린 과거이다.

마음이 바쁜 누군가는 쾌재를 부를 것이고 어떤 이는 돌아가더라도 여전히 익숙한 길을 선택할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하나를 얻고 나면 둘 셋을 잃기도 한다. 오래지 않아 또 다른 난제를 안겨줄까 염려하는 나의 오지랖이 당당한 새 길 앞에 주눅이 든다. 시간이 흐르면 저 길에 익숙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