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마당’ / 안유환
옛날의 집들은 모두 넓은 마당을 갖고 있었다. 축담에 신발을 벗어놓고 툇마루에 앉아 햇볕을 쬐다 심심하면 마당으로 내려가 이리저리 집 안을 거닌다. 마당 한쪽엔 절편모양의 조그만 꽃밭이 있고 그 주변으로 몇 개의 화분도 놓여있다. 생각 날 때마다 화분에 한 바가지씩 물을 퍼부어주면 물은 흘러 마당으로 번져 제멋대로 지도를 그린다. 장마철에는 여기저기 잡초가 돋아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뛰노는 발자국을 견뎌내지는 못한다. 때로 낙엽이나 지푸라기 같은 것이 흩어져 있어도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담벼락에는 마당비나 삽, 괭이 등 농기구들이 무질서하게 세워져 있다. 대부분의 집 마당에는 절구통도 있었다. 많은 곡식은 마을의 디딜방아를 찾아 갔지만 웬만한 것은 절구통에서 해결했다. 여름저녁이면 멍석을 깔아놓고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칼국수를 먹던 마당! 감나무 한두 그루나 대추나무가 서있는 것도 볼 수 있다. 가을이면 탐스럽게 익은 석류는 가슴에 석류알 같은 꿈이 차오르게 한다. 추수한 곡식 가마니를 수매할 때까지 마당 한구석에 쌓아두기도 했다. 마당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편리하게 쓰였다.
‘땅집’에 마당이 있는 것처럼 아파트에는 베란다가 있다. 곱고 불편한 점도 많지만 베란다는 그나마 마당이 해주던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해 주고 있다. 화분에 마음 놓고 물을 줄 수도 있고 의자를 내놓고 앉아 햇볕을 쬘 수도 있다. 난간에 기대서면 멀리 있는 산들이 눈에 들어오고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 볼 수도 있다. 옛날 땅집에 살 때는 개다리소반이 놓인 대청마루에서 방석을 깔고 손님을 맞았으나 가구들이 늘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아파트 거실에 대형 TV가 놓이고 소파를 들여오면서 공간은 더욱 좁아졌다. 거실을 넓게 쓰려는 생각이 베란다를 밀어내고 말았다.
처음에는 불법으로 확장을 했으나 언제부터인가 합법으로 넓힐 수 있게 되었다. 신축 아파트에는 아예 베란다를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확장형 거실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부부가 함께 출근을 하고 집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베란다의 필요성도 함께 감소했다. 그러나 며칠이라도 집 안에서 지내보면 베란다가 없는 불편을 피부로 느낄 때가 많다. 화분에는 조심해서 적당히 물을 주지만 물은 거실바닥으로 흘러넘치기 일쑤이다. 그래서 어떤 집은 아예 화분을 없애버렸다.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들판이라니! 창문을 열어놓고 외출했을 때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면 실내가 물바다가 될 때도 있다. 여름이나 겨울철에는 실내온도 조절하기도 어렵다. 아스팔트 위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은 베란다 없이 잘도 견딘다. 그러나 흙을 밟으며 살아온 세대는 마당대신 베란다를 요긴한 공간으로 쓰고 있다.
나는 오랜 세월동안 교회가 정해주는 사택에 살았지만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베란다를 더욱 눈여겨보게 되었다. 100여 세대의 소규모 단지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의 일이다. 나는 설계도에 있는 그대로 베란다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건축주는 요즘 사람들은 베란다가 없는 집을 선호한다면서 확장을 해놓으면 거실공간이 넓어 살기 편하고 집을 팔 때도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베란다를 고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단지에 베란다가 있는 집은 4세대밖에 되지 않았다. 외눈박이들이 모인 곳에 두 눈을 가진 사람이 가면 병신취급을 받는다는 말처럼 나는 아파트 관계자들에게 별난 사람 취급을 받았다.
