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내와 사람내 / 박양근
모든 사물은 고유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동식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몸에서도 냄새가 난다. 무엇인가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리면 냄새를 먼저 맡는다. 모두가 체취로 자신을 드러내려 하므로 인간의 오감 중에서 후각이 가장 예민하다.
냄새 중에는 좋은 것이 있고 나뿐 것이 있다. 흔히 좋은 냄새를 향기라 부른다. 차향, 꽃향이 있고 한지에 쓴 글씨에는 묵향이 배어있으며 천년 땅속에서 제 몸을 삭힌 참나무에서는 침향이 스며난다. 향기야말로 모든 사물이 지니고 싶은 이상적인 기운일 것이다. 옛 선비들도 자신의 글에서 지필묵 향기가 묻어나기를 소망하였다. 그런데 글과 글씨에서는 문향과 묵향이 풍겨난다고 하지만 정작 글을 쓰는 사람에게서는 먹물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옷에 먹물을 잔뜩 묻힌다고 먹물 냄새가 나지 않는다. 몸 구석구석까지 냄새가 배이도록 글을 가까이하여야 겨우 먹물 냄새가 난다. 꽃향기가 꽃송이에만 담겨 있다면 나무 냄새는 줄기는 물론 뿌리 냄새까지 합쳐야 되는 것과 같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거의 매일 선친이 계셨던 산 절을 오르내렸다. 장남이 출가하여 스님이 된 아쉬운 탓인지 다섯 평도 못 되는 시골 암자의 조그만 대웅전 청소만은 한사코 할머니가 맡으셨다. 청소를 마치고 법당에서 나올 때 할머니는 항상 “향내 난다”고 하셨다. “향기 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향내라는 말은 향과 냄새가 합친 말일 게다. 법당에서 피어오르는 향불을 촌 노인답게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대구 신천동에 조그만 암자를 마련하였을 때도 할머니는 변함없이 법당 마루를 닦고 쓸고 하셨다.
냄새라는 말은 어딘가 낮춤말로 들린다. 고상하고 고귀한 명품보다는 세속적이고 범상한 물건을 떠올려준다. 향기가 한자말이고 냄새가 우리말인 언어적 차이에서 오는 선입견일 수도 있다. 향기라 하면 정자가 떠오르고 문방사우와 매난국죽이 연상되지만 냄새라면 거름더미나 쑥떡 만드는 시골 아줌마가 생각난다. 향기가 정신적 가치를 향유하는 계층의 언어라면 냄새는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말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냄새라면 비린내나 구린내 같은 부정적인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것도 잠시, 이내 곱살스러운 접미사 “내”에 갖가지 말이 붙는다. 살내, 젖내, 젖 냄새, 땀 냄새, 분 냄새, 흙 냄새를 줄여 “살내, 젖내, 땀내, 분내, 흙내”라 말하면 까닭 없이 마음이 아파오고 저절로 눈이 감긴다. 그것들은 오래 졸이고, 한참 묵히고, 늘 지니고 다녀 저절로 우러나는 냄새이다.
그 냄새를 가진 것들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젖내와 살내와 분내를 풍기던 사람들이 멀어졌다. 땀내 날 정도로 일을 하던 청춘은 까마득하고 입에서 단내 나도록 온몸의 기를 쏟아내던 열정도 옛이야기가 되었다.
냄새는 온몸으로 맡아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운이다.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냄새라는 말을 줄여 “내”라고 하면 그땐 온몸으로 풍겨내고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기운이라는 확신이 든다. 사람 냄새는 얼굴에서가 아니라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므로 코라는 감각 기관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그래서 사람 행기라는 단어보다 사람 냄새라는 말을 즐겨 쓰는가 보다.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어느덧 입추가 지났다. 해가 조금씩 늦게 뜨고 일찍 서산으로 넘어간다. 짧은 셔츠를 입던 사람들이 긴 소매 옷으로 갈아입고 짧은 스커트를 입었던 여인들도 하늘거리는 긴 치마를 입기 시작한다. 시샘하듯 다투어 피어나던 붐꽃들은 다 져버리고 무성했던 여름 나뭇잎들도 가을 색으로 변해간다. 갖가지 형상이 넘쳐나는 여름이 지나 냄새의 계절 가을이 오면 모든 것들은 거추장스러운 색깔과 겉모양을 버리고 자신이 무엇인가를 세상에 증명하는 단 하나의 기운만 간직한다. 계절이란 갖가지의 행기를 단 하나의 냄새로 변하게 하는 시간, 난 그렇게 믿으려 한다.
요즘 글의 냄새에 대해서 생각한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언젠가는 내 글에서도 묵향과 문향이 묻어나기를 꿈꾼다. 이제 내 나이가 가을인 탓인지 쌀쌀해진 저녁 바람을 맞이하면 문득 내 글에서 가을내가 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문향은 여전히 과분하고, 글 내음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허름하다. 글내라면 사람 냄새는 담겨있겠지.
왜 갑자기 삼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날까. 법당 구석구석을 정성스럽게 닦아내고 문을 나서며 하신 “향내 난다”고 했던 말씀이 불쑥 떠오를까. 어쩌면 할머니는 법당에 들어설 때마다 부처님이 가르친 불법 향기와 참선을 하느라 밤을 하얗게 세운 아들의 살 냄새를 모두 맡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운명을 이겨내며 차디찬 마룻바닥을 단내 나도록 걸레질하셨을 할머니, 그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면서 이 가을에 내 글을 읽어줄 한 명의 독자를 만나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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