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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탱자꽃/ 신미경

탱자꽃/ 신미경  

 

 

 

싸락눈이 내린 듯 가시 사이사이로 흰 꽃이 만발했다. 고목에 꽃이 핀다 하들 이리도 반가울 수가 있을까. 옆에는 이미 탱자가 꽤 크게 맺혔기에 아마 터울이 많이 진 형제 같은 모습을 곧 볼 듯하다. 실로 한 달 반쯤 늦게 온 꽃소식이다.

올해 봄은 수상했다. 유난히도 봄비가 주춤 걸음으로 오기에 겨우내 메마른 나무들을 깨우지 못했다. 등산길 입구의 무리진 철쭉은 예년의 반도 피지 못했다. 해마다 붉은색과 흰꽃의 철쭉이 만발했건만, 올해는 그냥 시늉만 내고 말았다. 탱자나무도 메마른 가시만 무성히 달고 있었지 예년처럼 흰꽃을 구석구석 피우지 못했다. 그저 드문드문 꽃을 달고 있는 모양새가 줄어든 머리칼을 하고 있는 노파를 보는 듯했다. 꽃을 불러내지 못한 나무는 새순조차 달릴 기미가 없었다. 뾰족한 가시들만이 자신의 몸을 무장하고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듯 까칠한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며칠 전에 봄비치고는 꽤 많은 비가 내렸다. 넉넉한 물기가 나무속의 꽃망울을 깨웠는지 지금 눈앞엔 흰색 융단이 펼쳐져 있다. 제때 꽃이 핀 것은 벌써 드문드문 탱자가 앙증맞게 열려 자라고 있는데, 늦되어도 한참 늦된 현상이다.

한 뱃속에서 나와도 아롱이다롱이라고 어릴 때부터 명랑하고 똑똑한 큰아들에 비해, 작은아들은 말이 없고 하는 양도 어눌했다.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상위권을 유지하며 나름대로 자만했던 큰아이에 비해, 작은 아들은 하위권의 성적 때문인지 늘 자신감이 없는 얼굴이었다. 자주 학급 평균을 까먹는 작은아이 때문에 선생님에게는 죄인이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내게, 작은 아이는 세상에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있다는 교훈을 심어 주었다.

몸까지 약한 아이는 사흘 건너 감기를 달고 살았으며, 폐렴이나 기관지염으로 자주 병원에 입원했다. 혈관을 찾지 못해 몇 번씩 주삿바늘이 아이의 팔에 꽂혔고, 자지러지는 아이를 끌어안으며 같이 훌쩍였다. 그때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 아프지만 말아라.'고 했던 그 말이 씨가 되었던 것일까.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작은아이 성적표를 들여다본 순간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막힌 기를 뚫기 위해 웃음이 나온다 하더니, 담임의 과목인 과학을 반 꼴찌도 아니고 학년 꼴찌가 아닌가.

"사실 꼴찌 하기도 힘든데……" 속은 상했지만 원래 공부머리는 아닌데 싶어 짐짓 담대하게 대했다. 말 한마디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피자를 먹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성적순대로 성공하지 않을뿐더러 더더욱 행복의 순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나와, 그래도 공부 잘하는 아이가 성공할 확률이 더 높고, 성공이 곧 행복이라며 남편은 목소리를 높였다. 도덕책에서나 읽을 법한 나의 생각과 지극히 현실적 일 수도 있는 남편과는 아이들 교육문제로 다툼이 잦았다. 전 과목 과외를 해서라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남편과, 거기 간들 꼴찌를 못 면한다며 맞섰다. 차라리 그 과외비를 모아 나중에 아이가 성인이 되어 꼭 필요로 할 때 주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갈등 끝에 공업고등학교를 보냈다. 집에서 한참 먼 거리인 학교운동장을 처음 들어선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몇 년 전 봤던 영화 '싸움의 기술'이 불현듯 떠올랐다. 힘 약한 공고생이 학교에서 견뎌내기 위해 싸움의 고수에게 기술을 배운다는 줄거리의 영화이다. 그 스크린 속에 나올법한 불량해 뵈는 학생들이 침을 뱉으며 지나갔고, 욕설이 반이나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내 선택을 후회했다.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아들이 과연 이런 분위기를 견뎌낼까 걱정이 한순간 몰려왔다. 남편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정답이라고 못 박았던 내 선택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 화가 났다. 입학식 내내 북받친 설움 때문에 나오는 눈물을 숨기느라 급급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부끄럽고, 선생님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선입견으로 좋지 않은 공고생이었지만, 아들은 무난히 적응을 잘 해 나갔다. 더구나 장학금까지 받아와서 내 걱정을 한꺼번에 씻어주었다. 지금껏 듣지도 못했던 성실하고 모범생이라는 문구가 성적표 뒷단에 쓰여 있었다. 나의 선택이 잘못 되지 않았음에 남편 보기도 당당했다. 무엇보다도 제일 뿌듯한 사실은 늘 고개 숙이고 힘없이 다니던 아이가 자신감으로 얼굴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 못 한다고, 중학교 때 자기 같이 공부 못하는 반 친구를 흉까지 보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별명을 '거만이'라고 지어 주었지만, 속내는 팽배한 자신감으로 목표를 향해 한걸음 다가가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아마도 가을이 되면 탱자 덤불 앞에 서성댈 시간이 많으리라. 학업성적과 성공 그리고 행복의 함수를 연결시키는 문제는 아직 미지수지만, 그래도 대기만성이란 말을 떠올린다. 알 굵은 탱자들을 호시탐탐 엿보며 늦된 아이에게 희망을 찾는 나를 볼 것이다. 때로는 바보같이 실실 웃을지 모르지만, 자식 앞에서만은 이율배반적인 소인배가 됨을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