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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줄 / 이방주

/ 이방주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설 때는 밧줄을 타야 했다. 수직에 가까운 바위는 높이가 20cm는 족히 되어 보였다. 고맙게도 누군가 손아귀에 꽉 들어찰 만큼 굵은 밧줄을 늘여 놓았다. 이렇게 갈라진 바위틈을 이른바 침니라고 한다. 갈라진 틈이 너무 좁아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더구나 갈라진 바위틈에 발이 끼인 채 잘 빠지지 않아서 한 발 올려 디디기도 어렵다. 때로는 체중을 바위틈에 간신히 지탱하는 발끝에 싣고, 손아귀로 움켜쥔 밧줄을 있는 힘을 다하여 당기며 한 발씩 올라야 한다.

아차하면 바로 낭떠러지다. 밧줄을 놓치고 미끄러져 떨어진 다음에 낭떠러지가 의미하는 것은 뻔하다. 그건 죽음이다. 여기에 밧줄이 없다면 어떻게 오를 수 있을까? 그러니 자주색 밧줄은 생명줄이다.

어깨가 빠지는 것 같다. 가슴이 터질 듯이 숨이 가쁘다. 밧줄을 잡은 손에 불이 날 것만 같다. 그렇게 밧줄을 힘들게 당기면서 가까스로 침니로부터 벗어났다. 이런 순간에 생사를 달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긴장감으로 온몸이 땀에 젖었다. 이마에서 솟은 땀이 흘러 들어갔는지 눈이 쓰리고 따갑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머리띠를 풀어 땀을 닦으며 내려다보니, 바위틈에 늘러진 자주색 밧줄이 신비스럽다. 생각해 보니 지나온 황정산 암벽에 늘여놓은 밧줄은 모두 자주색이었다. 자줏빛이라 더 튼튼해 보였다. 자줏빛이라 더 믿음직스러웠다.

<삼국사기><탈해 이사금조>에 게재된 김알지 신화을 보면, 탈해왕 때 경주의 서쪽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나서 사람을 시켜 가보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자줏빛 구름이 땅으로 뻗치고, 구름 속의 나뭇가지에 금궤가 걸려 있는데, 그 아래에서 흰 닭이 울고 있었다. 금궤를 내려 열어보니 아기가 있었는데, 그 아기를 태자로 삼고 김알지金閼智라고 했다. 그가 바로 경주김씨의 시조이다.

이 이야기는 신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신화가 고도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허황한 이야기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화가 상징성을 지닌다면, 여기서 자줏빛 구름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구름은 생명의 원천인 하늘과 일상의 공간인 땅을 연결하는 탄생의 줄을 의미한다. 신화적 공간에서 일상적 공간으로 내려오는 생명의 줄이다. 우리나라 신화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들은 대게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자줏빛일까? 사람들은 왜 구름을 자줏빛이었다고 생각했을까? 신화를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닌 의식 세계를 보여주는 이야기 마당이라고 한다면, 자줏빛은 생명의 줄을 상징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진천 김유신 장군 탄생지 부근에 있는 태령산 장상에 올라가면 장군의 태실이 있다. 태를 소중하게 보관하는 풍습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우리나라만의 문화이다.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의 일면이다. 태는 모체와 신생아를 연결하는 생명의 통로이다. 태를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가 오늘날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생명공학의 저력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이 이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탯줄이 바로 자주색이다. 자줏빛은 생명줄의 색이기에 황정산 자주색 밧줄이 더 믿음직스럽다.

줄이 없으면 우리는 살 없다. 생명은 줄로 이어진다. 피는 핏줄을 통하여 돌고, 몸 구석구석의 정보는 신경 줄을 통해서 뇌로 전해진다. 줄이 없으면 우리는 한순간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사회생활의 식량인 정보도 줄에 의해서 전해진다. 전화나 인터넷이 그것이다. 세상의 모든 정보는 줄을 타고 내게로 온다. 나에 관한 모든 정보는 줄을 타고 세계로 간다. 모든 에너지도 줄을 통하여 필요한 곳으로 흘러간다. 우리는 줄을 통해 받은 에너지로 삶의 세계를 밝히고 생활 터전을 확장하며 생명도 연장시킨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줄도 있다. 보이지 않는 줄이 나를 끌어주고, 내가 남을 이끌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줄이 있어서 내가 남에게 연결되고, 남이 나에게 이어진다. 나는 기대를 걸고 보이지 않는 줄에 서기도 한다. 내가 선 줄은 목련같이 미더운 우정이 되기도 하고, 백합같이 향기로운 연정이 되기도 한다. 줄은 때로 미움이 되기도 한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튼튼한 밧줄을 잡아 하늘에 올랐으나, 포악한 호랑이는 썩은 밧줄을 잡았다가 떨어져 수숫대를 피로 물들이고 죽었다는 옛날이야기도 있다. 내가 거는 기대는 포악한 호랑이의 뒤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줄은 길이다. 좋은 세상으로부터 내게 들어오는 길이고, 나로부터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세상에는 보이는 길과 보이지 않는 길로 가득하다. 나는 길을 타고 세상에 나아가 역사라는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내가 그린 그림은 의미를 드러내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방금 땀 흘리며 타고 올라온 자주색 밧줄을 또 한 번 바라본다. 저 줄을 타고 지금 이 세상에 올라 왔지만, 언젠가 저 줄을 타고 다시 내려가게 될 것이다. 평화와 안락이 깃든 세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