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몸부림칠 때 / 강숙련
저, 있지예. 오늘이 울 엄마 제삿날이랍니더. 우리 형제들은 모두 추도일이라고 하지예. 기독교 신자거든예. 그러다보이 제삿날을 더러 까먹기도 하고, 예사로 넘기기도 하지예. 보이소, 암만 그래도 그렇지 그라모 안 되지예. 그그는 그기고, 이그는 이그지예.
내가 마, 우리 형제들을 흉볼라꼬 시작한 말이 아입니더. 쪼메 야속하기는 해도 이것저것 따지면 뭐하겠능교 다만, 이 쓸쓸한 계절에 잊지 못할 추억 한 가지가 떠올라 그 말을 좀 할라고예. 청상의 고독에 몸부림치던 우리엄마에 대한 이야기입니더.
내가 일곱 살쯤이었을 겁니더. 동네사람들이 가을회치를 가기로 했는데 유독 엄마만 안 간다고 하데예. 회치가 뭐냐고예? 그거, 사전에도 없는 말입니더. 우리나라 ‘두레’에서 유래된 듯한데, 일종의 소풍이나 야유회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더. ‘쎄빠지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뭐 그런 뉘앙스로 하루쯤 놀이를 떠나는 거지예. 70년대에는 꽤 유명했습니더.
며칠 전부터 아랫집의 다다엄마가 뻔질나게 드나들었습니더.
“이봐라, 동상 만다 그라노? 만다꼬?”
다다엄마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왜 그러냐?’ ‘왜 안 간다고 하느냐?’고 졸라댔습니더. 나는 다다엄마가 정말 만다꼬 그러는지 짜증이 났습니더. 다다엄마를 향해 “쫌”하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꽤 되었지만 엄마는 밤마다 훌쩍이던 시절이었지예.
“고마, 산 사람은 사는 기다. 저거 아부지는 저거 아부지고, 나는 나다. 얼라들을 봐서라도 회치나 갔다 오자.”
“으은~지예. 마 잠이나 푹 잘랍니더.”
“와이카노 이라지 마라!”
다다엄마는 그날 한참을 더 뭉그적거리다 돌아샀습니더. 죄송하다는 엄마의 인사에,
“내사 괘안타….”
하고 말했지만 영 괜찮지 않은 표정이었습니더. 우리 경상도 말에는 희한한 표현이 숨어 있답니더. 엄마가 ‘으은~지예’하고 거절했지만 그것은 ‘아니오’보다 약간 못 미친 그러니까 어쩌면 ‘예’로 바뀔 여지가 조금 있다는 말입니더. 마찬가지로 ‘괘안타’는 말에도 ‘절대 괜찮지 않음’이 들어 있지예. 속 시원한 대답을 못 들어 아쉬운 다다엄마가 미련을 못 버리는 이유가 그기에 있다케도 됩니더.
다다엄마는 며칠을 두고 줄기차게 엄마를 졸랐습니더. 결국 엄마는 회치경비 조로 다다엄마에게 쌀 두되를 내어 주고 말았습니더, 말하자면 다다엄마는 회치를 주선하는 계주쯤 되었나 봐예.
밤이 되어 학교에서 돌아온 고등학생 큰오빠에게 이 사실을 말했더니
“맞나? 진짜가? 니 오빠 말 단디 들어라. 그날 니가 엄마를 따라가서 딘디 챙기야 된데이.”
참 나 원. 지금 생각해도 울 오빠 좀 웃겼습니더, 내 아니 그때 일곱 살 정도였는데, 아직 초등학교 입학도 못한 꼬맹이인데 뭘 단디 하라는 말이었을까예. 큰오빠는 다다엄마를 확실히 싫어했습니더. 엄마다 다다엄마와 어울리는 것조차 싫어했지예.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더. 동네 가설극장에 삼류가수들이 쇼를 했습니더. 아참, 그 시절에는 회치만큼이나 ‘쇼’라는 것도, 유행이었습니더. 지금으로치면 콘서트 같은 거지예. 그날도 다다엄마는 울 엄마를 끌고 나갔지예. 그런데 그날 울 오빠가 못 볼 것을 본 모양이라예.
무대에 막이 오르고 가수들이 흥을 돋우자 다다엄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머째이 머째이 아저씨 머째이!”를 외치며 방방 뛰고 굴렀다네예. 오만상을 찡그리고 바라보던 큰오빠는 다다에게 다가가 “가스나야, 일로 좀 와봐라. 고마 쌔리 마! 구석에 공가가 마, 칵 마.”그러자 다다엄마가 깜짝 놀라며
“이기, 이기, 이기 하! 와이카노. 와 맨맨한 다다한테 지랄이고?”
“아지매요, 지발 울 오매는 가만 나두고 혼자 댕기소. 안 그라모 내가 이 가스나를 확.”
“세상에, 아이구야! 바라바라….”
집에 돌아와서도 오빠는 씩씩거렸다 카데예.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다다엄마는 남편을 두고 바람이 나서 우리 동네에 숨어 살았다고 하데예. 그날 오빠는 나한테 다시 한 번 매매 당부했습니더. 엄마를 츨츠히 따라댕기라고예. 오빠는 행여 엄마가 다다엄마처럼 될까봐 겁이 났었나 봐예.
드디어 회치 날이 되었습니더. 치마저고리를 입은 엄마를 따라 뒷산으로 갔습니더. 단디, 츨츠히 따라댕기라는 오빠의 분부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었지예. 망게열매가 빨갛게 익어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고, 낙엽이 수북히 쌓인 나무 밑에 도토리가 떨어져 있었습니더. 무엇보다 엄마가 모처럼 활짝 웃고 있어서 기분이 썩 좋았습니더.
얼마나 놀았을까요. 해가 실핏 지려고 할 때였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야, 너거 엄마 춤 잘 춘다야!”
정말로, 진짜로, 울 엄마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습니더. 동네 아지매들이랑 아저씨들이랑 한데 어울려 장구장단에 맞춰 돌아가고 있었습니더. 참말로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더.
“엄마, 엄마! 와이카노 큰오빠 보면 우짤라꼬!”
“저리 가라! 저리 가라!”
“엄~마야, 나는 인지 모른다!”
동네 아지매들이 나를 자꾸 엄마에게서 떼어 놓았습니더.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더.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더. 엄마가, 엄마가 급기야 잔디밭에 드러누웠습니더. 그러고는 그만 잠이 들어버렸어예. 엄마한테서 막걸리 냄새가 났습니더. 나는 큰오빠 얼굴이 자꾸 떠올라 겁이 났습니더.
그날 엄마는 결국 누군가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어예. 그러나 오빠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더. 고독에 몸부림치던 젊은 엄마의 마음을 그렇게 덮어드린 것이겠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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