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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도라지꽃 / 장미숙

도라지꽃 / 장미숙


 

 

보랏빛 옷자락을 바람결에 헹구는가. 이른 아침, 베란다에 남보랏빛 향기가 가득하다. 다섯 겹 치마폭에, 진한 남색 줄무늬가 선명한 도라지꽃이 가느다란 꽃대에도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삶을 지탱하고 있다. 밤을 밝히는 등불처럼, 작은 꽃잎하나가 회색빛 도시를 환하게 밝힌다. 화려하고 아름답다기보다는, 청초하고 수수해서 더 정이 가는 꽃을 가만 바라보면 문득 낯익은 풍경하나가 그림처럼 떠오른다.

지난 가을 어느 날, 허리를 수그리고 삽질을 하던 어머니, 동그랗게 등이 굽은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던 도라지꽃은 고향 산밭 한 모퉁이에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긴 산 그림자의 옷자락이 덮고 있던 그곳은 밭이라기보다는 비탈에 가까웠다. 언뜻 보기에는 밭두렁 같기도 했지만 꽤 넓어서 풀들이 무성히 자라던 곳이었다.

개울을 끼고 있어서인지 다른 곳에 비해 풀이 더 잘 자랐지만 그곳은 돌이 많아 산 아래쪽인데도 불구하고 한동안 내버려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 언제부터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날부터인가 산밭에 가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곳이 되어버린 그곳에는 도라지꽃이 푸른 멍처럼 피어 있곤 했다.

도라지꽃이 내게 봉숭아처럼 친숙하게 느껴진 건, 아주 어렸을 적부터 보고 자란 덕분이었다. 어렸을 때는 별 관심 없이 지나치던 꽃이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의미 있는 꽃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였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 집에는 예전부터 도라지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대문 옆 감나무 밑에만 있는데, 어렸을 적에는 장독대근처와 뒤란에서도 도라지꽃을 본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집에 있는 도라지꽃은 그저 두어 송이 피어 있었을 뿐, 산밭 도라지꽃처럼 무리지어 피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지난해 가을, 어머니랑 산밭에 도라지를 캐러 간 날, 꽃잎을 활짝 열어버린 꽃무리를 본 순간, 울컥 가슴에서 푸른 눈물이 솟아오를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든을 앞두고 있는 어머니의 지난한 생이 가분재기 푸른 멍이 되어 가슴을 두드린 탓이었다.

어머니는 뭉툭한 손으로 삽자루를 잡고 땅속깊이 삽을 꽂고 있었다. 꽃무리 속에서 도라지뿌리를 캐기 위해 몸을 수그린 늙은 어머니가 내 가슴에 도라지꽃이 되어 망울망울 피어났다. 도라지는 가느다란 몸매와 슬프도록 어여쁜 꽃에 비해 뿌리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존재한다. 지구의 중심을 꽉 잡고 땅속 깊숙이 제 몸을 비틀며 생명을 이어가는 도라지는 다름 아닌 어머니의 사랑을 닮아 있었다.

삽을 내리꽂으면 둔탁한 소리가 삽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도라지의 잔뿌리처럼 흙속에는 수많은 돌이 박혀 있었다. 그 돌 속에서도 도라지는 뿌리를 통통하게 키우며 뻗어가고 있었다. 삽조차 들어가지 않는 흙속에서 생명을 부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끊어진 몸에서 흘러나온 쓰디쓴 액이 혀끝을 아릿하게 했다. 도라지 뿌리를 보며 나는 속으로 삼킨 눈물이 사리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세월을 보았다.

어머니에게도 사랑이란 게 존재할까. 자식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닌, 여자로서 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보호받고 싶은 그런 사랑이 존재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 건, 오륙년 전 여름 날,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난 뒤부터였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더운 날씨보다도 달떠 있었다.

오메, 나가 오늘 참말로 기분이 좋단 말다. 느그 아부지가 날 생각할 줄도 알더랑께. 나는 느그 아부지가 영영 바보가 되야버린 줄 알았등만, 그건 아닌갑써. 나 묵으라고 면에 가서 막걸리를 사왔드라니께. 나가 시키지도 않았는디 말이여. 참말로 사람이 오래 살다봉께 이런 날도 있는 갑다. ~”

그날, 어머니의 흥분된 숨결에서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엿보았다.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남편도, 가장도, 아이들의 아버지도 아닌 웬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원했고, 아버지가 건네주는 음식 한 조각 받아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런 소박한 소원은 가능성이 별로 없는 어머니만의 바람에 불과했다. 아버지는 삼십대에 얻은 병으로 인해 평생 당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세상으로 나오게 하려고 어머니는 이십년이란 세월을 홀로 사셨다. 한창 젊었던 시절, 아버지를 병원에 보내놓고 어머니는 새벽마다 정화수 앞에서 두 손을 모으셨다.

푸른 새벽녘처럼 어머니도 젊었을 때는 꼿꼿한 등과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여자였다. 한 남자의 사랑을 갈구한 젊은 여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흙이 덮어버린 도라지 뿌리처럼 어머니의 하얗고 매끄럽던 피부는 남루한 옷 속에 감춰진 채 시들어갔다.

수많은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어머니의 사랑은 희망에서 절망으로, 절망에서 체념으로, 그리고는 연민과 동정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지워준 짐의 무게에 눌려 어머니는 깊은 신음조차 제대로 토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삶을 붙들어준 건 무엇이었을까.

어머니는 아버지를 웬수라 불렀지만 그 말 속에 들어 있는 끈끈함이 실은 어머니를 지탱해준 힘은 아니었을까. 겉으로는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어머니의 시선은 늘 아버지에게로 향하고 있는 걸 나는 보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걸 나는 지금에야 깨닫는다.

고통의 순간들은 자칫 뿌리를 썩게 해서 끝내는 줄기와 꽃잎까지 병들게 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마음속에 간직한 사랑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오히려 비바람에도 악착같이 생명의 뿌리를 더욱더 키워나갔다. 그 힘의 근원이 자식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결코 포기할 수도, 마음속에서 꺼내놓을 수도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산속 돌밭에 도라지를 심으며 어머니는 잃어버린 젊은 날의 꿈을 회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어머니의 숨은 사랑이었고, 그 마음이 꽃으로 피어났으리라 생각하니 어머니의 사랑이 흐드러진 그 가을날이 내 안에서 다시금 파랗게 살아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