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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그 여자의 말뚝 / 송혜영

그 여자의 말뚝 / 송혜영


 

 

딱따구리가 야무지게 나무를 찍는 것 같은 소리에 잠이 깼다. 잠자리를 걷고 일어나려는데 딱딱오금을 박는 목소리가 다시 아침 공기를 갈랐다. 그녀가 돌아왔나 보다. 논에 모도 얼추 자리를 잡았고, 한 숨 돌리는 참에 서울 다녀온다며 나섰는데 좀 늦었다. 그동안 채마밭은 풀이 무성하고 제때 옮겨 심지 않은 들깨들은 누렇게 부황이 들어있었다. 이틀 내린 빗밑인데도 물꼬를 제대로 터주지 않은 게 더 부아를 돋운 것 같았다.

들깨 좀 옮겨 심으면 어디가 덧나나.”

풀은 키워 내다 팔겨.”

그녀는 논으로, 텃밭으로 뒤꼍으로 돌아다니며 말총을 쏘아 댔다. 응사가 없는 걸 보니 그녀의 표적은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겼다. 그래도 난사된 총알이 퍽퍽 깨밭에 박히고, 밤나무를 관통하고 우리 집 마당에도 유탄이 날아왔다. 담장너머로 밭에서 잠시 허리를 편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흙으로 범벅이 된 손가락을 엄지부터 차례로 꼽아가며 아들 딸 집으로 휘돌아 온 그간의 바쁜 일정을 늘어놓았다. 그러다 종내는 남편 흉으로 말머리를 돌렷다.

아 그래 좀 늦었더니 죄 엉망이야. 저 들깨 꼴 좀 봐. 내 없는 새 옮겨 심었으면 오죽이나 좋아.”

그쯤에서 그의 역성을 들어주어야할 것 같아 한마디 거들었다.

아저씨도 그냥 놀지 않으셨어요. 논으로 밭으로 꽤 바쁘신 것 같던데…….”

분주다사지 뭐. 그 양반은 그냥 말뚝 건달이야.”

? 무슨 도사라고요? 말뚝이는 또 뭐예요.”

아니 奔走多事. 하는 일 없이 이리저리 바쁘기만 하다고. 실속도 없이.”

우리는 웃고 말았다.

그녀가 오고 사흘도 안 돼 모살이가 좋아지고, 텃밭도 예전의 활기를 찾았다. 밭고랑을 메운 풀이 머리채가 잡혀 끌려나오고 들깨가 널찍하게 새 자리를 찾아들었다. 시난고난하던 파도 빳빳하게 일어났다. 그에 비해 연일 집중포화를 맞은 그녀의 말뚝이는 혼자 왔다 갔다 하던 때보다 표 나게 풀이 죽어 있었다. 평균치에 훨씬 못 미치는 체구의 그녀는 어디 한군데 진득이 살이 붙을 데라곤 없다. 그건 워낙 몸이 재빠른 그녀에게 살이 붙어 있을 새가 없어서다. 그녀는 땡볕을 무서워하지 않고 논밭을 돌보고 틈틈이 품도 팔고, 도로공사 현장에도 나간다. 남의 밭에서, 자기 논에서 장독대에서 수시로 출몰하며 가공할 노동량을 소화하는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녀의 경이로운 노동이 없었다면 자식 공부시키고 집칸이라도 건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그녀의 말뚝 건달은 도대체 뭐 하냐고? 그로 말하면 동네 최고의 인텔리겐치아이면서 로맨티시스트이다. 그는 나름대로 화려했던 과거를 끊임없이 반추하거나 시국을 개탄하느라 집안일은 뒷전이다. 집 앞에 내 놓은 파라솔 밑에 앉아 있는 그를 보면 개미귀신이 연상된다. 파라솔 그늘에 숨어 마치 사람이 굴러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다. 바쁜 용무가 있는 사람들은 그 집 앞을 지날 때 각별히 신경을 써야한다. 잠깐 곁을 주면 커피 한잔 곁들여 길고 지루한 시국 강연을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남긴 옹색한 땅(수로 옆이나 포장도로 옆, 또는 밭과 길의 경계)에 각종 화초를 심고 보살피는 것도 그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낮술 몇 잔에 흥얼거리며 곧잘 풍류도 즐긴다.

그에게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피가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선 잘 보이는 곳에 꽂혀있는 낡은 논어나 맹자, 육법전서가 그의 지적 토대를 말해준다. 그들의 생활방식의 하나인 가정경제를 돌보지 않는 不治家産도 꿋꿋이 실현하고 있지 않는가. 관을 상대로 심심치 않게 올리는 상소도 그가 구시대의 중심세력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또 가장으로서의 소임에 대한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아내의 강도 높은 잔소리에 대응하는 태도에서도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어떤 모멸의 순간에서도 결코 담장 밖으로 큰 소리를 내보내지 않음으로써 선비의 품위를 지킨다. 한 번은 아내에게 푸진 잔소리를 듣고 공자 마누라도 악처였다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내에게 핍박 받았다는 점에서도 시대를 뛰어 넘어 성현과 동질감을 느끼는 듯했다.

가을걷이로 나남 없이 바쁜 날, 오후 내내 투덕투덕 뭔가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자기키보다 한 뼘은 큰 도리깨로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콩을 터는 중이었다. 그는 百年之大計를 논 하러 동창회에 갔는지 또 안 보였다.

내가 시킨 일도 아닌데 땀 흘리는 그녀에게 괜스레 미안해 쩔쩔 맸다.

아휴, 힘든데 좀 쉬었다 하세요.”

그녀는 촌에서는 쉬는 게 바보짓이라며 도리깨를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쉭쉭하늘을 가르는 도리깨는 그녀의 말뚝을 겨냥 한 것 같았다. 아니, 항상 빈둥거리는 나를 향한 건가? 돌아서는데 뒷덜미가 서늘했다.

요즘 동네가 조용하다. 남편을 닦달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이다. 그가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서울 딸집에 머물며 침을 맞으러 다닌단다. 항상 의기양양해 다니던 그녀의 잰 걸음 이에 힘이 빠진 것 같다. 그리 못 마땅한 남편이 눈에 안 보이니 시원해할 만도 한데 파리를 씹은 얼굴이다.

항상 골목 어귀를 지키던 그녀의 말뚝이 없는데 나는 또 마음 한구석이 쓸쓸하지. 들고 날 때마다 운동모자의 챙을 들었다 놓으며 인사를 놓치지 않는, 그 깍듯한 예절과 지극한 자상함도 꽤 성가셨는데……. 막상 안보이니 매사에 분별력 있고 하늘 아래 모르는 게 없는 척해도 돈이 곧 인격인 세상, 힘 센 사람들이 경영하는 세상에서 고개 똑 바로 들고 살아가기가 꽤나 고달팠을 그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입으로 사는 의고적(擬古的)인 인간인 그나 한 공기 밥보다 못한 글이나 주물럭거리고 있는 나나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는가. 가재미눈으로 그를 흘깃거렸던 날이 언제였던가. 나는 그녀의 말뚝이, 내 동지가 어서 건강이 회복해 파라솔 밑에 다시 앉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