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歸路) / 류영택
둥실 둥실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그 옛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이젠 자신의 등을 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뿐, 까맣게 염색머리를 한 아들은 자신의 손을 잡은 채 한걸음, 한걸음 발을 내딛는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조심 하소. 그 말만 되풀이 한다.
나는 윤 씨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여주었지만 실은 엉뚱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가게 단골손님인 그는 레미콘차량을 운전한다. 윤 씨는 내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컨테이너를 향해 턱짓을 했다. 얼마주면 살 수 있나? 글쎄요, 중고 물건이라……. 대충 얼버무리고는 어디에 쓰려고 그러느냐? 오히려 반문을 했다. 윤 씨는 내 말에 씽긋 웃고는 우리아버지 집 사주려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다. 나는 윤 씨의 그 말이 농담으로만 들렸다. 정확한 나이는 알지 못하지만, 얼핏 봐도 육십 중반은 넘어 보이는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평소에도 싱거운 소리를 곧잘 했다. 하지만 너무 심한 말 같았다. 어디 할 말이 없어! 아니다. 컨테이너 가격을 묻는 것을 보면,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코 농담이 아닌 것 같았다.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시내에서 조금 벋어나긴 했지만 넓은 한옥 집에 살면서 어찌 그곳에다 아버지를 모실 생각을 다 했을까. 발상자체가 불효막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뼈대 있는 집안이라더니, 말짱 헛것이네." 퉁명스런 내 말투에도 윤 씨는 별로 기분상해하거나 달리 변명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남의 이야기 하듯이 정말 컨테이너를 사야한다고 했다. "고려장 치를 일 있소!" 나는 말 같지 않는 소리 하지도 말라며 정색을 했다.
윤 씨의 아버지는 아흔을 넘긴 고령이다. 작달막한 키에 몸이 외소한 아들과 달리 체격도 크고 성격도 깐깐하기 그지없다. 아들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천정이 들썩일 정도로 고함을 친다. 아들 윤 씨도 만만치가 않다. 아버지가 고함을 치면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있으면 만사가 편할 텐데 한 마디도 지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꾸를 한다.
그날도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자신의 말이 옳다며 갑론을박을 했다. 하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했던 말을 반복해서 했다. 아들도 금세 했던 대답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왜 이러시지? 한 번도 이런 일을 없었다. 비록 고함을 치지만 아버지의 말은 제자리에 멈춘 적이 없었다. 저번에도 그랬지 않느냐? 아들의 판단이 잘 못됐다며 과거에 과거를 더 하는 일은 있어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는 하지 않았다. 머리를 숙이고 있던 아들이 고개를 들었다. 아들은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혈색이 좋아 저승꽃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얼굴이 탈색된 창호지처럼 거무스름해 보였다. 목덜미에 툭 불거진 핏줄도 보이지 않았다. 상대를 노려보듯 형형했던 눈빛도 공허해보였다. 평소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잠시 전 방문을 들어설 때까지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자신도 그렇지만 아버지는 유난히 목소리 톤이 높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목덜미에도 굵은 핏줄이 불끈 솟아있었다.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닌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했던 말을 반복하던 아버지는
'씨름 한 판 할래?' 뜬금없이 까마득한 옛날,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아들에게 하던 말을 했다. 아버지 왜이러십니까? 아들은 아버지의 두 손을 감싸 잡았다.
씨름 한 판 할래, 아버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은 자주 반복됐다. 아들은 그때마다 아직 아버지를 못 이깁니다. 손 사례를 쳤다. 아들의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는 그 몸으로 에비를 이길 수가 없지. 알통을 보여주겠다며 코끼리 허벅지처럼 주름투성이 팔뚝을 치켜세웠다.
아들은 집을 나서며 아내에게 아버지를 잘 지켜보라며 당부를 한다. 요즘 와서 집을 뛰쳐나가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일 거수 일 투척을 지켜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잠시만 한눈을 팔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오수를 즐기시나? 마루를 닦던 윤 씨의 아내는 사랑 채 댓돌에 놓인 시아버지의 신발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 거린다. 방안이 너무 조용한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든 윤 씨의 아내는 신발을 싣는 둥 마는 둥 사랑채로 향한다. 방안에는 아침에 새 옷으로 갈아입힌 시아버지의 옷만 널브려져 있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윗옷을 벗어 던지고 집을 나간 시아버지 걱정보다 노기 띤 남편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간다. 성질이 불같은 남편은 소동이 일어날 때마다 집구석에서 그것도 안 보고 뭐했나! 자신을 나무랬다. 손자며느리가 올린 밥상을 받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칠순 늙은이가 이게 무슨 팔자인가. 윤 씨의 아내는 관절염으로 성치 않은 다리를 끌며 시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을 하고 다녔다.
