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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자유의 크기 / 권현옥

자유의 크기 / 권현옥

 

 

초지대를 안으로 집어넣고 또 몇 개의 대를 밀어 넣은 낚싯대처럼, 단단한 것을 가슴에 묻어두었다. 언젠가는 그것을 쭉쭉 뽑아서 흔들어댈 거라고, 그렇게 화려하게 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용기를 내면 될 거라고.

바람이 조금 불고 햇살이 그런대로 있는 날, ‘자유라는 천 조각을 달고 흔들면 햇살에 빛나는 다이아몬드처럼, 아니면 정반대의 날카로운 유리파편처럼 분사될 거라고 기대하고 또 각오했다. 어떤 경우라도 가슴은 가벼워져야한다는 최상의 시나리오에 최면도 걸었다.

그러나 마음의 자유란 오래 웅크리고 버티다 적당한 때 펴는 커다란 게 아니었다. 어느 순간 흔들어대는 선전포고도 아니고 가슴이 터질 듯한 순간에서야 치켜드는 것도 아니다. 장대와 깃발을 숨겨둔 것은 꼬인 욕망이었다.

어쩌면 적당한 때가 있기나 한 걸까. 누가 보아도 깃발을 흔들 만한 때가 되었다는 마땅한 때는 서로 어긋나기 일쑤일 테고, 내 살갗을 수시로 스치는 사람들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 게 뻔한 일일 텐데.

순간순간 내 불만의 웅크림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것, 착한여자 콤플렉스에서 나를 건지는 것. 그런 다음 내 작은 도리를 편하게 행동하고 나머지는 그냥 놓고 보는 것이다.

이순의 나이가 돼서야 설핏 알게 된 순응의 아름다움- 순응이야말로 자유에 가깝다는 - 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애초에 긴 장대를 접어 깊은 곳에 둘 필요도 없었다. 작고 가벼운 손가락 사이의 찬스카드같은 것이면 족했다. 꼭 필요할 때 내 보이면 누구나 알았다고 기히를 주는 게임처럼.

그만한 것이 나를 가볍게 한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