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주스의 행복 / 권준우
병원의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다. 진료를 받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과 분주히 돌아가는 검사 기계들.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리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의사, 간호사들.
나는 회진을 돌기 위해 병실을 순회하고 있었다. 밤새 별일은 없으셨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다행히 특별한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회전을 끝마칠 즈음 한 병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할머니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손짓하는 것을 발견했다. 뭔가 문제가 있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고 간호사가 달려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체크하여 인공호흡기에 일시적인 이상이 있었음을 찾아냈다. 요동치던 수치들이 평정을 찾아갔다.
비록 내가 담당하는 환자는 아니었으나 최근 ALS 환자가 입원했다는 이야기는 주위에서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같이 회진을 돌던 간호사에게 물었다.
“저 환자가 그 ALS 환자인가 보죠?”
“네”
병실을 나서며 나는 그 할머니를 슬쩍 돌아보았다. 호흡이 안정되었는지 더 이상 힘겨운 손짓은 하지 않았다. 문득 할머니의 모습에 내가 대학병원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시절의 환자 한 명이 겹쳐졌다.
ALS(근위축성측색경화증), 흔히 루게릭병이라 부르는 질환. 스티븐 호킹 박사가 앓아서 유명해진 병이다. 목 아래쪽의 근육은 점점 마비되어 결국엔 숨도 쉴 수 없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지 않으면 생명조차 유지할 수 없지만, 목 위쪽의 기능은 거의 정상에 가깝도록 보존되는 질환이다.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있지만 팔다리를 못 움직이고 말 할 수 없는 그 답답함이란 상상을 넘어서는 고통이리라.
바쁜 레지던트 시절, 수년간 큰 변화 없는 그 환자에게 별 관심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보다 훨씬 급하고 위중한 환자들이 많았기에 그저 평소 하던 대로 합병증이 있는지 확인하고 처방을 내며 그렇게 꽤 시간이 흘러갔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간호사가 라인 튜브로 오렌지 주스를 주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환자가 원하면 음료수 같은 것들을 줘도 된다고 했었지만, 그날따라 오렌지 주스를 주느니 차라리 기본 식이를 늘리는 것이 낫지 않은가 하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환자가 배고파하거나 식이를 원하지 않느냐고 물었으나 간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아니고 꼭 오렌지 주스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마, 오렌지 주스가 들어간 다음에 트림으로 올라오는 오렌지향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간호사의 그 말에 나는 꽤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때까지 나는 그 환자를 그저 ‘치료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저 식이를 늘일지 줄일지, 체중이 느는지 줄어드는지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는 오렌지 주스, 그 주스 한 방울조차 마실 수 없어서 트림으로 넘어오는 오렌지향이라도 느껴 보고 싶어 했던 그 애절함이 나를 깊은 반성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후 그 환자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비록 대화가 가능하지 않다 하더라도 말 한 마디 더 해주고 손 한 번 더 잡아주곤 했다. 나에게는 그저 수많은 환자 중 한 명과의 회진 시간일지 몰라도, 그녀에게는 그 시간이 무료하고 변화 없는 하루의 일과 중 정말 기다리던 시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후 회진 시간이 되어 다시 그 병실에 가 보니 할머니 표정이 많이 밝아져 있었다. 손을 들어 V자를 그러보더니 힘겹게 두 팔을 머리에 올려 ‘사랑해요’라는 하트를 만들어 해맑게 보여준다.
숨을 쉬는 것, 음식을 맛보는 것, 우리는 전혀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너무나 애타게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정말 풍요로운 환경에서 지내면서도 그 고마움을 모르고 투정만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작은 것 하나만 사라져도 대단히 괴로울 텐데,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불행하다 말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이 모든 것들을 누리는 우리는 ‘과행복(過幸福)’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행복을 더 이상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닐는지.
요즘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있는 문화적 혜택은 예전 황제들이 누리던 그것에 비해 전혀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황제들이 귀하게 여기던 향신료나 외국의 과일들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황제에 버금가는 생활을 누리면서 왜 우리는 그만큼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행복이란 깨달음과 사유에 의해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토록 많은 것들을 만끽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오늘은 집에 오렌지 주스나 한 통 사들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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