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여자 / 배영숙
특별히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는 한 여자가 있었지요. 위로 신동이라 불리던 두 오빠의 그늘이 가려 그녀는 그냥 평범하게 자랐어요. 소심하고, 겁도 많고 눈물도 많은 그런 소녀로요. 그녀는 현실적으로 그때그때 작은 소원들을 하나씩 가지고 살았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그리고 대학 다닐 때는 대학교수가 되고 싶어 했어요.
그녀의 아버진 위로 두 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서울로 보내면서 그녀에겐 고향에서 그냥 학교를 다니라고 하였어요. 지방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그녀가 대학을 선택할 때 처음으로 혼란을 느끼더군요. 수학을 잘해서 이과반을 선택했건만 어떤 과를 가야할지 막막해하던 그녀가 생뚱맞게 지구의 역사를 규명하겠다고, 지질학과에 입학을 하대요. 참 엉뚱한 선택이었지요.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나침반과 해머를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수집한 돌과 화석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화학실험을 하며, 마치 위대한 과학자라도 될 듯이 설치고 돌아다니더니, 졸업을 하곤 그냥 맥없이 고향으로 내려가더군요. 고향의 여학교에서 교사로서 사명감에 불타 새벽에 출근, 기숙사 학생들과 지냈어요. 그러더니 1년 만에 덜컹 사표를 쓰고는 공부를 더 해보겠다고 서울로 올라가더군요. 그런데 웬걸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가더니, 그해 가을 바로 결혼을 해버렸답니다. 그녀는 아이가 태어나자 두문불출, 육아백과만 붙들고 아이 키우기에만 열중했어요. 뭐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런대로 만족을 하고 사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작은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덜컥 지방의 민속학과 대학원에 정식으로 입학을 하였지요. 뭐 대단한 민속학자라도 되려는 듯 3년 넘게 불천위제사를 지내는 종가나 전국의 당집을 찾아다니는 억척을 보이더니 결국은 남편의 일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논문도 쓰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내고 말더군요. 흠. 생각만 해도 우스워요.
20세기에서 21세기로 세기가 바뀌면서 교육계에서 전반적으로 예절을 중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일 때였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할 것 없이 앞 다투어 예절수업시간을 따로 신설했답니다. 한 몇 년 잠잠하다 했더니, 그래 그녀는 생각했지요. 명색이 양반고을에서 자란 자신이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이런 일이야말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동양문화 최고위 과정’ 예절학과에 등록하여 1년 동안 토요일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 와 6시간씩 수업을 받았지요. 지방의 폐교에 예절기관을 세워 보겠다는 나름대로 계획도 있었대요. 정말 열심히 다니더군요. 교통 체증이 심한 토요일, 아이들과 남편 눈치 보면서 어렵게 시간을 내어 서울에 와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고전과 예절에 대한 수업을 하면서 반은 졸고, 반은 동료들과 어울리는 재미로 다닌다고 하더군요. 하, 어렵게 1년 동안, 토요일 그 황금 같은 시간을 다 받쳤는데, 함께 수료한 다른 동료들은 제주도 부산 등지에서 예절관을 운영하거나 교사로서 수업을 나가는데, 그녀는 또 그냥 주저앉고 말았어요.
또 한동안 잠잠했어요. 아이들 대학 입시도 있고, 이제는 꿈 찾아다니는 그런 철없는 짓을 그만하려니 생각했는데, 그 병 누구 주겠어요. 느닷없이 큐레이터가 되겠다고 하대요. 화가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의 영향으로 그림하고는 전혀 연관이 없던 그녀가 감히 큐레이터의 꿈을 꾸곤 현대미술 최고위 과정에 거액의 등록금을 내고 공부를 시작하더군요. 무명작가들의 그림은 좋은 고객들에게 연결해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실제 갤러리를 운영하려면 얼마만한 자본이 필요한지, 또한 얼마만한 능력이 필요한지도 모른 채, 그냥 친구의 말에 혹해 갤러리를 운영해볼 생각을 가지다니, 철이 없긴 없다니까요. 그녀는 그 꿈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지금도 시간나면 인사동, 안국동, 갤러리를 기웃거리고 있답니다.
이제 그녀는 별다른 꿈을 꾸지 않고, 그냥 틈틈이 글이나 쓰고 살지 뭐 하면서도 그 글이란 것도 잘 쓰지 못하고, 겨우 몇 년에 한 편씩 쓰면서 그냥 저냥 보내더라구요. 그런데 50중반을 넘기고, 아이들마저 품에서 떠나니 허허로운지 그녀의 병이 또 도진 모양입니다. 느닷없이 요가교육사가 되겠다고, 1년 코스의 요가지도자과정에 등록하여 이론과 실기 공부에 몰입하더라고요. 포부는 대단했지요. “100세 시대이니 아직은 늦은 나이가 아니야.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돼.”하면서 말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30대의 수강자들이 주로 있는 가운데 머리가 희끗한 중년 여자가 무슨 주책인지 젊은 사람들처럼 자세가 잘 나오는 것도 아닌데, 무엇을 하려는지 저리도 용을 쓰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매일 전철을 타고 안국동 요가 본원에 가서 2시간씩 수련을 몇 달 하더니 결국 무릎에 무리가 와서 잘 앉지도 못하고 쩔쩔매면서도 악착같이 매달리더군요. 드디어 10개월의 수련 끝에 자격시험까지 치렀지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꿈을 실천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평생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고 그저 용만 쓰는 그녀가 안쓰럽기까지 하네요.
최근 일이지요. 안국동 본원에서 연신내의 요가원을 인수했어요. 오전엔 전에 운영하시던 분이 계속 근무를 하고, 오후에 근무할 사람(강사가 아니라 사무실 지키는 사람)을 찾는다니까, 집도 가깝고, 수입도 조금 있을 것 같아 그녀가 덜컥 해보겠다고 나섰지요. 그런데 그게 장난이 아니었어요. 사무실 업무를 해야 하니, 카드기계를 작동해야 했고, 청소는 기본, 그래도 나름 신나하데요. 조그마한 일자리가 생긴다는 기쁨에, 집에서 하던 대로 구석구석 찌든 떼 닦고, 매트 걷고 청소기 돌리고, 다시 매트 깔고, 깔끔을 떨었지요. 그런데 그녀가 여자화장실 청소를 하고, 남자화장실로 가서 화장실 변기를 닦는 순간, 울컥하더군요. 갑자기 눈물이 솟구치는데 걷잡을 수가 없더래요. 그녀가 철이 없긴 해요. 어디 고용원 입장에서 절박하게 오로지 먹기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그런 처지가 되어보았어야지요. 당장 다음 달부터 정상업무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녀는 회장에게 자기는 아무래도 못 할 것 같다고 하데요. 회장님께선 다음날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반반인 것 같습니다.
“경험 삼아 이를 악물고 한번 해 봐?”
“아니야, 아니야.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안 좋으면서 이 무슨 짓이야.”
어휴, 이제 나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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