끈으로 발을 묶어둘 수도 없고 이 일을 어쩌나. 아들은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다. 오늘 같은 날 정신을 놓으시면 그나마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아들은 요양원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무거워 왔다. 이렇게 보내면 살아생전 다시 집으로 모실 수 있을까. 그 옛날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습을 아들이 봤다면, 아버지 그 차 폐차시키지 말고 잘 놔두세요. 그래야 나중에 아버지 태워다 드릴 것 아닙니까. 지게가 차로 변한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찹찹한 마음에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는 당신의 손을 잡는 아들의 손을 뿌리치며, 씨름 한 판 할래? 기운이 펄펄 난다며 힘자랑을 했다. 그냥 집으로 뒤돌아 갈까. 아들은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얼굴을 애써 외면했다. 나는 자신이 없으니 모시고 싶으면 당신이 아버님 뒤를 따라 다니세요. 더 이상 뒷감당을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멀쩡한 자신을 요양원에 가두려 한다며 노발대발 했다. 아들도 지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꾸를 했다. 아버지, 지는 어찌 하라고요! 아들이 눈물을 짓자 아버지는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편할 것 같았는데, 몸도 마음도 편치가 않았다. 요양원을 다녀오는 길, 운전대를 잡고 가다 잠시 신호등 앞에 멈춰 설 때면 '나하고 씨름 한 판 할래?' 멀건 눈을 하고서는 알통을 내보이던 집에서의 모습, 약(藥)기운 때문인지 넋 놓은 걸음으로 다가왔다 고분고분 병실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교차해왔다. 이놈아, 멀쩡한 나를 와 여기 가뒀나! 처음 요양원에 갈 때처럼 차라리 그 말을 했더라면, 아직도 기운이 넘치는 구나.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 텐데. 아들은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참 귀찮겠습니다. 달리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내 딴엔 생각해서 한 말인데. 윤 씨는 내 말이 고깝게 들렸든지 이 사람이 시방 그걸 말이라고 하나!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하긴, 자네가 그 말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건강하게 살다 잠을 자듯 밤새 가면 그 이상 복이 어데 있겠는가."
윤 씨는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귀찮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컨테이너를 하나 사서 마당에 들여놓고 아버지를 모시려고 했다. 그러다 정신을 놓으면 잠시 문을 걸어두면 되지 않겠느냐. 지내기는 불편하지만 때마다 따뜻한 밥을 지어 올릴 수 있고 조석으로 문안인사 드릴 수 있으니 요양원보다 낫지 않을까.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라 했다.
"생각해보게, 내 나이가 적은 나인가?"
고뇌에 찬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윤 씨의 얼굴이 그제야 본래의 모습을 찾은 것 같았다. 염색머리에 가려진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살, 뿌리가 드러난 채 버덩해진 의치가 잠시 전 모습과 판이했다. 눈에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도 칠십을 넘은 여는 노인과 다름없이 늙어 있었다.
"이 나이에도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은 다 아버지 때문일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지금까지 젊게 살아가려고 했던, 불효를 하지 않으려면 억지로라도 그렇게 살아가야만 했던 그 마음도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말걸세"
아마도 윤 씨가 아버지의 말에 꼬박꼬박 토를 달았던 것은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장수를 바라는 마음, 말벗이 돼주고 싶어 그랬던 것 같았다.
컨테이너를 집에 들여놓는 날, 윤 씨는 아버지를 모셔올 것이다. 아버지 제 등에 업히세요. 어허, 그 몸으로 힘이나 제대로 쓰겠나, 차라리 내가 너를 업는 게 났지. 요양원 문을 나서는 순간 아버지는 기운이 펄펄 날 것이다. 내가 한 갑 나이만 됐어도 아버지를 업을 수 있었을 텐데. 머쓱해져서 머리를 끌쩍이는 아들을 향해 아버지는 또 큰소리 칠 것이다. 아들아, 우리 씨름 한 판 하자. 아버지, 제가 한 번이라도 이긴 적이 있습니까. 허허허 웃음 짓는 윤 씨의 눈가에는 지난 날 자신을 등에 업고 신작로를 걷던, 아버지의 등에 업혀오던 모습이 스쳐가지나 않을까. 야야, 손 얼겠다. 시린 손을 당신 겨드랑이에 꼭 밀어 넣으라며 쌩쌩 불어오는 찬바람을 온몸으로 막아주던, 아버지의 따뜻한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던 그 날의 기억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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