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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해원(解寃) / 정성희

해원(解寃) / 정성희

 

 

 

외로움도 지나치면 사람을 실성케 하는가.

예나 지금이나 나는 세상을 맨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숙명에 처한 외톨이가 되어 겉돌았다. 그것은 마치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운명의 멍에 같은 것이었다. 더듬이가 끊어진 여치처럼 삶은 방향을 잃었고, 구멍난 인생사이로 세찬 바람이 불 때마다 휘청거렸다. 어디를 가든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는 길목마다 있지만,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일려주는 화살표는 아무 데도 없었다. 정해진 표지판 없이 엇길로 가다 보니 갈라진 길이 무수했다.

인연이라는 것은 우연을 가장한 불가사의한 필연의 끈이던가. 오래 전부터 나는 추수 끝난 황량한 벌판을 지키는 허수아비의 슬픔과 외로움을 닮은 무당의 팔자를 타고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창공의 태양은 무수한 별들보다도 더 밝게 세상을 비추지만, 내 삶은 사그라져 가는 희미한 잿불마냥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울컥 서러움이 밀려와 발길가는 대로 걸었다. 그러다가 버드나무 가지 위에 오색 헝겊이 늘어져 있는 하늘이 텅 빈 허름한 무당집 앞에서 걸음발이 멎었다.

얼굴이 보살형이야.”

늙은 무당이 나를 보자마자 대뜸 건넨 말이다. 흐트러짐 없는 그의 눈빛은 다소 고집스러워 보였으나 얼굴은 온화한 약사여래상을 닮았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갖가지의 고난과 슬픔들, 그리고 외로움이 뒤엉켜져 내 젊은 시절을 울먹이게 했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의 가난한 사랑이 남긴 그림자를 밟으면서 자랐다. 떠오르는 것은 화난 당신의 얼굴과 매질뿐이었다. 세월을 머금은 흰서리가 내리던 그때의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야 당신의 묘소를 찾아갔다. 거북등같이 파여진 땅의 굴곡들과 말라비틀어진 이름 모를 풀들, 삐죽삐죽 자라나온 잔디들은 용틀임을 하며 이리저리 비틀은 듯한 당신의 뒤틀린 삶을 보여주었다. 살아생전에 어머니는 내가 죽으면 절대로 네 애비 옆에 묻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러나 그 바람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 되어 쓸려갔다.

햇볕이 잘 드는 언덕배기 쌍무덤 안에는 부모님이 나란히 누워 계신다. 어머니 바로 옆에 자리한 아버지에게 평소 즐기시던 막걸리 몇 잔을 부어 권한다.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와 나는 세월에 실린 한의 뚜껑을 열면서 말없이 눈물을 떨구며 서로 할 말을 잃는다.

서사무가 바리공주 이야기가 생각난다. 바리공주는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가 죽을병에 걸리자 길러준 공은 없으나 낳아준 은혜를 생각하여 저승에 가서 약물을 길어와 살려냈다. 비록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당했지만, 자신을 멸시한 그 공동체를 위해 의례를 베풀면서 봉사하고 희생하는 끝없는 인욕을 보여주었다.

불혹을 실은 돛단배를 타고 투정부리던 푸른 객기를 어르고 달래어 인생의 중턱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삶의 여정에서 온갖 구불구불한 옆길을 에둘러 헤매면서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옹이처럼 박힌 해묵은 상처를 버리고 푼푼하게 비워진 마음으로 바리공주의 이타를 향한 베풂을 무언으로 깨우쳐 준 아버지의 말없음도 읽혀진다. 슬픔을 통해 눈물의 의미를, 외로움을 통해 사람의 귀함을, 절망을 통해 소생의 불빛을, 어려움을 통해 인내와 성실의 가치를 알게 해 주었다. 또한 지독한 고독을 통해 자신의 영혼 깊은 곳까지 가 닿게 하고, 소외를 통해 자신을 안으로부터 끌어내어 세상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막걸리 한 잔 가득 부어 건넨다. 망나니 막내딸의 푸념에 애간장이 탔는지 금세 잔을 비우고는 내게도 한 잔 따라 주신다. 순간 끄억끄억 목에 걸린 회한이 제상 앞에 뚝 떨어진다. 나도 목이 메여 단숨에 들이키고는 상을 물리려니 죄스러움이 물결일 듯 밀려든다. 문득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이승에서 못 다한 효를 저승에서라도 인연이 되어 다하리라고 입술에 힘을 준다. 아버지의 무덤이 내 등 뒤에서 점점 멀어질 즈음, 나는 그의 곰살가운 여식아이가 되어 있었다. 이젠 마음은 팔랑 나비가 되어 한결 가뿐해졌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와의 해원의식을 치르고 나니, 오월도 다 저물어가고 있다. 내년에도 기억 될 나만의 아버지날이 하마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