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손 / 박문하
여섯 살 난 막내딸이 밖에서 소꿉장난을 하다가 눈에 티가 들어갔다고 울면서 들어왔다.
어린것들에게는 제 아버지라도 의사라면 무서운 모양인지, 아프지 않게 치료를 해 주마고 아무리 달래어도, 혹시 주사라도 놓을까 보아서 그런지 한층 더 큰 소리를 내어 울면서 할머니에게로 달아나 버린다.
할머니는 손녀를 품안에 안으시고는 아픈 눈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시면서 자장가처럼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는 것이었다.
“까지야 까치야 네 새끼 물에 빠지면 내가 건져 줄 터이니 우리 민옥이 눈의 티 좀 꺼내어 다오.”
어린것은 어느 새 울음을 그치고 할머니의 품안에서 쌔근쌔근 잠이 들어 버린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연세가 여든을 넘으셔서 고목(古木) 껍질처럼 마르고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 의사들이 가지지 못한 신비한 어떤 큰 힘이 하나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
옛날에 우리 집은 무척 가난하였기 때문에 우리 형제(兄弟)들은 병이 나도 약 한 첩을 써 보지 못하고 자라났었다.
우리 형제들이 혹시 병으로 눕게 되면 어머니는 약 대신에 언제나 그 머리맡에 앉으셔서는 저렇게 “까치야 까치야…….”를 외시면서 우리들의 아픈 배나 머리를 따뜻한 손길로 쓰다듬어 주셨던 것이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그 아픈 배나 머리가 씻은 듯이 나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머니의 손을 약손이라고 불렀었다.
나는 문득 내 손을 펼쳐 보았다. 진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현대(現代)의 약손이라고 일컫는 의사의 손이다. 그러나 미끈하고 차가운 내 손에는 아무래도 무엇인가 중요한 것 하나가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
어린 손녀의 아픈 눈을 어루만져 주고 계신 어머니의 손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 손에서 슈바이처보다도 한층 더 뜨겁고 진한 체온과 정신을 새삼스레 가슴 속 가득히 느꼈다 그리고 고목 껍질 같은 어머니의 손이 오늘따라 자꾸만 모나리자의 손보다도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었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행복한 유배 / 김규련 (0) | 2016.12.19 |
---|---|
[좋은수필]도라지꽃 / 장미숙 (0) | 2016.12.18 |
[좋은수필]최후의 격전지 / 박경대 (0) | 2016.12.16 |
[좋은수필]해원(解寃) / 정성희 (0) | 2016.12.15 |
[좋은수필]문학과 과학의 거리 / 안도현 (0) | 2016.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