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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날아라, 새 / 이혜숙

날아라, / 이혜숙

    

 

 

마당에서 무언가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죽은 새다. 참새보다 크고 비둘기보다는 작은데 날개가 잿빛이어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누가 왔다가 밟기라도 할까봐 발끝으로 툭 쳐서 화단 쪽으로 밀어놓고 걸음을 재촉한다. 몇 발자국 가지도 않아 발에 방금 전 찼던 새의 감촉이 느껴진다. 아무리 바빠도 발로 차버리는 게 아닌데.

집에 돌아와 눈밭에서 죽은 새를 찾는다. 직박구리다. 얼어 죽었는지 굶어 죽었는지, 혹은 수명을 다한 건지 알 수 없다.

몸통은 성한 데가 없는데 아주 가볍다. 한 쪽 눈알도 없다. 눈을 다쳐 날 수가 없었을까. 아니면 죽은 후에 다른 짐승이 건드린 것일까.

직박구리의 날개를 펴본다. 망가진 부챗살처럼 주르르 도로 접힌다. 오그라진 발가락 사이로 손가락 나뭇가지인 양 넣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죽은 새는 그것을 움켜잡지 못한다.

이미 움직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새를 세워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한다. 무엇이 내 마음을 잡아 한참이나 새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지 알 수 없다. 결국 도로 마른 풀섶에 놓고 들어올 거면서.

울타리 가 조팝나무에 앉아 있던 박새 몇 마리가 기척에 놀라 후다닥 다른 가지로 날아간다. 먼발치의 목련나무에 다닥다닥 앉아 얼핏 희고 검은 꽃처럼 보였던 까치들도 박새가 날자 일제히 날아오른다. 나무는 꽃 진 가지로 남는다.

새는 늘 그랬다. 쫓을 생각이 없는데도 언제나 쫓긴다. 한 번도 앉은 자리에서 편한 적이 없어 보인다.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리면서 꽁지를 까딱까딱 까불면서 도망갈 궁리부터 한다. 어쩌다 벌레 한 마리를 물고 있어도 편히 먹지 못한다. 새의 다리는 제 몸통을 지탱하기에도 턱없이 가늘어 앉아도 균형 잡기가 힘들어 보인다. 그나마 그 다리 없이는 어디에도 앉을 수 없을 텐데, 앉아 있는 시간마저 늘 쫓긴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 자유로워 보인다고들 하는데, 내 눈에는 고단하게만 보인다. 공중에서 나는 시간이 더 많은 새. 둥지라고 해봐야 알을 낳고 부화시키기 위한 임시적일 뿐, 밤에 들어가 잠잘 자리는 아니지 않은가.

나는 새를 보면 즐겁지 않았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노래로 들리지 않고 울음소리로 들렸기 때문에 귀도 닫고 싶었다.

나도 한때는 비상이라는 단어를 자유와 꿈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단단하고 넓은 날개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 더 높이 오르려는 꿈. 바람에 저항해 맞서야 하는 것은 날갯죽지의 달련 뿐, 그것이 시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 날개를 접은 새는 또 다른 도약을 위해 쉬고 있는 것이고, 새가 내는 소리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유로운 비상꾸는 어린 새였다.

그러나 삶이라는 하늘은 늘 푸른 것만이 아니었고, 현실이라는 바람은 만만히 맞설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오래지 않아 알았다. 녹여버릴 듯 뜨거웠다가 무수한 바늘로 찌르듯 에였다가 어둠이 쉬이 걷히지 않는 밤도 되풀이되었다. 훈풍, 미풍을 만날 때보다 날개를 찢어버릴 것 같은 광풍을 만나 뒷걸음질 칠 때도 많았다. 어쩌다 쉴만한 나무를 찾아도 더 큰 새에 쫓겨 다른 가지로 옮겨 다녀야 했다. 노래를 부를 여유가 없었다.

비상 속에 꿈이 있다는 것은 남보다 높이 올라가려는 욕심을 미화한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늦기 전에 알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날개를 접어 버리니 마음이 편했다. 넓은 하늘이 아니라도 새장 속도 살 만했다. 먹을 게 있고 편히 잘 수 있으면 되지 애써 바람과 대항할 필요가 있을까. 욕심을 버렸다고 생각하니 갈등도 없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발끝에 들러붙은 느낌, 집에 돌아와 굳이 죽은 새를 찾았던 이유, 그것을 한참 동안 손 안에 올려놓고 바라보았던 행동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직박구리는 이제 고단한 비행을 끝냈으니 편안해졌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만 아닌가. 그렇다면 새가 살았던 동안이 온통 힘겨운 싸움이기만 했을까.

눈알이 빠진 새. 내가 한참을 바라보는 사이, 어느 새 빈 그 자리에는 유채꽃의 노란 물결이 가득 출렁댄다. 통통한 애벌레가 꼬물꼬물 기고 있다. 이삭이 날린 들판도 보인다. 깃털을 부비며 사랑을 나누는 몸짓과 알을 품는 모습, 새끼 새의 목구망에 먹이를 넣어주는 부리도 보인다.

내가 만진 것은 죽은 새의 몸뚱이가 아니라 새가 살았을 때의 기록들이다. 날개를 펴고 날았을 깨 깃털 하나하나에 새겨진 바람과 햇빛, 비와 눈의 기록들을 읽은 것이다.

그것은 새장에 가두고 모이만 배불리 먹여 이미 퇴화하기 시작한 어린 새의 날개에도 희미하게 남아, 푸득, 푸드득 좁은 새장을 치고 있다.

그 힘에 떠밀려 나는 새장의 빗장을 푼다.

밖에 나가니 새떼가 마당 한쪽에 비린 음식찌꺼기를 쪼아 먹다가 우르르 가지를 찾아 날아간다. 한 가지에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고 또 다른 가지를 찾아간다. 호기심과 동경으로 꽁지가 들썩거린다. 뭐하고 저희끼리 수선을 떨더니 한꺼번에 다 날아가 버린다. 죽었던 직박구리도 털고 일어나 함께 날아간다.

어떤 놈인가 음표처럼 생긴 깃털 하나 떨어뜨리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