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채삼덕(芹菜三德) / 김소희
땅 밑을 흐르는 개울물 소리는 태동하는 생명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계절이 바뀌는 소식은 물론 신비로운 소식도 그 속에 다 들어있는 듯하다. 천지가 꽁꽁 얼어붙는 시각에도 파란 불 밝혀놓고 환희의 몸짓으로 길손을 맞이하는 미나리가 그런 기분에 젖게 한다.
두꺼운 유리벽 같은 얼음장 밑에서 독야 청청하는 근채삼덕의 주인공은 우리가 맞이하는 꽃샘추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직 춘삼월이라 꽤 물이 차갑긴 하지만 사계절 푸르름을 잃지 않는 그들 앞에서면 추위도 싹 가져버린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더 따스해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이 식물이 갖고 있는 품격에서 오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미나리를 만나기 위해 한해도 빠뜨리지 않고 이곳 작은 들녘을 찾는다. 이유 중 첫째는 삼덕을 가지고 있다는 그 뜻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또는 초목에 품격을 둔 점과 응달의 수렁에서도튼튼히 지켜나가는 그들의 삶이 궁금한 점이기도하다. 그래서일까. 해동소식이 들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내겐 미나리라는 이름이다.
살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물 깊숙이 손을 밀어 넣어본다. 내 손도 어느새 초록물빛으로 그들과 함께 어우러진다. 싱싱하기 짝이 없는 미나리를 살짝 뜯어 올리면 왜 유독 이 식물에 품격을 매겼나 하는 점이 새겨진다. 단 한점도 세상풍파에 흐트러진 빛이나 자세를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맑기가 그지없는 향이 그렇고 더 말할 수 없이 청명한 하늘빛을 품어내는 빛깔이 그것을 말해준다.
우선 나무의 일품으로서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요 꽃의 일품은 눈 속에서 피는 매화이며 야채의 일품으로는 미나리로 꼽았다. 거기다 삼덕三德까지 일렀으니 역할이 보통이 아님은 분명하다고 느껴진다.
한 식물에 품격을 매긴 것은 아마 미나리뿐일 것 같다. 삼덕 중에 첫째 덕을 가리키는 것은 음지를 가리지 않고 잘 살아내는 의지를 말함이 아닐까. 음지의 삶은 누구에게나 고달프기 마련이다. 아니 만물은 음지에서는 잘 시드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채소만큼은 그늘진 자리를 싱그러운 공간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점이 누구에게나 호기심을 준다. 미나리를 보고 있으면 구김살이라는 단어가 왜 생겼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드니 말이다. 우리조상들이 이런 내용을 일덕으로 꼽았던 이유는 바로 지금의 조건을 두고 이르는 말일 것 같다.
그와 반대로 온 산야가 타들어 가는 가뭄에도 정녕 마르지 않는 것 또한 미나리이다. 삼덕 중 둘째 덕으로 여겼던 이유는 혹 이점을 두고 말하지 않았을까. 물을 떠나선 살수 없는 식물일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는 게다. 곳곳에 물 부족 난리를 겪어도 본래의 푸른빛으로 지조와 일편단심을 지킨다. 인심마저 타들어 가도 미나리는 좀처럼 타지 않는다. 정녕 그들은 희망과 기생력과 용기와 생명력의 신화 같은 존재인가. 자포자기와 절망과 무력감에서 해방시켜주는 절대적인 식물일까. 이런 점을 두고서 두 번째 가는 이덕이라 불렀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속세를 상징하는 진흙탕 속을 정화하는 능력으로서는 또한 미나리를 따라올 식물은 없다고 한다. 바로 삼덕 중 세 번째 덕을 이르는 말이다. 하수구에서 흘러나오는 갖은 오수들을 가림 없이 수용하고 흡수하여 푸르른 자신들로 태어나 맑은 환경으로 되돌려주는 게 미나리라는 것이다. 어쩌면 지구를 지키는 어머니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선악과 우열을 가림 없이 포용한다는 의미가 그것을 말해준다.
그렇다 일찍이 옛 선인은 소나무와 매화는 아버지에 비유했고 미나리는 어머니를 칭하기도 했다. 이 세상에 어머니라는 단어만큼 고귀한 이름이 있던가. 더러운 물을 걸러 생물에게 새 생명을 주는 극진한 희생이야말로 어머니가 아니고선 이루어 낼 수 없다. 이처럼 미나리가 삼덕의 이름을 얻기까지는 그만큼 실덕을 낳았기에 오늘날까지 믿음으로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근채삼덕이란 미나리가 가진 세 가지 덕을 두고 이른다. 삼덕의 주인으로 꼽혔던 이 식물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게 장점중의 장점이다. 흔히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 말한다. 하지만 미나리는 그것을 초월했다는데서 만물의 영장인 우리가 삼덕의 이치로 꼽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이란 유배생활동안 미나리 물 주기부터 아침을 맞이하였을까. 자신이 기거하는 다산 초당 넓은 마당에 미나리꽝을 만들어 놓고 근채삼덕의 의지를 음미하였다고 한다. 사계절 푸른빛을 잃지 않는 오묘한 이치에서 그 모든 것을 알아보고자 했을까. 아니면 베어도 쑥쑥 새 잎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서 성장 혼의 신비를 체감하려 했는지, 또는 흘려버리기 아깝도록 풍겨내는 싱그러운 향내에 세상의 맑은 혼을 감지하려는 뜻이었는지, 선생이 남긴 목민심서에서 그 의미가 전해오기도 한다.
우선 제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손수 지었다는 다산초당에 들어서면 책상에 앉아 집필하시는 선생의 초상화가 그 모든 것을 전해준다. 500여 편의 저서를 남기기까지 하나하나 휘어지는 손마디를 잡으며 학문적 사명에 생을 바치던 선생의 영상은, 봄 미나리만큼이나 싱그러운 빛으로 다가선다. 닳아 없어져 가는 팔꿈치의 연골은 시대적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겼을까. 자신의 수족이 삭아져도 그는 목민관의 길을 안내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유배지에서도 이곳 농민과 어민의 힘겨운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서리胥吏들의 혹독한 착취의 실상을 폭로하는 근황들은 바로 근채삼덕과 다를 바 없다. 세상 오염찌꺼기는 다 받아 마시고도 싱싱한 자태를 자랑하는 미나리야말로 목민심서이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니겠는가. 여느 선비들 같으면 변방을 떠나려는 마음에서 자신의 몸을 사리기도 하지만 한 포기 미나리처럼 세상정화를 위해 일신의 싱그러움을 절대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봄이 오기 바쁘게 이곳을 찾는다. 삼덕의 이치를 알고부터는 함께 동화되어보고 싶은 꿈인지도 모르겠다. 크게는 환경과 자리를 탓하지 않는 그들의 자세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기도 하다.
어느새 내 가슴에 푸른 미나리 한 포기 살짝 심은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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