마당에 물을 뿌리듯 나는 이삼 일에 한 차례씩 베란다에 물을 흥건히 뿌리도 더위를 씻어내듯 바닥을 청소했다. 입주한 지 달포쯤 지났을까? 어느 날 아파트 관리인으로부터 아랫집 청정에 물방울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은 우리 집 어디에선가 물이 새고 있다는 말이었다. 모두 확장형이기 때문에 방수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베란다를 만든 것이 아랫집으로 물이 새는 원인이었다. 며치 후에는 베란다 바닥을 다 걷어내고 방수처리를 다시 하는 큰 불편을 겪었다. 한동안 공사 소음과 함께 온 집 안은 먼지더미에 휩싸였다. 몇 년 후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할 때는 베란다 때문에 집이 쉽게 팔렸다. 그때는 요즘처럼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고 있었고 기존의 집들도 잘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집을 보러온 사람은 우리 집 베란다를 보고는 바로 계약을 제의했다. 그 사람은 마당이 있는 집에 살던 사람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도 건축할 때는 모두 확장형으로 지어지고 있었다. 설계는 아예 확장형을 전제한 형태였다. 나는 생각을 거듭하다 골조공사를 마친 뒤에야 건축주에게 베란다를 설치해 주도록 요청했다. 담당자는 모두가 확장형으로 시공되기 때문에 지금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추후 비확장형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단서를 계약서에 첨가하여 도장을 찍고 베란다 설치를 관철했다. 몇몇 이웃들은 “어떻게 베란다를 설치할 수 있었느냐”고 말하며 우리 집 베란다를 부러워했다. 1350세대의 대단지에 베란다를 설치한 곳은 고작 7세대뿐이었다.
나는 오늘도 책상 옆에 앉아 베란다를 내다보며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마당을 생각한다. 폭 45cm의 화단에는 샐비어와 제라늄이 꽃을 피우고 상자화분에는 사랑초와 조란(鳥蘭)이 자란다. 그리고 관음죽, 군자란, 벤자민, 천사의 나팔꽃, 또 40년을 함께 살아온 문주란과 소철 등 30여 개의 화분이 베란다의 주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화분에 마음 놓고 물을 뿌려줄 때는 내가 물을 마시는 것보다 더 시원하다. 난간을 짚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짙푸른 금정산 자락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산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마치 기댈 언덕이 있는 것처럼 푸근함을 더해준다. 베란다는 내게 있어 마음의 심호흡을 하는 마당이다. 옆에 붙은 작은 다용도실에는 텃밭용 삽을 비롯한 농기구와 비닐 뭉치나 청소도구, 채반 같은 집기들이 들어 있다. 잡동사니 도구들을 한데 모아둘 곳이 있다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공터, 자투리땅, 뒤란, 헛간, 광 등은 현대인들에게는 잊혀진 공간들이다.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더해주는 장소였다. 사람들은 한 집에 화장실은 두 개, 세 개씩 만들면서 이런 요긴한 공간들은 모두 없애버리고 말았다. 현대인들의 마음이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것은 이런 허드레 공간들을 정리해버리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분다. 그럴 리 없지만 혹시 다시 이사를 한다면 나는 더 넓은 베란다를 갖고 싶다. 할 수 있으면 베란다를 뛰어넘어 발코니나 테라스에서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는 꿈을 꾼다. 도시인들에게 마지막 남은 마당! 나는 나의 영토를 지키듯 베란다를 지켜갈 것이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수필의 계절과 숙성 / 김진식 (0) | 2016.08.23 |
---|---|
[좋은수필]엉치 달래기 / 정민아 (0) | 2016.08.22 |
[좋은수필]날아라, 새 / 이혜숙 (0) | 2016.08.20 |
[좋은수필]숲에서 길을 찾다 / 변순자 (0) | 2016.08.19 |
[좋은수필]벽에게 묻다 / 이경은 (0) | 2016.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