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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최후의 격전지 / 박경대

최후의 격전지 / 박경대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이다. 건너편, 절벽처럼 서있는 검은 벽 중간 지점에서 조그맣게 점멸하는 불빛이 보인다. 그 붉은 점을 보고 있자니 피를 말리며 싸움을 하고 있을 미지의 그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나 역시 오래전 똑같은 전투를 치룬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은 뒤 거실에서 아내와 수박을 먹고 있는데 열린 창으로 아래층에서 담배냄새가 올라온다. 담배를 끊은 지 십여 년이 되다보니 멀리서 피워도 금세 알아챈다. 아내는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면서 연신 투덜댄다.

얼마 전 신문에 금연 아파트를 지정한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고, 발코니에서 피우는 담배로 아래 위층에서 분쟁이 났다는 말도 있었다. 흡연자들의 설 땅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던 나로서는 그들이 무척 애처로워 보였다.

내가 담배를 즐겼을 때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불편해 하는 것을 몰랐으며 사회적으로 흡연에 매우 너그러운 편이었다. 지금은 상상조차도 어렵겠지만 70년대에 시내버스 안에서 친구들과 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새롭다. 그래도 간섭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나라의 담배 역사는 약 400여 년이 된다. 광해군 시절, 일본으로부터 들어와 처음에는 담바고로 불렸다. 또한 남쪽에서 온 신령스런 풀이라 하여 남령초라고 불리기도 했다.

피우면 기분을 좋게 해준다하여 약초로 대접받았던 담배이다 보니 흡연으로 생기는 가래조차도 몸속의 담을 없애주는 것으로 믿었다. 기록에는 임금님 앞에서도 피웠다는데, 연기를 싫어했던 임금 때문에 어른 앞에서는 피우지 않는 예절이 생겼다고 한다.

마음이 괴롭다고 한대, 기분이 좋아도 한대, 그리고 식사 후라고 한 모금 등 이런 저런 이유로 담배는 급속히 퍼지게 되었고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다. 애연가들은 밥은 굶어도 담배는 피웠다. 그토록 많이들 피웠으니 전매수입 또한 엄청났다. 세수가 얼마나 많았던지 사십여 년 전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의 공사비와 그해 전매수입이 비슷하였다. 당시의 언론이 보도하기를 그때 통용되던 100원짜리 지폐를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 위에 깔아도 돈이 남는다고 했으니 그 수입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였다.

그런 이유로 담배를 피울 때면 항상 많은 세금을 국가에 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어 당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건 피울 때 생각이었고, 끊고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흡연으로 발생하는 의료비용과 화재로 소실되는 비용이 담배세수 만으로는 모자라 비 흡연자의 세금까지도 쓰여 진다고 한다. 정부에서도 요즘은 금연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캠페인만으로는 효과가 미미했던지 담뱃갑에 경고문을 넣고 조만간 역겨운 사진까지 넣는다고 한다. 또한 담뱃값을 올리고 금연구역도 넓힐 예정이라고 한다.

담배가 백해무익이라 말하지만 사실 훈련병시절 잠깐 쉬면서 피우는 담배는 맛보다 피곤함과 향수를 잊게 해주는 특효약이었다. 언제인가 눈 덮인 산 정상에 올라 피워 본 신선초는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만족감을 주었다. 꿈 많았던 그 옛날, 비 오는 항구의 선술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내뿜던 담배 연기는 멋진 시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해주는 환각초였. 그 맛과 분위기에 매료되어 모든 사람이 담배를 끊는다 해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어느 코미디언이 폐암으로 돌아가시기 직전 방송에 출연하여 담배를 끊으라며 간곡히 호소하는 방송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으며 가족 또한 항상 담배연기를 괴로워하여 금연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담배마다 붉은 색연필로 가위 그림도 그려보고, 사지 않고 얻어서 피워보기도 하였으나 잘 되지 않았다. 은단을 먹고 물을 마시는 방법도 나에게는 효과가 없었다. 다시 피우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장롱 뒤로 던진 담배 갑을 찾겠다고 새벽에 무거운 장롱을 들어낸 적도 있었다. 그 순간은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여 자책도 많이 하였다.

끊었다가 피우고, 피우다가 또 끊고 하기를 열 몇 번 만에 금연에 성공 하였다. 그 후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피우지 않는 사람 양쪽을 모두 이해 할 수 있었다. 경험상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무척 힘들다. 하지만 간접흡연의 피해가 심각하다고 하니 흡연자들은 가족들을 위해서 다시 한 번 금연을 시도해보길 권하고 싶다.

시원한 밤바람을 기대하며 창을 열었으나 미풍이 담배 향을 배달할 뿐이다. 옆 동을 문득 보니 그곳에서도 빨간불 하나가 깜박거리고 있다. 그 불빛은 거실과 안방에서 쫓겨나온 어깨 처진 가장의 한숨 섞인 담뱃불이 틀림없다.

그래, 발코니는 애연가들이 최후로 사수 하고 있는 격전지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