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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파라다이스를 찾아서 / 박경대

파라다이스를 찾아서 박경대                  

 

 

 

이슬 머금은 텐트를 젖히고 하늘을 본다. 아침이면 버릇처럼 되어버린 이 일은 한 달 전 이곳에 온 뒤로 시작되었다. 날마다 수많은 동물이 죽어가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마사이마라는 동물사진을 시작한 삼십 년 전부터 늘 꿈꾸어 왔던 곳이다. 오늘 날씨가 어떨까,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지난밤, 운전기사 에반스가 상기된 표정으로 숙소로 나를 찾아왔다. 그는 공원관리인으로부터 누-들이 강 언저리로 모이는 것을 목격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다. 그 순간, 어쩌면 꿈꾸어 오던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새벽녘에 그만 일어나 버렸다.

동아프리카에 많은 무리가 살고 있는 누-는 소의 모습과 유사한 영양과의 한 종류이다. 싱싱한 풀이 주식인 그들은 건기와 우기에 따라 케냐와 탄자니아를 오가며 일생을 보낸다. 국경을 따라 마라강이 흐르고 있는데,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는 그들의 모습은 한 편의 생존 드라마이다. 오래 전부터 필름에 담고 싶어 동경하던 장면이었지만 적당한 안내서가 없어 사파리 투어에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촬영경비가 부족하여 몇 년간 모아서 아프리카 땅을 밟곤 했는데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여 지구 반대편까지 오는 목적이 그들의 도하 장면을 찍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을 건너가는 지점은 운이 따르지 않는 한 알 수 없었고, 보름 남짓의 짧은 기간으로 인하여 두 번 모두 실패를 하였다. 몇 년 전, 직장을 그만두었기에 이번에는 꼭 촬영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한국을 떠나왔다. 그러나 그 만남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다만, 최선을 다하면서 하늘의 뜻에 맡길 뿐…….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었지만 든든히 먹고 차에 올랐다. 매일 아침인사를 굿모닝이라고 하던 에반스가 오늘은 파이팅이라고 한다. 나의 화답 역시 똑같다. 마라 강은 이곳 히포로지에서 약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 마음이 급하지만 좋은 장면을 상상하며 의자에 몸을 맡겼다.

심하게 흔들리는 비포장도로에 들어서자 저절로 눈이 떨어졌다. 차창 밖으로는 끝없는 초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언뜻언뜻 강줄기가 보이더니 관리사무소가 나타났다. 관리인이 어제도 소규모의 누-들이 이동 했노라하고 한 지점을 가리켰다. 관리인이 알려준 곳으로 차를 향했다.

작은 언덕을 돌아서니 벌써 사파리 차들이 십여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대부분 유럽 각지에서 온 다큐방송 팀들이었다. 나도 자리를 잡고 강 건너편을 주시하였다. 그곳에는 약 4~500두 정도의 누-만 보일 뿐 별다른 움직임 없이 풀만 뜯고 있었다. 한동안 기다리며 살펴도 숫자가 불어나지 않았고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신통치 않는 장소라는 느낌이 들어 그곳을 떠나기로 결정 하였다.

두 시간 정도 강을 따라가며 임팔라와 새 사진만 몇 장 찍었을 뿐 별달리 새로운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기대가 너무 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조금 전 대기 장소의 상황이 궁금했지만 강폭이 좁아지는 상류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2km정도 더 올라갔을 때였다. 좁아진 강변으로 높지 않은 절벽이 이어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엄청난 수의 누-가 운집해 있었다. 어림잡아 수 만 마리나 되는 상상을 초월하는 무리에 질려 버렸다. 움직임도 활발하여 도하(渡河) 전의 행동임이 간파되어 기다리기로 하였다. 아래로 펼쳐지는 강의 전경과 누-들의 질감이 반역광(半逆光)으로 비쳐지는 마음에 꼭 드는 장소였다. 게다가 사파리 차량도 한대만 보여 더욱 기분이 좋았다.

대기한 지 한 시간 정도가 흘러 점심때가 지나고 있었다. -들은 우왕좌왕 할 뿐 강을 건너려고 하지 않았다. 악어 떼들이 무서웠던 것이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수첩을 꺼내들고 케냐에 와서 한 달 동안 촬영한 동물들을 점검하여 보았다. 사자와 코끼리는 마음에 드는 장면을 몇 장 찍었고 하마도 좋았는데, 표범은 아직 만나보지도 못했네……. 하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에반스가 갑자기 미스터 팍이라고 나를 부르며 한쪽을 가리켰다. 하고 보니 두세 마리가 물로 뛰어 드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엄청난 수의 누-들이 뛰어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뛰어 내린다는 표현은 그 광경과는 맞지 않다. 무너지고, 쏟아진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는 어림잡아 5만 마리는 될 것 같았다. 강변에서 벌어진 이 광경은 혼란 속에서 일어나는 흙먼지와 함께 충격의 영상으로 다가왔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다이내믹한 장면이었다. 수첩을 내던지고 무리를 향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손이 떨렸다. 300mm 망원렌즈의 화면가득 들어오는 누-들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 이 장면을 상상하고 찍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한참을 찍다가 참, 조리개는 제대로 맞추어 찍고 있나하고 다시 보곤 했다. 오래전 인도에서 야생호랑이를 만나 흥분된 상태로 조리개를 잘못 세팅하여 필름 한 롤을 몽땅 버렸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셔터를 누르면서 나도 모르게 연신 엄청나다는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 결정적인 순간이면 필름이 떨어진다. 바꾸어 끼울 틈이 없어 다른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그때 강 중간 부분에 악어 한 마리가 누-의 다리를 물고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앵글은 순간적으로 그곳을 향했다.

-는 길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한두 번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더니 물속으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마음이 착잡하였다. 찍고 싶었던 장면이었으나 한편은 불쌍하였다. 하지만 죽어가는 저 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그보다 악어들도 먹이를 먹고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이다. 야생의 세계에서는 먹고 먹히는 과정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자연의 생태를 가만히 두는 것이 먹이사슬을 흩트리지 않는 옳은 행동이다.

충격적인 광경은 약30분 정도 지속 되었다. 상황이 끝난 후에도 한참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온몸의 힘이 한순간 빠져 나가는 듯하였다. 도하에 실패한 누-들이 많았으나 운이 좋은 대다수는 건너 편 강둑 위로 올라 그들의 낙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강 하류를 따라 돌아오면서 보니 도하에 실패한 누- 몇 마리가 떠 내려와서 독수리 떼들의 먹이가 되고 있었다. 한 마리 동물의 불행이 다른 쪽에선 행운으로 바뀌는 것을 많이 목격하였으나 이렇게 적나라하고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과정은 흔하지 않았다. 오랜 기간 찍어온 동물사진 중 오늘의 장면이 단연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행운이었는데, 마음속에 늘 간직한 바람의 결과이리라.

죽음을 무릅쓰고 마라강을 건너는 그들이 결코 어리석다고 생각지 않는다. 수만 년을 걸쳐 반복되는 도하가 바로 그들이 멸종하지 않고 번성 하는 이유라고 믿는다. 파라다이스는 강 건너에 실제로 존재할 것이다.

어쨌든 20여 년을 바라 왔던 사진을 찍었다는 기쁨에 로지로 돌아오는 길이 무척 즐거웠다. 그날 에반스에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20$을 팁으로 건넸다. 그 또한 그날의 기분이 파라다이스였으리라.

(2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