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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바루 / 김희자

바루 / 김희자


 

 

꽃 구경을 하러 나들이를 갔다가 사찰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점의 모양이 절집을 닮았다. 겉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바루라는 특이한 이름이 나를 더 붙들었다.

바루는 사찰에서 승려가 쓰는 밥그릇을 말하며 바리때, 발우라고 불린다. 적당한 양과 자연을 조용히 담는 그릇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평등과 청결, 절약과 공동, 복덕의 다섯 가지 공덕이 깃든 사찰 음식은 발우에 담아낸다. 발우공양은 각자의 발우에 음식을 담아서 남기지 않고 먹는 사찰의 독특한 공양이다. 음식 찌꺼기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 자연을 아끼고 몸을 다스리는 지혜로운 식사법이다. 또한 마음의 눈으로 세상 보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절집을 닮은 음식점에 들어서니 눈을 감게 하는 음악이 흐른다. 벽면에 걸린 연꽃 그림이 맑은 향기로 세상을 밝히는 듯싶다. 여주인의 옷차림이 단아하고 손끝에도 가지런함이 묻어난다. 분위기도 고요하다. 정갈하게 담은 음식이 차례대로 나온다. 야채가 주를 이룬 음식이 갖추 나오고 고기류를 대신한 두부 요리와 다시마를 빻은 가루도 나온다. 흙만 털어내고 씻은 통냉이가 하얀 뿌리째 튀겨져 나와 풋풋한 향내를 더한다. 나무와 흙으로 빚은 발우에 정갈하게 담은 음식이 마치 사찰을 찾은 기분을 들게 한다.

정갈한 음식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수유간 음미해 본다. 사찰 음식은 채식에 한발 더 가깝다. 생명과 건강을 기본으로 정신까지 맑게 성장시켜 주는 선식이다. 사찰에서는 음식을 먹는 것도 지혜를 얻기 위한 수행 방법 중의 하나로 삼는다. 불교에서는 마음이 하늘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며 축생도 만든다고 하였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의미이다. 적당한 양을 담는다는 밥그릇을 보니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식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내가 일을 하는 곳은 내과의원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당뇨병 환자들이 내원을 한다. 십 수 년 전 다시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흔하지 않은 병이었다. 온몸으로 농사를 짓거나 걸어 다니던 예전보다 활동량도 줄고 식습관이 풍부해 수 년 전부터 늘어난 병이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 씨도 당뇨병을 앓고 있다. 혈액 순환 장애로 발에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자꾸 제발을 한다. 무거운 몸집으로 들어서는 그녀는 늘 숨이 차서 헉헉댄다. 그녀가 앓는 당뇨의 원인을 정확히는 분석할 수 없지만 큰 몸집이 그녀의 식습관을 말해 준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당뇨를 앓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전적인 요인을 타고나거나 식탐이 많고 바지런하지 못한 편이다.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것을 욕망하는 현대인이 만들어 낸 부자 병이기도 하다.

나도 이제 성인병이 나타나는 중년에 들어섰다. 신체의 기능이 하나 둘씩 둔해지는 나이가 되었다. 팽팽하던 신체의 장기들이 오래 입은 팬티 고무줄처럼 느슨해졌다. 이제는 자신을 관리해야 하는 나이임을 속일 수 없다. 적당한 식습관과 생활 습관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 육식보다는 채식 위주로 바꾸고 토속 음식으로 식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성인병을 앓는 사람들을 대하는 나는 많이 먹는 것보다 적당하게 먹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한다. 과하게 먹으면 적당하게 먹는 것보다 도리어 해가 된다. 과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이에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절집에 사는 스님들처럼 살 수는 없지만 발우에 담긴 깊은 뜻을 음미하며 살아갈 일이다.

절에서 발우공양을 하는 스님들은 한 알의 밥알도 남지 않도록 물을 부어 마시고 발우수건으로 발우를 깨끗이 정돈하기까지 한다. 발우공양에 담긴 정신은 불교 수행의 한 방편이 되지만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의미도 크다. 소화하기 힘들 만큼 배부르게 먹고 남은 음식을 함부로 버리는 우리의 생활 습관을 꼬집기도 한다. 몇 년 전 어떤 단체에서는 빈 그릇 운동이라는 이름을 걸고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어느 종교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한 알의 곡식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는 태양과 바람, 미생물과 풀벌레, 새와 사람의 노고가 서려 있다. 그래서 이 모든 노력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부터 부모님은 밥상머리 예절을 가르쳤다. 밥상머리에서는 큰 소리를 내지 못했으며 깔끔하게 먹는 습관을 들이라고 했다. 밥알이나 국물을 흘리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부족한 세대의 자연스런 습관이자 음식을 귀하게 여기도록 가르쳤던 가정교육이었다. 두레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자기중심의 생각을 버리고 음식의 소중함과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는 지혜를 배우라고 했던 것이리라. 세월이 흘러 가족 수도 줄고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고 자유로워도 내 아이들에게 밥상머리의 기본예절은 가르치고 싶다. 어릴 때 생긴 습관은 훗날 식생활 예절에 보탬이 되기도 하고 남을 벼려할 줄도 아는 습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적당하게 나오는 음식이 감칠맛을 나게 한다. 음식도 남지 않고 빈 그릇만 남겨진다. 사찰은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나온 숭늉으로 발우를 말끔하게 비운다. 잠시 가져 본 시간이지만 발우공양에 담긴 정신을 배운다. 아무리 풍족한 사람이라도 음식을 먹는 태도가 허랑하면 바르게 산다고 할 수 없다. 반듯한 식습관은 자신의 인격을 바르게 하고 선업을 쌓는 일이기도 하다. 복과 덕은 자신의 인격을 바르게 하는 데서 절로 형성되고 넘치기 때문이다.