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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발걸음 소리 / 조이섭

발걸음 소리 / 조이섭


 

 

길을 걷는 것은 인생살이와 많이 닮았다. 그래서 인생을 나그넷길이라고 하는가 보다. 아기가 돌 무렵이 되면 엄마 아빠의 축복을 받으며 첫걸음을 뗀다. 그렇게 시작한 걷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몸짓이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길을 제각각의 걸음으로 걷다가, 걷기를 멈추는 것으로 인생의 막을 내린다.

발길을 멈추는 것과 발걸음을 떼는 것, 머묾과 떠남이 조화로울 때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걸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발을 디딜 때는 오래 머문다는 마음가짐으로 디딜 곳을 잘 가리고, 발을 뗄 때는 새로운 자아를 찾아 진취적인 마음으로 주저 없이 발을 떼야 한다. 자기에게 알맞은 목표를 세우고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면, 잰걸음이든 큰 걸음이든 괜찮다. 한 가지 일을 삼십 년 동안 하든, 서른 가지 일을 일 년씩 하든 말이다.

계족산 황톳길을 동무들과 맨발로 걷는다. 모두가 황토에 찍힌 자기 발바닥 모양을 신기한 듯 내려다본다. 심지어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쓰다듬는 이도 있다. 언덕길을 올라가다 말고 뒤돌아서서, 길게 이어진 자기 발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인생을 살면서 지나온 발자국을 되돌아볼 때가 있다. 뒤돌아보는 것은 과거를 곱씹어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뭐 하나 달라지지는 않는다. 남겨진 발자국은 앞으로 가기 위한 나침반 역할일 뿐, 시간을 되돌리거나 결과를 바꿀 수 없지 않은가.

알맞게 경사진 황톳길 위로 새소리, 바람 소리가 어우러진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도 요란하다. 그런데 들릴 듯 말 듯 사박거리는 소리가 귀에 섞여들기 시작한다. 그 소리는 내가 걸으면 커지고 멈추면 그친다. 오호라! 내 발걸음 소리다. 젊었을 때 듣지 못했던 내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느라 달음박질할 때는 앞서가는 사람 모습만 보이고 관중의 함성과 채찍질 소리만 들렸는데, 이제는 내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마치 음악을 오래 듣다 보면, 오케스트라의 트롬본과 혼 소리를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내 발걸음 소리가 뚜렷하게 들린다.

발걸음 소리를 듣는 것은 현재를 살피는 것이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말이다. 급한 마음에 엄벙덤벙 앞으로 달려갔다가 막다른 벽에 막혀 되돌아와 다시 시작해도 좋을 만큼 시간이 여유롭지 못하다. 걸을 때마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묻고, 여기가 어디인가 살핀다면 쉽사리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는다. 설사 그렇더라도 일찍 알아채고 쉬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내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다른 소리가 섞여들어 분간이 어려우면 친구 것을 들으면 된다.

친구들과 산을 찾았다가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등산로 주변의 꽃을 사진에 담느라 일행의 발걸음 소리를 놓쳐 갈림길에서 잘 못 든 것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작은 것이라도 하나 더 해보겠다는 욕심 때문에 큰 고생을 했다. 벗들과 어깨동무하고 느릿느릿 갈 일이다. 다른 사람의 발걸음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예전처럼 서로 겨루거나 견제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같이 지내온 친구 발소리나 내 발걸음 소리가 무에 다르랴. 이 소리가 저 소리고, 저 소리가 이 소리일 터.

한평생을 돌아보니 이렇게 살았다 내세울 것 하나 없이 산 듯하다.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눈 온 자리에 개가 달려가니 매화꽃이 떨어지고, 닭이 걸어가니 댓잎이 생긴다고 했다. 나는 어떤 모양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을까. 아직도 쓸데없는 발자국만 분분히 찍고 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말은 또 이렇게 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자잘한 발자취라도 모아 책 한 권 묶고 싶은 욕심을 내는 것을 보면 마음 따로 몸 따로 인 것이 분명하다. 지나온 발자국에 고인 물로 철버덕 소리나 내 보려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황톳길 가장자리에 벚꽃이 많이 피어 있다. 그중 나이가 많아 보이는 고목에는 꽃송이가 다문다문하다. 대신에, 듬직한 몸통에서 뻗어 나간 까만 가지 끝에 달린 하얀 꽃송이는 소담스럽다 못해 화려하기까지 하다. 가진 것을 다 내보일 필요가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보여주고 싶은 욕망을 안으로 잘 갈무리해야 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꽃향기처럼 내밀한 아름다움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스미어 나온다. 너무 많은 꽃송이를 탐하지 말아야지. 그저, 다정한 벗들과 즐길 한두 송이 피워 내면 그만이다.

이제 내 발걸음 소리가 절 마당에 벚꽃 떨어져 내리는 소리만큼 차차 작아질 것이다. 내가 만든 꽃송이 하나 떨어져 무슨 자국이 생길까마는, 그나마 남은 한두 자국마저 내일 새벽 부지런한 동자 스님의 빗자루에 쓸리고 말 것이다. 부끄러운 발자국은 깨끗이 지워버리고 새로이 정진하라는 가르침만 남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